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의당이 양당 체제 종식을 위한 제3지대 공조를 제안하고 나섰다. 11월 22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안철수·김동연에게 조건 없는 회동을 제안했다.
“34년 양당 체제의 최종 결론은 내로남불 정치 … 시민의 삶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두 당 중에서만 집권할 수 있는 체제를 끝내야 한다.”
국민의당 안철수 측은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이 제안을 논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애초 심상정 후보는 10월 11일 정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민주당에 책임 연정을 제안했다. 그러다 11월 들어서는 제3지대 연대를 말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들이 정의당 주요 인사들로부터 나왔다. 박원석 전 사무총장은 경희대 안병진 교수의 〈중앙일보〉 칼럼(11월 16일, ‘양당 체제 붕괴의 서막이 열리다’)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흥미진진하다고 논평했다. 안 교수의 칼럼은 양당 체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심상정-안철수-김동연의 제3지대 연대를 주장한다.
정의당 좌파로 알려져 있는 장석준 출판&연구 집단 산현재 기획위원도 제3지대 연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프레시안〉 11월 16일, ‘대선 승자는 이미 결정됐다... 단, 이재명도 윤석열도 아니다’) “양당 정치에 대한 모든 도전은 정당하다 ... ‘제3지대’ 후보 혹은 후보들이 양대 정당 독점 정치 타파를 보다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완주한다면, 그것 자체로 대선 이후에 제6공화국 정치에 계속 강력히 도전할 힘이 될 수 있다.”

민주당-국민의힘 양당 정치가 문제의 일부인 것도 맞고, 민주당이 개혁 세력이 아니라는 주장도 맞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폭등한 부동산 가격은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를 자아내왔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배신했다. 기후 위기와 관련해 탄소 중립 약속도 저버렸다. 청년들이 미래를 빼앗겼다고 느낄 만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우파가 결집하는 상황에서 민주당도 우파 못지않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을성 있게 폭넓고 개방적인 대중 운동의 기초를 놓으려 해야 한다 ⓒ출처 심상정 블로그
이재명은 박근혜 퇴진을 일찌감치 지지해 촛불 대중 운동의 일부로 간주되면서 일약 전국적 수준에서 개혁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떠올라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가 된 지금 이재명은 개혁 배신 정부의 일원으로 비치는 데다 스스로 주류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지지율 위기를 겪고 있다. 오죽하면 최근 유세에서 한 지지자가 이재명에게 “이재명 뽑아 놨더니 요즘 이낙연이야” 하고 쓴소리를 했다.
그래서 정의당이 문재인·민주당의 개혁 배신이나, 벌써부터 몇몇 개혁들에서 후퇴하는 발언을 하는 이재명을 비판하는 것도 옳고 필요하다. 특히, 문재인의 개혁 배신과 이재명의 모순된 갈짓자 행보에서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정의당의 책임 연정론을 비판하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연정 제안, 왜 문제인가?’를 보시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방향과 수단이다.
안철수는 올해 4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국민의힘 오세훈과 단일화했다.
김동연은 재난지원금 등을 위한 재정 지출에 부정적이고 공무원 감축, 노동조합 규제 등을 말하는 고위 경제관료 출신이다.
물론 정의당은 제3지대 공조론이 단일화를 전제로 한 제안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자들이 정의당의 공조 대상이라는 공식 언급(그것도 심상정 후보의 공식 제안)만으로도 안철수·김동연 측에 유리하고 정의당과 좌파에게 불리하다.
특히, 안철수가 심상정과의 공조로 중도 이미지를 조금 보탠다면, 그것은 결국 우파 좋은 일만 시켜 주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정의당 간부들과 심상정 후보가 “제3지대” 연대를 말하며 안철수·김동연 같은 인물들과 공조하려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지난 1년여 정의당이 시도해 온 민주당과의 좌파적 차별화에도 어긋나고, 지지층의 정치적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는 진정으로 필요한 폭넓고 급진적인 대중 운동 건설에 기여할 수가 없다. 지금 정의당이 민주당·이재명과 차별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정한 변화의 동력인 폭넓은 대중 행동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나 노동조건 후퇴 등에 맞서는 대중 운동을 고무하고 그런 운동에 지지·연대를 제공해야 한다.

진정한 차별화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우파가 윤석열 지지로 집결한 것은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약화시키려는 지배계급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당도 국민의힘 못지않게 나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서 그친다면 오히려 정치적 기회주의에 가깝다. 국제적으로도 좌파가 ‘좌와 우를 넘어서자’고 말할 때는 언제나 그것은 중도로 향하는 것의 표현이었다(블레어, 슈뢰더 등).
이런 일은 조급증의 발로다. 그런데 바로 그 조급증 때문에 선거제 개혁 과정에서 (당내 좌파들마저) 무원칙하게 대응했다가 지금의 낭패를 겪는 것 아닌가.
투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찬양·고무돼야 하는 것은 지금 대중의 사기가 우파가 집권해도 맞서 싸우면 된다는 수준으로 높지 않기 때문이다. 좌파는 폭넓고 개방적인 대중 운동 건설의 기초를 놓으려 해야 한다.

사실 정의당 간부들은 선거제 개혁과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기만과 사기를 당했다는 분노가 큰 듯하다. 또, 윤석열이 자유민주주의자이므로 그가 우파를 위한 권력을 탈환해도 ‘촛불 이전으로의 회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어(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독재’ 심지어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이 횡행했었다), 이제는 윤석열이 당선되더라도 정의당이 챙길 건 챙겨야 한다고 전망하는 듯도 하다.

안철수나 김동연 같은 자들도 양당 정치 거부, 제3지대 운운하는 것은 “양당 체제 반대”라는 슬로건만으로는 별 좌파적 차별성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시기 경험을 보면, 개혁의 의미가 모호해진 시기에 대선을 앞두고 주류 양당 바깥에서 잠깐 돌풍을 일으킨 인물들은 대부분 우파 인사들이었다. 김종필, 정주영, 박찬종, 정몽준, 이회창(2007년) 등.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동당이 유일하게 주류 양당 왼쪽에서 비교적 의미있는 도전을 제기했다. 나머지 사례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그 선거들은 선거 전에 커다란 대중 운동(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에 항의하는 운동,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이 분출해 정치적 지형이 다소 왼쪽으로 이동해, 좌파 정당이 대중의 가시적 선택지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의당은 참을성 있게 이런 ‘모델’을 추구하는 것의 일부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