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1월 4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다소 보완한 것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놓고 대선 국면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은 성남시가 대장동 일대 91만여 제곱미터(약 27만 8000평) 부지에 수천 가구를 조성한 대규모 민관 합동 개발 사업이다. 대장동은 판교, 분당과 가까워 2000년대 초부터 수도권의 알짜배기 땅으로 꼽혀 왔다.

2011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애초 대장동 공공개발을 위한 지방채를 발행하려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이 다수당이었던 성남시의회의 반대로 이것이 무산됐다. 이후 성남시는 민관 합동 개발 방식을 내놓았다.

당시 중앙정부인 이명박 정부도 성남시의 지방채 발행을 승인해 주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정부였다. 이명박은 2009년 공기업인 LH의 대장동 개발을 좌절시켰는데, 뒤이어 성남시의 공공개발마저 막은 것이다.

성남시가 공공개발을 포기하고 민관 합동 개발을 해서 이익을 민간사업자와 나누기로 한 것은 개발 자금을 성남시가 혼자 부담할 수 없어서였다. 지방채 발행이 무산된 결과였던 것이다.

우파의 거짓말과 위선

국민의힘과 우파 언론들은 ‘화천대유와 그 특수관계자들이 겨우 3억 5000만 원을 투자해서 수천억 원을 벌었다’며 이재명이 민간 사업자들에게 이익을 몰아준 비리를 저질렀다고 공격한다.

이는 현실에서 흔한 관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흑색선전이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자본금이 얼마 안 되는 법인들이 간판만 달고 등장하는 일은 숱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그 뒤에서 진정한 큰손들이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어,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SK그룹 회장 최태원의 여동생 최기원이 ‘킨앤파트너스’에 빌려준 돈 626억여 원이 화천대유 초기 자금으로 대여돼 사용된 것이 드러났다. 또, 미국 조세도피처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의 자금, 국내 증권사 사모펀드 자금 수백억 원도 화천대유에 대여됐다는 점이 드러났다. 화천대유는 하나은행 등이 약정한 대출액 7000억 원을 지급하기 전까지 개발 사업에 필요한 자금 5700억 원을 끌어왔다고 했다. 이를 위해 막대한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했을 것이다.

결국 최기원 측도 1000억 원 넘게 이자와 배당금을 받게 됐고, 페이퍼 컴퍼니, 사모펀드 등도 이자와 배당금을 두둑하게 챙겼다. SK그룹은 택지를 분양받아 분양 수익을 올렸다. 하나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들도 이자와 수수료 수입을 톡톡히 올렸다.

이런 자들이 대장동 개발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진짜 주역들이다. 그런데도 우파는 이런 주역들을 감추고는 그 주역들 사이에서 브로커 구실을 하면서 돈을 챙긴 자들만 조명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주택 공급 확대,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 부유층·투기꾼들이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게 해 주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한편, 이재명이 민간사업자의 초과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조항을 넣지 않은 것은 성남시에 피해를 입히고 민간 사업자들을 배 불린 배임 혐의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대장동 개발 사업이 시작된 2015년에는 몇 년 후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웠다. 2014년에 줄어드는 듯했던 수도권 미분양 주택 수는 2015년에 다시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은 확정 이익(5500억 원)을 받되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식으로 사업을 짠 것인데, 이를 성남시에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는 배임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당선 후에 받은 선거법 위반 재판 판결문을 보면, 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 컨소시엄 측도 자신들의 이익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치솟을지 2018년까지도 예측하지 못했다.

화천대유가 우선 분양받은 택지도 상당 부분은 화천대유의 남욱과 정영학이 민관 공동 개발 전에 참여한 기업 ‘씨세븐’이 취득해 놓은 것이어서, 이재명이 특혜를 부여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처럼 국민의힘과 우파 언론들은 이재명을 투기꾼들과 결탁한 파렴치한 비리범으로 몰아가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로 뒷받침되는 게 하나도 없다. 민간사업자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되 사업 성과를 빨리 내려고 했지, 그들에게 특혜를 더 부여하려 한 것은 찾기 어렵다.

