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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최근 한반도 문제를 놓고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간에 의견이 활발하게 교환되고 있다. 여기에는 종전선언에 관한 협의가 포함돼 있다.

이와 함께, 머지않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기는 듯하다.

지난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했다.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의 종전선언을 추진해 보자는 것이다.

다시 만나면 2018년과는 다를 수 있을까?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이후 한국과 미국의 외교관들은 대북 대화와 그 의제를 계속 협의했다.

그동안 바이든 정부는 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한다고 했지만, 지난 여름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는 등 대북 압박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점이 북한의 반발을 불렀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도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듯하다. 10월 19일 미국 국무부 부장관 웬디 셔먼은 바이든 정부가 북한 당국을 직접 접촉했다고 밝혔다.

북한 김정은 정부는 대화 제안에 응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내비친 바 있다. 9월 문재인의 유엔 연설 이후 조선로동당 중앙위 부부장 김여정은 대북 적대 정책이 철회된다면 종전선언과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10월 4일에는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지시로 남북 통신연락선도 복원됐다.

대화가 불편한 자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우파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아 왔다. 국민의힘 홍준표는 종전선언을 두고 “남북 합작 평화쇼”라고 폄훼했다. 홍준표·윤석열 등 국민의힘 예비 대선 후보들은 모두 북핵 해결책으로 미국 전술핵 재배치를 떠들고 있다. 반동적이고 위험한 주장이다.

대북 강경 입장 면에서는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상호 존중이라는 전제가 깔린 남북 정상회담 또는 종전선언”이 북핵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난했다.

최근 아시아에서는 강대국 간 경쟁이 점증하며 불안정이 크게 증대했다. 한반도에서는 남·북한이 잇달아 미사일을 발사하고 북한의 영변 핵시설도 재가동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펼쳐져 왔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북·미 대화나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국면이 바뀌기를 바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3월 대선 전까지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종전선언 논의가 진전되기를 바랄 것이다. 북한 당국도 가능성을 내비쳤기에, 적절한 여건이 조성된다면 머잖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지 모른다.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고 더 나아가 종전선언까지 진행된다면, 한반도에서 긴장이 한동안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번에는 2018~2019년의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몰랐던 트럼프도 없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회담 테이블 안팎에 온갖 변수와 난관이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했다. 즉,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 비핵화 협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치적 상징에 가까운 “입구”를 통과하는 과정마저 꽤 복잡하다.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의 관계나 제재 완화 같은 종전선언의 전제조건 등 여러 문제에서 당사국들 간에 견해차가 있다.

종전선언 논의가 시작되면, ‘종전선언의 주체는 누구인가?’부터 설왕설래가 있을 것이다(중국을 종전선언 당사국에 포함하는가, 배제하는가?).

바이든 정부는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는 종전선언과 무관하다고 본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가 진전된 이후에 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강하다(〈미국의소리〉).

반면 북한은 종전선언을 하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대북 적대 정책이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지 않는 등 대북 압박이 여전한 가운데, 아무런 보장 없이 종전선언이라는 ‘어음’에 서명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더라도,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핵심 쟁점들에 관한 협의는 모두 그 이후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어음

냉전 해체 이래 한반도 평화 협상의 경험을 돌아보면, 정부 당국 간 대화로 유화 국면이 한동안 열려도 이를 통해 안정적인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관해 잠정적인 합의가 도출돼도, 합의의 각 단계별로 온갖 변수가 있었다. 그래서 합의보다 이후의 이행과 검증 과정에서 협상이 어그러진 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대화 테이블 바깥의 정세가 더 근본적이다. 미국은 자국의 국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 과거 구속력 있는 북·미 합의도 미국은 꼬투리를 잡아서 휴지 조각으로 만든 적이 많았다.

게다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 바이든의 대중국 공세와 중국의 반발로 아시아에서 불안정은 더욱 커졌다. 특히, 대만해협은 미국과 중국 두 제국주의 강대국이 빈번하게 무력 시위를 하는 화약고가 돼 버렸다.

이런 상황이 한반도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10월 23일 북한 외무성 부상 박명호는 미국의 대만 문제 개입을 비난하며, 주한미군 병력과 기지가 대중국 압박에 이용되는 점과 대만 주변에 집결하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무력이 언제든 북한을 겨냥해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미·중 갈등 악화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군비를 엄청나게 늘려 왔다. 핵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 건조도 추진하고 있다. 북핵 대응뿐 아니라 불안정한 주변 정세에 대응하려고 군비를 늘리는 것일 테지만, 그만큼 북한에게도 상당한 압박이 된다.

이처럼 강대국 간 갈등이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를 불안케 하는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갈등의 더 큰 주체들인 제국주의 국가들과 타협해 항구적 평화를 보장받으려는 구상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군비

좌파 측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진정으로 자주적이지 못해서 지금까지 남북 관계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시각이 꽤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에서는 좋은 제안들을 많이 내놓았지만 막상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이렇다 할 실천을 미루어 왔다.”(〈민중의소리〉)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자주적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한국 지배계급의 가장 핵심적인(현재로서는) 정치 조직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본주의·제국주의 세계 체제 안에서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한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워킹그룹을 만드는 등 대북 정책을 미국과 조율해 왔다. 이 점은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려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다를 수 있을까? 그는 분명 민주당 주류와는 다른 일종의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이다. 그리고 해방 정국의 미군정을 “점령군”이라고 하는 등 좌파적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와대 입성이 가까울수록 그가 민주당 주류와 지배계급의 압력에 타협할 공산이 크다. 특히, 안보와 제국주의 문제에서 운신의 폭은 매우 좁을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정상회담이나 종전선언에 기대를 걸고 그 성사를 위한 국민적 단결을 지향할 게 아니라,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