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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상관없는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12월 9~10일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100여 개국의 정상들을 초청해 가상 회의 방식으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연다. 문재인도 초청받았다.

그 회의는 바이든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대외 정책 분야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즉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포장하려는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초청국 명단에 따르면, 그 회의에는 의회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유럽 국가들과 한국·일본 등의 주요 동맹국들뿐 아니라 누가 봐도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정부들도 초청됐다.

예컨대, 바이든은 중국과 영향력을 다투는 곳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인도와 필리핀의 강경 우익 정부를 초청했다.

인도의 모디 정권은 무슬림을 겨냥한 폭력을 부추겨 왔고,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비판한 언론인들, 농업법 개악 반대 운동 활동가들을 ‘선동금지법’ 등으로 탄압한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즉결 처형하는 등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켜 왔다.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극우 정부, 트럼프를 본받아 대선 불복 시위를 조직하고 있는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 보우소나루도 그 회의에 초청받았다.

중동의 경우, 페르시아만 연안 왕정 국가들과 이집트 독재 정권 등은 초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누가 봐도 ‘민주주의 회의’에 초청하기에 민망한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인들을 학대하는 이스라엘은 초청받았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 박탈을 아예 법으로 명시한 인종 분리주의 국가이다.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이 민주주의를 선사해 주겠다며 쳐들어가 정부를 세운 국가이다. 이 곳의 정치 체제는 종파 간 갈등과 부패로 얼룩져 있다.

한편, 그 회의에는 대만도 초청됐다. 대만은 의회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미국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는(‘하나의 중국’ 원칙) 중국을 자극하려는 듯하다.

바이든 정부는 그 회의를 통해 “인터넷 자유를 위한 연합”을 출범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러시아의 인터넷 검열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의 초청국 명단에는 올해 프리덤하우스가 중국과 함께 “인터넷 자유 최하위 10개국”의 하나로 꼽은 파키스탄도 포함돼 있다.

이런 참가국들의 면면 때문에 서방 언론들과 NGO들도 이 정상 회의가 과연 민주주의 증진에 얼마나 진지하겠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위선

사실 서방 지배자들의 민주주의 지지는 언제나 모순과 위선으로 점철돼 있었다.

예컨대 미국은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문제 삼으면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관해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은 2000년대 초 중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동안에는 위구르족 탄압을 눈감아 줬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언제나 자국의 패권 유지에 종속된다.

미국은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나라 대중의 민주주의 열망을 가차없이 짓밟기도 했다. 예컨대, 1973년에 칠레 사회주의자 아옌데 대통령의 좌파 정부를 전복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이를 이렇게 정당화했다. “이 문제는 칠레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기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물론 때로는 서방 정치인들이 대중의 민주주의 염원에 지지를 표명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태에 영향을 미치거나 서구식 민주주의로 운동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냉전 시기에 ‘민주주의’ 구호는 미국의 패권을 정당화하고 동맹국들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국은 ‘독재 대 민주주의’ 공식(‘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구호와 결합된)을 이용해 패권을 분명히 하려 했다. 200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명분의 하나도 바로 그곳에 민주주의를 ‘선사’한다는 것이었다.

위기

현재 미국은 그때만큼 득의양양하지는 못하다.

바이든은 ‘어느 민주주의도 완벽하지 않다’면서 이 정상 회의에서 미국 내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조처들을 약속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지난해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대선 불복 위협에서 드러난 미국 국내의 정치 위기를 의식한 것이다.

바이든과 서방 지배자들이 국내외에서 느끼는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더 큰 체제 위기(경제, 팬데믹, 기후, 지정학적 경쟁)를 반영한다. 바이든은 이런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극우가 집권한 나라에서만 나타났던 것이 아니다. 소위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꼽히는 서방의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최근 국가 탄압이 강화되는 추세가 나타났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경찰력 강화를 추진한 것이 그런 사례다. 바이든과 서방 지배자들 자신도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