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차별금지법 제정 등 5개의 국민동의청원 심사 기간을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까지(2024년 5월) 미루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요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법사위에는 민주당 의원이 다수를 차지한다(18명 중 11명). 또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민주당 의원 박주민이 법사위 간사로 있다.

이에 대해 비판이 일자, 박주민은 또다시 “야당[국민의힘] 반대”를 핑계로 댔다. 이는 민주당이 개혁 약속을 배신할 때마다 한 변명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무산의 14년 역사가 이런 과정이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이 기존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 이번 법사위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재명은 11월 8일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를 방문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속도 조절’을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 갈등의 원인”이라며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고 밝혔다.

다분히 보수층 표를 의식한 발언이다. 2017년 당시 이재명이 ‘여성의 날’ 기념 행사에서 “차별금지법은 당연히 한다” 하고 강조한 것에서 후퇴한 것이다.

이재명은 한교총에서의 발언이 ‘입장 변화’가 아니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를 무시하면서 내놓은 변명의 재탕이다.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문재인, 이재명부터 나서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을 설득할 일이다. 우파인 한교총을 찾아서 ‘걱정 말라’ 식의 제스처를 취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런 행동 자체가 우파의 기를 살려 차별금지법 도입을 더 어렵게 한다. 결국 우파가 동의하지 않아서 못하겠다는 핑계를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의원이 이재명을 향해 “차별금지법 나중에 할 거면 대통령도 나중에 해라” 하고 일침을 놓은 것이 아주 속시원하게 들린 이유다.

11월 11일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정의당 기자회견 ⓒ출처 정의당

이재명의 이런 못믿을 행보는 2017년 문재인의 행보와 매우 흡사하다. 문재인도 대선 기간에 한기총을 방문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걱정 말라”고 했다.(2012년 대선 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었다.)

여러 쟁점에서 문재인은 대중의 개혁 염원을 배신했다. 이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환멸을 이용해 우파가 세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재명도 “중도 확장”이란 명분으로 오른쪽 눈치를 보며 좌우 사이에 줄타기를 한다. 이는 결국 자책골이 될 수 있다(관련 기사: 이재명의 당 눈치보기는 자책골이 될 수 있다, 〈노동자 연대〉 391호).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민주당 박주민과 권인숙 의원이 이재명의 이번 행보를 “입장이 다르지 않다” 하며 옹호한 것도 유감스럽다.

이들은 법안 발의 이후, 제정 캠페인의 한 축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다른 의원들(정의당 장혜영, 민주당 이상민)과 함께 국회에서 ‘정기국회 안에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논의하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박주민·권인숙 의원의 갈짓자 행보는 자신이 발의한 법안 통과에조차 진지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민주당의 거듭된 뒤통수 치기는 차별 반대 운동이 민주당 개혁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그러려면 지배계급과 우파에 맞서 좌파들이 단결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