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서는 운동에서 정체성 정치가 효과적인 수단일까?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루려면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 이런 물음을 진지하게 던지는 사람이라면 신간 《오인된 정체성》(두번째테제)의 출간을 반가워할 것이다.

오인된 정체성 - 계급, 인종, 대중운동, 정체성 정치 비판 아사드 하이더 지음, 권순욱 옮김, 두번째테제, 200페이지, 14,000원

저자 아사드 하이더는 좌파 매체 〈뷰포인트〉 창립자이자 파키스탄계 미국인이다. 200쪽 분량의 두껍지 않은 책에서 저자는 정체성 정치의 역사와 그 작동 방식에 대해 심사숙고 해서 다루며, 여러 자극과 통찰력을 준다.

저자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인 인종 문제와 관련해 정체성 정치가 보인 한계를 중심으로 다룬다.

오늘날 정체성 정치를 이러저러하게 (심지어 우파 쪽에서) 비판하는 글들이 꽤 있지만, 차별에 굳세게 맞서면서도 좌파적 관점에서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정체성 정치란 특정 차별을 겪는 당사자들만이 그 차별을 이해할 수 있고, 차별에 맞서는 데 이해관계가 있으며 가장 잘 맞설 수 있다는 주장을 골자로 한다.

그래서 정체성 정치는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이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저항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파편화의 위험

그러나 저자는 여러 풍부한 사례를 들어서 정체성 정치가 어떻게 차이를 뛰어넘은 단결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운동의 힘을 약화시키는지 보여 준다.

예컨대, 미국의 한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을 백인들이 주도하자, 일단의 흑인 학생들이 분리를 선언하며 학교 당국에 맞선 운동을 약화시켰다.

경찰 폭력에 맞선 투쟁을 백인이 조직할라치면 흑인이 아닌 사람이 이런 쟁점을 다룰 자격이 있는지 논쟁이 벌어진다.

한 집회에서는 “오로지 흑인만이 마이크를 쥐고 지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행진의 맨 앞에는 흑인들이, 백인 ‘동조자’들은 맨 마지막에, ‘갈색인’들은 중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 공지됐다.

이렇게 차이에 주목하는 정치는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크고 지속적으로 벌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는 저자가 직접 대중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해 온 사람이고, 이 책도 광범하고 전투적인 대중운동 건설에 기여하길 바라며 쓰였다는 점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광범한 대중투쟁 건설이라는 전망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언어를 바꾸는 일이나 개인적 상처를 보상받는 일 등에 집중하게 됐다. 이는 더 한층의 파편화와 분열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컨대, 저자 자신이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점거 투쟁이 벌어졌을 때, 일부 학생들은 “점거”(occupy)라는 용어가 식민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며 대안 용어를 제출하는 데 골몰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 정체성 정치에 내재한 문제점을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라는 구조를 비판하지 않으면, 차별받는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체제 내에서 (상층부의) 인정을 획득하는 것, 개인의 상처에 대한 배상과 포용을 요구하는 것이 운동의 결론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흑인이나 여성이 올라가는 것이 종종 정체성 정치의 결론이 되곤 했다.

다양한 차별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정체성으로 차이를 긋지 말고 광범한 연대와 대중투쟁을 중시해야 한다 ⓒ출처 픽사베이

흑인 내에서도 엘리트 집단들이 이런 정체성 정치에 기반해 상층부로 올라갔다. 이는 흑인 공동체 내부의 계급 모순을 가렸다.

“[흑인 엘리트들은] 통합된 이해관계를 지닌 단일한 인종 공동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에서 자신과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흑인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눌렀다.”(44쪽)

이 모순은 미국에서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 자리에 올랐을 때 폭발했다. “백악관에는 흑인 가족이 있었지만, 흑인 공동체에 대한 경찰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57쪽)

인종과 계급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운동은 이런 흑인 공동체의 계급 모순 속에서 터져 나온 운동이었다.

저자는 인종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에 반대하며, 인종 개념이 노예제와 자본주의의 역사와 함께 개발된 허구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1960~1970년대 흑표범당이나 맬컴 엑스 등이 주창한 혁명적 흑인 해방 운동 조류들을 지지하며 그들이 인종차별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하나로 보았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결론으로 자본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서서 우리 모두 “반란자적 보편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종이 아니라 계급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조야하게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계급 환원주의”도 비판한다.

하지만 저자는 계급(착취)과 차별의 관계에 대한 전략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인종과 계급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그 어느 쪽도 정치의 토대가 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저자는 어떤 것이 더 중심적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환원주의가 될 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그런데 서평자가 보기에 계급과 차별의 관계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평자도 계급과 차별을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급은 단지 여러 차별 중 하나가 아니다. 계급은 관계이고 자본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관계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을 가진 착취하는 자와 가지지 못한 착취당하는 자의 계급 관계로 짜여져 있다.

자본주의에서 소수의 지배계급이 이런 착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차별을 부추기는 게 필수적이다. 

이런 차별은 노동계급 내 차별받는 집단만 취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처지를 약화시킨다.

그렇기에 착취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라도 노동계급은 단호하게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차별은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에 차별에 맞서며 단결한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면 온갖 차별의 뿌리도 함께 뽑혀나갈 것이다.(이에 대한 설명은 〈노동자 연대〉 363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인종차별은 계급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참조하시오.)

광범한 연대

한편, 신자유주의의 부상에 관한 저자의 설명에는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 정부가 집권한 상황을 살펴보며 이것이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같은 우파들이 득세한 상황에서 교훈을 준다고 지적한다(이 책은 2018년에 쓰였다).

그런데 저자는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가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 정부였다는 스튜어트 홀의 유명한 규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대처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기층 노동자들에게도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고 과장하기 쉽다.(대처 시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는 〈레프트21〉 102호 기사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돌아보는 마거릿 대처’를 참고하시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자가 인용하는 방대한 지식인들(CLR 제임스, 알랭 바디우, 주디스 버틀러 등)과 흑인 급진주의자들에 감탄하면서도, 그 인용문이 워낙 많아 정신이 약간 아득해질 수도 있다. 인용문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생략된 부분이 많아, 저자가 이들의 관점을 얼마나 동의하는지 알기 어려운 난점도 있다.

책의 내용과 별개로,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서 독해가 쉽지 않다는 상당한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여러 책을 읽는 것 보다 이 책 하나를 애써 읽는 게 더 남는 게 많을 것이다.

그러나 종합하자면, 차별 반대 운동이 광범한 연대를 모아내지 못하는 최근 상황들에 비춰 볼 때 해방을 위한 광범한 연대와 단결을 강조하는 이 책의 장점은 매우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