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OECD와 G20 등 136개국은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디지털세’를 도입하고, 법인세율도 최소 15퍼센트로 규정하기로 합의했다.

다국적 대기업(주로 IT 대기업)들은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들에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인세는 통상 사업장 소재지를 기준으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다국적 대기업들은 본사 소재지 외에 다른 나라에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지만 그 나라들에서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디지털세는 다국적 기업들의 사업장 소재지뿐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이익이 발생하는 나라들에게도 과세권을 일부 분배한 것이다. 또한 법인세 최저 세율 도입은 법인세율이 15퍼센트보다 낮은 국가에 기업이 있으면 다른 국가들이 추가 과세를 할 수 있게 한다.

이번 합의에는 국가들 간의 복잡한 셈법이 자리잡고 있다.

디지털세 도입 논의는 2018년부터 본격화됐지만, 주로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갈등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해 왔다.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으로 대표되는 다국적 IT 기업들의 노골적인 탈세는 악명이 높다. 구글의 경우 한국에서 앱 결제 매출만 5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법인세율이 더 낮은 싱가포르에 서버를 두고 세금을 회피해 왔다.

유럽연합 등은 자국 국민을 상대로 돈은 벌면서도 세금은 안 내는 다국적 IT 기업을 못마땅하게 여겨 왔다. 코로나19로 국가 재정 지출이 늘자 세수 확충의 필요성도 커졌다.

글로벌 IT 기업의 대명사 FAANG 이들은 노골적인 탈세와 조세회피로 악명이 높다

또한 유럽연합에 설립된 IT 기업들이 조세 회피처에 설립된 기업들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은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도 약화시킨다. 한국에서도 네이버가 구글의 ‘탈세’를 정면 공격 하면서 구글세 도입에 목소리를 높여 온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다국적 IT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디지털세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이 기업들이 미국 자본주의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부문이다. 오바마 정부든, 트럼프 정부든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려 디지털세에 반대했다.

그래서 프랑스 등 유럽연합의 일부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디지털세를 도입하자, 미국 정부도 프랑스 수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갈등으로 이어져 왔다.

이번 합의는 갈등의 봉합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유럽연합의 디지털세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서방 동맹을 복구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과 관계가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적하듯이 이런 행보는 “디지털세 도입을 요구하는 유럽연합의 압력을 완화하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서구 자본주의를 더 수월하게 결집시키게 할 수도 있다.”

동시에, 바이든은 법인세 최저 세율 도입을 제안했다.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이 법인세율이 낮은 조세회피처(아일랜드 등)으로 유출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미국의 세수를 늘리려 하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경기 부양책 재원 충당에 도움이 된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같은 언론들은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도하며, 글로벌 대기업들의 횡포에 제동을 거는 “조세 개혁의 큰 걸음”, “조세 정의·분배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에 도입된 디지털세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거대 IT 기업들을 통제하는 고삐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조사를 보면, 디지털세가 도입되더라도 한국 정부가 구글에게 부과할 수 있는 세금은 여전히 푼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6년간(2015~2020년) 구글이 냈어야 하는 법인세는 7849억 원인데, 현재 OECD 합의안을 적용해 거둘 수 있는 디지털세를 추정하면 733억 원에 불과”하다. 법인세율로 따지면 2.2퍼센트에 그친다.

오히려 기획재정부는 삼성전자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디지털세를 더 내게 되면 국내에서는 그만큼 법인세를 감면해 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 그래도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혜택이 많은데 또 대기업들을 봐 주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벌써부터 디지털세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한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요금을 12~17퍼센트나 인상한 것이 한 사례다.

디지털세로 늘어난 세수를 국가가 서민층 복지 확대에 쓰리라는 보장은 없다. 팬데믹 기간 동안 각국 정부들의 늘어난 재정 지출에서 기업 지원이 압도적이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간 자본가들 사이에서도 다른 산업 자본들과의 조세 형평성을 주장하며 디지털세를 찬성하는 목소리들이 있어 왔다. 그런 만큼  이번에 늘어난 세수는 다른 부문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주로 쓰일 공산이 높다.

그러므로 IT 기업들이 늘어난 세금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또한 기업 지원에 돈을 쓸 것이 아니라, 노동자 서민의 복지와 일자리, 임금 인상 등을 위해 투자하라고 요구하며 투쟁과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