사실, 공공개발을 포기하고 민관 합동 개발로 방식을 바꿨을 때 이미 민간사업자들의 기득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재명의 정치적 약점과 한계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이재명의 부패와 비도덕성은 아니지만 그의 정치적 약점과 한계를 드러냈다. 이재명은 대장동 개발 이익의 일부를 확보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지, 대장동 개발 자체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에는 거의 의의를 두지 않았다. 이재명 스스로 대장동 사업을 ‘모범적 공익사업’이라고 자랑하고, 애초에 대장동을 공공개발로 추진하려던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예컨대 대장동의 임대주택 비율 목표는 애초 15.3퍼센트였지만, 2019년 10월 개발계획이 바뀌면서 6.7퍼센트로 대폭 줄었다. 정부가 조성하는 공공택지의 임대주택 최소 비율이 35퍼센트인 것을 고려하면, 애초 임대주택 목표 자체도 낮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대장동 개발 이익의 일부를 확보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지, 대장동 개발 자체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에는 거의 의의를 두지 않는 약점을 보였다

이런 정치적 한계와 약점을 비판하는 것과, 근거도 없는 우파의 허위비방 공세에 동조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재명이 벌인 사업에서 민간 투기꾼들이 막대한 이익을 봤다는 사실은 대중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다. 안 그래도 부동산 가격 폭등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을 심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후보가 고전하고 있는 것은 그런 불만을 반영하는 듯하다.

대장동 개발만으로 무려 2조 원 가까운 이익이 나왔다. 성남시가 5500억 원을 환수했고, 화천대유 측은 택지 조성 단계에서만 40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건설회사들이 대장동 택지를 분양받아 주택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1조 원 정도의 이익을 봤을 것으로 추산했다.

평생 자기 집 하나 마련하기도 어려운 서민들이, 뛰는 집값과 민간 투기꾼들이 거둔 막대한 이익을 보고 허탈과 분노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런 길을 이재명이 열어 둔 것도 불만스러울 것이다.

물론 애초 이재명의 구상대로 성남시가(혹은 LH가) 대장동을 공공개발 했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이다. 민간사업자들이 택지 조성 단계에서 거둔 4000억 원은 당연히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민간 건설회사들이 가져가는 수익도 줄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택지 조성에 들어간 돈(만약 성남시가 공공개발 했다면 발행했을 지방채 수천억 원)을 회수하기 위해 택지의 일부를 민간 건설회사에 판매해야 한다는 압력은 매우 컸을 것이다. 중앙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에 재정 지원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공임대주택이 감소하고 집값이 상승하게 된다. 기존 공공개발 방식이 대안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불로소득과 부패 사슬

1960~8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는 정부가 주도해 토지 개발을 했지만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가 일정 규모 땅을 직접 정비하고, 정비된 땅을 분할해 민간에 팔아 수익을 얻은 뒤, 또다시 땅을 개발해 나아갔다. 독재 정부는 거대한 땅 도매상인 셈이었다.

판매하는 토지는 토지수용권을 활용해 원주민으로부터 강제로 매입해 확보했다. 이는 급속한 자본 축적에 맞춰 산업 중심지인 도시를 팽창시키는 저렴한 방안이었다.

이 과정에서 급격한 땅값 상승과 그로 인한 불로소득이 발생했다. 농지나 그린벨트 등을 주택·상가를 지을 수 있는 택지로 전환하거나 교통 요충지로 만들면 땅값이 수직 상승한다. 부동산 투기 바람이 거세게 불면 땅값은 더한층 상승한다.

택지를 개발할 때마다 땅값이 급등했기 때문에 부유층이 또다시 집을 독점했고, 많은 노동자·서민은 또다시 전·월세를 전전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주택 문제가 확대 재생산됐다.

불로소득과 도시화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자본가들이었다. 특히, 대기업들은 저마다 건설사를 차려 개발 사업과 분양 장사로 막대한 돈을 벌었고, 이는 자본 축적의 한 밑천이 됐다. 또한 각종 인프라 건설과 도시화는 기업의 생산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저렴하게 제공했다. 대기업들은 꿩 먹고 알 먹은 것이다.

이처럼, 토지 개발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은 자본 축적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했고 그 규모와 집중도는 점점 더 커져 왔다.

한편, 각종 인허가와 택지 개발 같은 정부 정책이 부동산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 대기업, 브로커 등의 부패 사슬은 아주 만연하고 공고해졌다. 허가를 따내기 위해 로비를 하거나, LH 사태처럼 개발 정보를 이용한 비리도 숱하게 벌어졌다.

예를 들어, 1970년 박정희 정권은 서울 잠실 매립 사업을 추진하면서 현대건설·대림산업·극동건설·삼부토건·동아건설에 공사의 이권을 주고, 그 대가로 정치 자금을 제공받았다.

또, 박정희의 측근들은 1970~71년 서울 강남 땅 투기로 18억 원(현재 가치 수천억~수조 원)의 차익을 남긴 뒤 강남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 돈은 박정희가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를 간신히 따돌린 1971년 대선 때 선거자금으로 사용됐다.

