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에 맞서 파업을 벌이는 수단의 보건 노동자들

수단의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용기로 군부 쿠데타에 맞서고 있다.

밤이면 밤마다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유전·공항·학교·병원·대학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시민불복종을 호소한다.

연행·구타·총격이 이어지고 보안 병력에 의한 사망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는데도 사람들은 저항하고 있다.

대량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기나긴 역사가 있는 수단 군부는 수단인 4500만 명을 공포로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군부는 맹렬한 반격에 직면했다. 이 반격은 변화를 가속시킬 잠재력이 있다.

급진적 변화의 가능성을 묻어 버리려는 시도가 훨씬 더 혁명적 결과로 이어질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태가 실제로 그렇게 되느냐는 민주주의 항쟁에서 가장 단호하고 긴 안목을 갖춘 사람들이 현재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핵심 전투는 군부에 맞서는 것이다. 군부를 물리치려면 가장 강력한 단결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세력들 안에도 날카로운 논쟁이 있다. 2019년에 항쟁을 지도했던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이하 FFC)은 군부에 맞선 대중 파업·투쟁 물결에서 힘을 얻었다.

하지만 그 연합의 지도자들은 이 힘을 군부를 상대로 한 후퇴한 협상안을 이끌어 내는 데로 돌렸다.

학살자 군 장성들을 몰아내기는커녕 과도 정부의 지도적 위치에 앉혀 준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293호 “수단 항쟁: 항쟁 지도부의 배신적 타협으로 군부가 권력을 부지하다”]

그후 변화가 지지부진한 것에 광범한 분노가 일었지만 FFC 지도부는 군 장성들과 함께 정부를 운영해 왔다.

수단의 과도 통치위원회에 속한 민간 인사들은 분명 쿠데타에 반대한다. 그중 몇몇은 구금되고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에 있는 열강, 특히 미국과 잘 지내려고도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민간인 총리 압둘라 함독은 국제통화기금(IMF)한테서 ‘구제금융’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구제는 얻어 냈지만 커다란 정치적·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수단은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미국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려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해야 했다. 수단 군부가 이를 가장 강하게 추진했고, 민간인 내각 성원들은 그에 보조를 맞췄다.

올해 4월 수단 과도 내각 전체가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이스라엘 보이콧 법을 한뜻으로 폐기했다. 9월 수단 정부 당국은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하마스와 연계된 기업들의 자산을 몰수했다.

이번 군부 쿠데타에 따른 구금자의 하나인 법무장관 나스레딘 압둘바리는 지금으로부터 3주 전 이스라엘 정부 장관 두 명을 만나기도 했다.

함독 총리는 IMF가 흔히 요구하는 경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함독은 보조금을 삭감하고 변동환율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런 조처들은 물가 인상을 부채질했다. 현재 수단의 연간 물가 인상률은 400퍼센트다.

사람들이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빈곤에 시달린다면, “민주주의”는 공문구에 불과하다.

현재 FFC를 주도하는 세력인 수단직능인협회(SPA)는 이렇게 말한다. “군부와의 파트너십을 되살리거나 군부를 권좌에 남겨놓는 정치적 합의를 맺을 여지는 없다.”

좋다. 하지만 군부가 공식적으로는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위험성은 언제나 있다. 지금 군 장성들은 아마 이런 것을 원할 것이다.

군 장성들이 있을 곳은 교도소뿐이다. 군부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저지른 만행과 2019년 항쟁 때 저지른 일들에 대해 철저히 수사받아야 한다. 수단 경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에 대한 군부의 지배력도 빼앗아와야 한다.

수단에서 진정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야당 세력들을 상대로 정치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 또, 임금 인상, 노동조합 할 권리, 여성 권리, 식량 공급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요구를 제출함으로써 그런 투쟁을 벌여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다”

2019년에도, 지금도 수단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수단 수도 하르툼의 부리가(街)에서 무함마드는 지난주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전했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어요. 군부는 어딜 가든 열사들의 피로 저주받을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 조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사람들이 ‘불복종위원회’라고 하는 기구를 세웠습니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린 기구입니다.

“공격받을 위험성이 존재하고 식량·생필품이 부족한 이 어려운 시기에 생활을 조직하고자 하는 사람 모두를 이 위원회에 끌어들이려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서로 힘을 합치는 것 말고는 믿을 수 있는 다른 권위 있는 기구가 없습니다.

“우리는 2019년 경험에서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당시 광장 점거 운동은 우리가 저항의 형태이자 우리가 삶을 스스로 운영하는 형태이기도 한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일상 생활의 여러 분야를 조직하는 위원회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의료위원회입니다. 의료위원회는 의약품을 배분하고 중환자를 우리가 안전한다고 판단한 병원으로 후송합니다. 다친 시위 참가자를 치료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집을 수리하는 위원회도 있습니다. 전기·수도 공사 같은 것들을 하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때’ 이용하는 서비스보다 훨씬 낫습니다.

