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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여성의 고통은 노동조건 문제

많은 여성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갱년기를 경험한다.

갱년기는 폐경 전후의 시기를 지칭하는 말로, 보통 여성들은 45세~55세 사이에 갱년기를 맞는다.

여성들은 갱년기에 여러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 때문에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대한폐경학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 폐경을 맞은 여성 10명 중 8명은 폐경 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면증과 수면장애, 체력 저하, 안면홍조, 두통,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빈뇨, 탈모, 과다 출혈, 전신 관절통, 우울감, 불안증, 감정 기복 등은 갱년기 여성들이 경험하는 증상이다.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어떤 여성은 이런 증상으로 크게 고통받는다.

갱년기는 단지 여성들만 겪는 일은 아니다. 여성보다 신체적 변화는 덜 하지만, 중년 남성들도 우울감, 자존감 저하 등으로 힘든 갱년기를 보내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어려움들은 그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여겨진다. 갱년기를 겪는 중년 여성(과 남성)들을 돕는 사회적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갱년기 여성들은 체력이 크게 저하돼 기존 일을 해내기 버거운 경우가 많다.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여길 때 휴식을 취하고 휴가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진

심지어 대중매체에서 갱년기 여성은 그저 짜증 많고 예민한 사람으로 그려지며 희화화되기도 한다.

갱년기를 다룬 책들은 생활습관이나 식습관, 마음관리 등 개인적 관리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방안들은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불충분하다.

특히 중년 여성 대부분은 노동자로서 일을 한다. 40대와 50대의 여성 고용률은 다른 나이대보다 높고, 취업자 수로 따지면 약 530만 명가량에 이른다(2021년 9월 기준).

갱년기의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여러 고충을 겪는다.

많은 여성은 갱년기 증세가 직장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느낀다.

여성들이 갱년기 증상을 이유로 휴식·휴가를 쓰거나, 근무시간을 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교사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갱년기 여성들은 건강과 체력이 눈에 띄게 안 좋아져서 기존의 일을 해내기가 버거워요. 그런데 [갱년기 증상은] 암처럼 특별히 병가를 내기도 어려워요.

“어떤 사람은 피부에 문제가 생기고, 만성 피로를 겪기도 하고, 빈뇨 때문에 매일 자다가도 몇 번씩 깨서 너무 피로한데도 이런 걸로 병가를 쓸 수가 있어야지요.”

인력 부족

인력 부족으로 노동강도가 센 것도 여성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휴가를 쓰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자신이 쉬면, 동료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몇 년 전 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 ‘임신 순번제’가 있다는 게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임신조차 하고 싶을 때 못 하는 마당에 갱년기 여성 노동자들의 필요가 고려될 리 만무하다.

[갱년기 여성 노동자 지원과 관련해서도] 결국 인력 충원 문제가 정말 중요해요.”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얻는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갱년기 증상도 더 악화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저임금 등 불안정하고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필요한 조처를 요구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사측에 이런 말을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애초에 이 문제가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취급돼 온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갱년기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성의 건강과 노동조건과 관련된 문제다. 갱년기의 고충이 무시되는 것은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들의 필요와 건강은 희생시키는 현실의 일부다.

또한 갱년기의 어려움이 무시되는 것은 여성 차별의 현실을 반영한다.

자본주의에서 나이든 여성들의 필요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인데, 나이든 여성들은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더는 유용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정도로 갱년기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고 열악한 처지의 노동계급 여성이 부정적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갱년기의 부유한 여성들은 외국에 나가서 휴식을 취하거나 쇼핑을 할 여력이 있겠지만,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들은 그러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갱년기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계급의 문제다.

최근 영국의 노동자들은 갱년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며 싸우고 있다. 영국에서는 90만 명가량의 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노총은 갱년기의 영향을 받는 조합원들을 지원하고 있다. 한 학교에서는 노동조합이 갱년기 여성 노동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해, 여성들이 휴가를 쓸 수 있게 됐다.

갱년기 여성(과 남성)이 신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필요하다고 여길 때 쾌적한 공간에서 휴식을 보장받고, 갱년기 휴가제 등으로 유급 휴가도 쓸 수 있어야 한다. 임신한 노동자에게 적용하듯이 근무 시간도 조건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을 권리로 보장하는 한편,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이런 권리를 누리려면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권리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또, 땀이 많아진 갱년기 여성들이 언제든 필요할 때 씻을 수 있게끔 샤워 시설을 마련하는 것 등도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도 갱년기 여성을 지원하는 문제는 노동운동의 이슈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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