1963~77년 사이에 서울시 땅값은 87배, 강남 땅값은 무려 176배가량 폭등했다. 강남 개발 전에 땅을 사둔 개인들은 큰 부자들로, 강남 택지를 분양받은 기업들은 재벌로 성장하기도 했다. 반면 자산 불평등은 더욱 커지고 서민의 고통은 더 커졌다.

역설적으로 대장동 개발은 지방 정부도 꽤나 강한 개발 권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민간 개발을 막을 힘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민간 사업자들은 더 큰 힘으로 이재명의 반대를 뚫으려고 새누리당(국민의힘) 쪽에 로비를 했다(예컨대 남욱). 김만배가 민관 공동 개발 와중에도 법조계와 정계에 계속해서 돈을 뿌린 이유도 이 연줄을 돈독히 해 두려는 것이었다.

불로소득과 마찬가지로 이런 부패 사슬도 자본 축적에 직접 도움을 줬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대가로 압구정 땅을 받은 현대그룹은 아파트를 지어 팔아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한보그룹은 노태우 정권에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받은 수서 택지에서 큰돈을 벌어 중견 재벌로 도약했다.

불로소득 환수와 공익적 토지 이용을 실현하려면

정부의 공공개발은 1980년대 말 이후 공공성이 조금 생겼다. 공공 택지에 공공임대주택 의무 건설 비율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의 전투적이고 좌파적인 대중(특히 노동자) 운동 덕분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공공 택지를 민간 건설회사에 판매하고, 주택 상당수를 매각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지 않으면서, 공공 택지를 개발할 비용을 확보하고 공공임대주택 유지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때문에 지금껏 정부의 공공개발은 정부의 땅 장사라는 비판을 받아 온 것이다.

이번 대장동 논란을 계기로 이재명 후보뿐 아니라 심상정 정의당 후보, 김재연 진보당 후보 등은 기존의 공공개발 방식도 비판하며 불로소득 환수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기본주택(33평에 월세 60만 원 수준의 장기임대주택) 100만 호 공급, 국토보유세(실효세율 1퍼센트로 인상)를 공약으로 내놓은 데 이어, 최근에는 개발이익환수제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공공택지에 공공임대주택 50퍼센트 이상, 토지초과이득세 도입, 개발이익환수제 강화, 토지보유세 실효세율 0.5퍼센트로 인상 등을 내놓았고,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공공택지 매각 금지와 공공주택 공급 확대, 부동산 실효세율 1퍼센트로 인상 등을 내놨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 토지공개념(토지 소유에 따른 이득 몰수)에 기반을 둔 정책들이다. 공감할 만한 면이 크다.

토지공개념은 노태우 정부 때 일부 도입된 바 있다.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등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이 그것들이다. 당시는 노동운동의 전투성이 높고, 좌파 운동이 강력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우파 세력이 이 법들을 터무니없이 ‘사회주의’, ‘사유재산 부정’ 등으로 지속 공격하면서 투쟁 고조기가 지난 수년 후 헌법재판소는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판결 등을 내렸다. 그러면서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지배자들은 이 정도의 세금 인상도 용인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으로 국가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예컨대 독일, 영국, 스웨덴 등지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며 일어난 혁명이나 준(準)혁명적 상황 이후 노동계급의 불만을 무마하려고 국가가 주택을 싸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1950∼60년대 호황기에도(제2차세계대전의 여파도 무마할 겸) 주택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1970년대 경제 위기 이후 전반적인 복지 감축 흐름 속에서 이런 성취들도 공격받았다. 복지가 삭감되면서 공공주택이 대거 민영화되고 공공임대주택이 감소해 왔다. 2006년 209만 채에 이르던 독일의 공공임대주택은 2018년에는 117만 채로 무려 44퍼센트나 줄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대기업과 부유층이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여기서 생기는 불로소득은 자본 축적(과 축적의 역사)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을 몰수한다는 토지공개념은 지배계급 전체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현실의 정책으로 도입하려 할 때는 부동산 관련 세금을 조금 인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흔했다.

진정으로 토지의 불로소득을 몰수하고 공익적인 토지 이용을 실현하려면, 토지 소유주들(대부분 자본가들이다)에 맞선 매우 크고 지속적인 노동계급 투쟁이 필요하다. 아마도 목표를 이루려면 이 투쟁은 지배계급이 양보하지 않으면 혁명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으로까지 고양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혁명에 육박하는 투쟁이 벌어진다면 왜 굳이 토지 국유화에서 멈춰야 할까? 그런 기회가 왔을 때 토지뿐 아니라 생산수단 자체를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노동자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토지의 공익적 개발을 위해서도 이런 대중 운동이 발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