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정치권에서 청년층의 ‘젠더 갈등’ 논란이 뜨겁지만, 정작 여성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는 뒷전이거나 무관심하다.

우파는 문재인 정부가 ‘친여성적’이라며 공격하지만, 문재인 정부 하에서 여성의 삶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생리대 문제이다.

올해 3월 24일 여성 청소년 생리대 무상 보편 지급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기대를 모았다. 생리대 지원 대상이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서 모든 여성 청소년으로 확대된 것이다.

2016년 ‘신발 깔창 생리대’ 사건과 ‘생리 빈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 5년 만에 비로소 개선안이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법안은 “구체적인 기준과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도록 해, 빠져나갈 구멍도 있었다.

좌절된 무상 보편 지급

역시나 문재인 정부는 생리대 무상 보편 지급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았다. 내년도 예산안에 여전히 ‘소득 기준’을 명시했다. 그래서 내년에도 여성 청소년 중 일부에게만 생리대가 지원될 예정이다.

청소년 생리대 보편 지원을 위해서는 예산이 최소 1152억 원으로 증액돼야 한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2022년 생리대 지원 예산은 지난해에 견줘 고작 9억 원이 인상된 81억 원이 책정됐다. 만 9세~10세를 지원 대상에 새로 포함하고 물가 인상을 고려해 지원액을 찔끔 늘린 것이다(월 1만 500원에서 1만 2000원으로).

이는 전체 여성 청소년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약 13만 명에게만 생리대를 지원할 수 있는 액수에 불과하다.

예산 확보가 어렵다지만, 문재인 정부는 기업 살리기와 무기 구입 등 국방비에는 막대한 돈을 거침없이 쏟아부었다.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우선순위가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살림이 팍팍해지고 있는 노동자·서민층 여성들에게 비싼 생리대 가격은 꽤 부담이다. 실업 등으로 조건이 악화된 청년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지난 5월 ‘서울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가 11~24세 여성 12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98퍼센트가 생리 용품 구매 비용이 비싸다고 답했다. 74퍼센트는 ‘비용이 부담돼 생리용품 구매를 망설인 적이 있다’고 했다.

ⓒ자료 출처 서울시청소년월경용품보편지급운동
ⓒ자료 출처 서울시청소년월경용품보편지급운동

한국은 생리대 가격이 OECD 국가 중 가장 비싸다. 2004년에 생리대에 붙은 부가가치세가 폐지됐지만, 생산과 유통 과정에는 여전히 세금이 붙고 있다.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시급히 무상으로 생리대가 지급돼야 한다. 또한 청년층 여성에게도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파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은 ‘예산 낭비’ 운운하며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다. 청소년 생리대 지원 문제에서 보듯, 진정한 문제는 여성 지원 예산이 심각하게 부족한 데 있는데도 말이다.

반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생리대는 공공재”라며 성남시장 시절부터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에 앞장서 왔다. (지원대상 연령 면에서 불충분하지만) 만 11~18세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리대 무상 지급 방안을 성평등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예산 부족’을 핑계로 청소년 생리대 보편 지급 시행을 미룬 것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미 법이 있는데도 잘못된 우선순위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이 문제이므로, 현 정부의 개혁 후퇴에 침묵해선 안 된다.

일관된 책임 회피와 무대책

문재인 정부 임기 초에 폭로된 독성 생리대 문제도 정부의 외면으로 흐지부지되고 있다.

2017년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10종을 검사한 결과, 발암성 독성 물질 등이 검출돼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일회용 생리대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증언과 사회적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생리대 제조 기업들은 ‘영업 비밀’이라며 성분을 공개하지 않았고, 정부는 기업 이윤 침해를 우려했는지 제대로 규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1·2차 자체 전수조사에서 일회용 생리대의 독성 물질이 확인됐지만, 식약처는 ‘검출량이 미미해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며 안전성 논란을 일축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기업 이윤 보호를 위해 독성 생리대 문제의 본질을 흐리며 여성환경연대 비방에 앞장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리대 제조판매사 ‘깨끗한나라’가 여성환경연대를 상대로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독성 생리대 반대 여론을 위축시켰다. 다행히 얼마 전 1심에서 ‘깨끗한나라’가 패소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여성 단체들과 정의당 측의 요구를 수용해 역학조사와 민관합동협의체 구성을 추진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민관합동협의체가 4년 동안(2018년~2021년) 진행한 역학조사가 올해 4월에 이미 끝났지만, 관계 부처의 반대로 지금까지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일회용 생리대 사용이 ‘외음부의 가려움증·통증 등 생리 관련 증상 발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를 정부 부처인 식약처와 질병청이 신뢰할 수 없다며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기업들의 수익성에 방해가 될까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와 이윤 논리에 도전해야

한편, 생리대 관련 운동이 돌아봐야 할 점도 있다.

주요 여성단체들은 ‘생리 빈곤’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여파 속에서 새 정부의 거는 여성들의 기대감도 컸다. 그 결과 청소년 무상 보편 지급 법안이 통과되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법안은 공문구가 돼 버렸다. 이처럼 경제 불황기에 복지 확충에 인색한 정부의 개혁 실행을 강제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만만찮은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친화적인 주요 여성단체 지도자들은 그 정부에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데는 소홀했다.

이런 한계는 독성 생리대 운동에서도 나타났다.

주요 여성단체들과 정의당 여성위원회 등이 참가한 ‘생리대 안전과 여성건강을 위한 행동네트워크’는 올바르게도 독성 생리대 유해성을 폭로하며 안전 대책 마련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를 위한 해법으로 역학조사를 위한 민관합동협의체 구성을 우선시하며 정부와의 협의에 무게중심을 뒀다.

물론 철저한 역학조사는 필요한 일이다. 정부와 기업들이 이를 제대로 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여성단체들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감시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민관합동기구에서 정부와의 협의에만 치중하다 보면, 정부가 기업들 눈치를 보며 생리대의 해악성을 축소·은폐하거나 이미 나온 조사결과조차 발표하기를 꺼릴 때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안전성 조사와 독성 생리대 생산 규제를 강제할 수 있는 동력은 기층 대중의 압력을 조직하는 것에서 나올 것이다. 또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이미 드러난 독성 물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생리대는 필수품이다. 따라서 안전하고 값싼 생리대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청소년과 청년층 여성에게는 생리용품이 무상 보편 지원돼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 논리와 이를 수호하는 기업주, 국가에 효과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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