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우경화 이후 세력균형이 부시에게 더 불리하게 바뀌고 있다.

이것을 상징하는 사건은 11월 17일 민주당 상원의원 존 머서가 상원에서 철군안을 기습적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즉각 미국 상원은 ‘후진국’ 의회에서나 볼 수 있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공화당의 한 의원이 머서를 “겁쟁이”라고 불렀고, “욕설이 난무하고, 거의 주먹질이 오갈 분위기로 변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그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고, 우파들이 머서를 마녀사냥하도록 내버려뒀다. 공화당은 이런 민주당 내분을 이용해 한 방 먹였다. 공화당이 즉각 철군안을 표결에 붙였고, 민주당 의원들은 3명을 제외하고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이로써 민주당이 요구해 온 이라크 점령 재검토가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지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어쨌든 머서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은 아니었다. 최근 대중적 반전 정서의 확산이 기성정치에 반영된 것이었다. 부시 정부에게 문제는 이런 정서가 전통적인 공화당 기층에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12월 4일치 〈워싱턴 포스트〉는 공화당 텃밭인 세다타운이라는 소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식 변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일부는 즉각 철군을 바라고, 일부는 영구히 주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기층 정서를 반영했다고 머서를 찬양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의 제안 배경이 단지 대중의 반전 정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머서는 군부 일부와 매우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이라크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군부 내 일부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지면서 미국 제국주의 전체 계획이 틀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머서의 선언은 그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머서는 미군이 중동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라 “쿠웨이트나 인근 지역으로 재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곳에서 이라크와 주변 국가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운영에 대한 이견을 결코 일관된 반전 입장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11월 30일 부시의 아나폴리스 연설은 머서 이후 기성정치권에서 부각된 ‘철군 논의’에 대한 대응이었다. 부시는 15번이나 ‘승리’를 언급했고, 갈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강변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런 논쟁을 정리하면서 “이라크 전쟁의 궁극적 결과는 결국 바그다드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다만 이 기사의 지적과 달리 백악관이나 워싱턴 의회에서가 아니라 워싱턴 거리의 반전 시위대의 규모에 의해 결정날 것이다. 

앞으로 위기가 심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철군 논의가 부각될 수도 있다. 이것이 단순한 재배치가 될지 진정한 의미의 철군에 가까울지 미리 예측하기 힘들다.

이것은 “철군”을 결정할 시점의 세력균형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반전운동이 민주당의 의회 활동에 의존하지 않고 부시를 계속 몰아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