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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잣대로 적자선 감축, 임금 억제 추진하는 철도공사

철도노조가 고속철도 통합과 임금·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11월 4일 대규모 집회를 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박근혜 정부가 강행한 수서 고속철도 분리를 되돌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박근혜 정부는 철도 민영화의 일환으로 수서 고속철도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 분리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책은 2013년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주축이 됐던 광범한 민영화 반대 운동의 효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철도공사를 여러 개로 쪼개는 계획은 중단됐고, 수서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회사인 SR을 코레일 자회사로 두었다.

문재인 정부는 SR과 코레일의 통합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코레일의 적자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압박했다.

문재인 정부는 철도 통합 약속을 내팽개치고,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도 외면하고 있다 ⓒ출처 철도노조

GTX 건설처럼 이전 정부가 추진해 온 민자 철도 사업도 이어받았다. 공공 인프라 건설에 민간 투자 사업을 확대한 것이다.

반면,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철도공사가 운행해 온 호남선과 중앙선 등 무궁화호 열차 운행을 35퍼센트나 감축했다. 대신 KTX를 타라는 것이다. 벽지 노선과 운행 횟수를 대폭 줄여 이용객들의 불편이 커지고 요금 부담도 커졌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노골적인 민영화 추진은 꺼렸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재정을 더 많이 투자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도 관심이 없었다.

이런 점을 보자면, 애초 정부·여당 일각에서 철도 통합의 필요성을 검토했던 것도 노동자들의 바람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관심사는 철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철도 경영의 효율성(SR 운영에 따른 중복 비용 축소 등)과 향후 철도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북미 관계가 삐그덕대며 남북 철도 연결이 요원해지자 철도 통합 문제는 정부의 관심사에서 더 멀어졌을 것이다.

2017년 서울지하철과 도시철도의 통합도 이런 취지에서 추진된 바 있다. 서울시는 중복 비용을 줄인다며 통합 과정에서 정원을 1000명가량 축소했다. 서울지하철의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경영 효율성’ 잣대로 공공기관의 적자를 (기관장 평가, 경영평가 등을 통해) 해소하라는 압박이 계속됐다.

그러나 철도나 지하철과 같은 공공 교통 운영 기관은 요금 보조나 적자 노선 운행 등으로 불가피하게 적자가 발생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승객이 감소해 적자가 더 늘어났다. 이는 공공서비스를 위해 필수적인 ‘착한 적자’이다.

따라서 문제는 적자 자체가 아니라, 정부가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는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는 것이다.

직무급제의 단계적 도입 꼼수

정부와 사측은 적자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도 외면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불만이 높다.

근무 형태가 3조2교대에서 4조2교대제로 개편됐지만(시범운영), 필요한 인력이 충원되지 않고 있다.

임금 인상 문제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올해도 철도공사는 재정 여력이 없다며 고작 0.9퍼센트 임금 인상안을 내놨다. 이는 호봉 승급에 따른 자동 인상분에도 못 미쳐 사실상 임금 삭감과 다름없다.

철도공사 사측은 직무급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려고도 한다. 사측은 내년 1월부터 2급 이상과 3·4급 연봉제 직원들에게 직무급제를 도입하자는 안을 내놨다. 이들은 대부분 관리운영직에 근무하는 비조합원들인데, 노동자들은 이를 시작으로 직무급제를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측이 노동자들에 대한 내부 평가급여의 차등폭을 확대하고, 성과급 균등분배를 중지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스텝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직무급제가 ‘공정 임금’이라고 주장하지만, 직무급제의 진정한 목적은 성과 평가와 이에 따른 임금 차등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전반적인 임금 억제와 함께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수서발에 이어 전라선에 SRT를 투입하려는 정부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고속철도에서 SR의 비중이 점차 늘어날 수 있고, 철도공사의 경영이 더 어려워져 조건 악화 압박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회사가 적자라고 해서 노동자들이 조건을 방어·개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정부와 사용자의 양보를 얻어내려면 적자 압박 논리에 단호하게 맞서 투쟁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를 중단시키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상당 부분 저지한 투쟁에서 철도 노동자들이 했던 구실을 떠올려 보면, 정부와 사측을 강제할 힘을 얼마나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