“모두에게 식량이 충분하게 공급되게 하는 기구도 있습니다. 아무도, 심지어 굶주리기 일쑤였던 노숙하는 아이들도 이제 굶주리지 않습니다. 물품과 돈 여유가 있는 사람들한테서 기부를 받아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합니다.

“매우 중요한 한 기구는 이 지역 시위 참가자들과 사람들을 보호합니다. 이를 위해 군대에 맞서 바리케이드 등의 장애물을 설치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군부의 차량을 멈추려고 길 위에 스파이크를 설치하기도 하죠.

“두려움을 걷어내려고 매우 열심히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적으로 활동합니다.

“다른 위원회들과 소통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사기를 고무하고 즐거움을 준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기구가 있어요. 우리는 음악과 이야기, 시를 즐길 겁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것저것 만들기도 할 거예요.

“군부는 우리를 짐승 취급하지만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우리의 인간성을 고수할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삶을 조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전망은 밝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질 수도 있지요.

“이런 위원회들을 선출하는 선거도 있어야 하고, 이미 여성들의 참가가 많지만 앞으로도 더 늘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참가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중요한 상황 전개다.

수단에서 대중 시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봤듯 무자비한 지배계급은 때때로 학살극을 벌여서 사람들을 거리에서 몰아낼 수도 있다.

그래서 노동자 파업이 중요한 것이다. 노동자 파업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집단적인 형태의 저항이다.

파업이 확산되고 지속되면 군부는 승리할 수 없다.

그리고 파업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민주주의와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처음에 노동자 평의회는 격변 속에서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설립된다. 하지만 이런 평의회는 국가 권력과 대결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수단의 지역위원회가 노동자 평의회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잠재력을 보여 준다.


레온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펴밝힌 연속혁명론은 노동계급이 민주주의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트로츠키는 1905년 혁명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 이론을 발전시켰다.

자본주의 초창기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 등의 격변에서는 장차 오늘날의 지배계급이 되는 사회집단[즉, 부르주아지]가 옛 봉건 지배자들에 맞서 싸웠다. 이들은 자유·평등의 기치 하에 변화를 쟁취했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고 했다. 1905년 [혁명기] 러시아에서 자본가들은 낡은 차르 군주정의 편에 섰다. 자본가들은 차르 퇴진, 보통선거, 토지 재분배 같은 민주적·사회적 기본권들을 보장하는 조처에 반대했다.

17~18세기에는 자본가들이 구질서에 맞서 투쟁하면서 강력한 노동계급이 부상해 권력 장악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노동계급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가 성장하고 근대적 프롤레타리아가 성장하면서 부르주아지는 모든 곳에서 보수적 계급이 됐다.

부르주아지는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노동자들을 부추겼다가는 노동자들이 봉건 시절의 유물을 철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본가들의 부와 권력까지 위협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노동계급만이 혁명적 수단을 이용해 민주주의와 사회 변화를 위한 투쟁을 완수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투쟁의 선봉에 서서 권력을 장악한 노동계급은 추상적인 자유·평등 개념을 넘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된다.

노동계급은 이런 식으로 농민 같은 다른 계급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동계급은 독립적 구실을 해야 하고, 노동계급을 배신할 자유주의자들이 늘어놓는 미사여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노동계급의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도 노동계급은 이런 투쟁을 이끌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세계 체제이기 때문이다. 트로츠키가 말한 “불균등 결합 발전” 때문에 세계의 서로 다른 곳들은 경제 상황이 매우 상이하다.

제국주의는 진보를 파괴했다. 하지만 전 세계는 자본주의의 확장 아래 하나가 됐다.

어느 나라의 노동자들도 일국의 혁명만으로는 사회주의 사회를 쟁취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혁명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려고 언제나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패배할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노동계급에게 연속 혁명은 계급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것이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볼셰비키가 이끄는 러시아 노동계급은 처음에는 차르 군주정을 타도했지만, 그후에는 노동자 국가를 수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동에 의해 분쇄당할 양자택일에 직면했다.

연속혁명론은 부정적인 방식으로도 입증됐다. 혁명의 국제적 확산이 실패한 탓에 스탈린주의로 가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러시아보다 나중에 혁명이 일어난 곳들, 예컨대 중국에서는 구질서가 무장 반란에 의해 타도됐다. 그러나 이런 곳들에서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중간계급 지식인층이 지도하는 농민 조직들이 새 정부를 주도했다.

수단에서 연속 혁명이란 군부와 자본가 모두에 동시에 맞선다는 뜻이다.

그리고 혁명이 승리하려면 서방 제국주의자들에게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 중동·북아프리카 전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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