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WTO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농민들의 투쟁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수입개방 반대와 조국 농업 사수가 이 투쟁의 효과적인 대안일지는 의문이다.

우선 수입개방 반대는 상대국의 무역보복이라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 쌀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즉시 조지 W 부시는 한국산 자동차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응수할 것이다. 이것은 고용불안 같은 다른 민중의 생존권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수입개방 반대는 자국의 상품이 타국의 상품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불가피하게 조장하는 경향을 수반한다. 중국산 쌀이나 태국산 쌀이 한국산 쌀보다 밥맛이 없다거나 우리 쌀이 무조건 좋다는 식의 주장으로 연결되기 쉽다. 그리 되면 타국의 농민들을 한국 농민의 경쟁자로 여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농민이나 태국 또는 베트남의 대부분의 농민들도 한국 농민들처럼 쌀 생산이 늘수록 더 가난해지고 있다.

태국에서는 유전자 조작된 종자를 공급하는 다국적기업들이나 태국 대기업들만이 유일한 수혜자다. 중국 농민들도 부채와 세금 부담에 반대해 반란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조국농업 사수라는 요구는 여러 면에서 당혹스런 감이 있다. 다국적 종자기업 몬산토, 노바티스, 세미니스가 한국의 주요 종자 기업들을 모조리 인수한 지 오래다. 모든 축산 사료와 양식어류의 사료는 1백 퍼센트 수입이다.

이미 한국의 농업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편입돼 있고, 국내산보다 훨씬 값싼 수입 농·축산물이 시장에서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수입개방 반대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도시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쌀값이 싸져 봤자 도시 노동자들한테는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쌀 소비량 자체가 20년 동안 30퍼센트가 줄어들고 국내산 쌀 가격조차 계속 낮아지고 있기에 수입 쌀과의 가격 차이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수입개방 반대나 조국 농업 사수 같은 민족주의적인 구호는 싼 가격 때문에  수입 농산물 구입 코너로 발길을 돌리는 도시 노동자들과 신자유주의 농정의 피해자인 농민들이 연대하기에 효과적이지 않다.

수입개방 반대와 조국농업 사수는 실제 농민들이 강렬하게 바라는 요구들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많은 지역 농민회가 더 강조하는 핵심 구호는 추곡수매제 부활이다. 그리고 농가부채를 실제로 경감하라는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민들에게 지원됐다는 57조 원 가운데 실제 지원액은 3조 원도 안 된다.

농가부채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 자금 금리를 지금보다 훨씬 낮출 필요가 있다. 권영길 임시 대표의 16대 대선 공약이기도 한 ‘농업 정책 자금 금리 1퍼센트대로 인하’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다양한 농민 보조금(직불제) 제도도 필요하다. 자연재해 지역이나 조건이 불리한 지역 등에는 더 많은 보조금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은 이미 전농의 10대요구에 포함돼 있다.

새로운 재원이 없이도 당장 과잉 농산물과 기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도 있다. 전농이 그 동안 계속 주장해 왔듯이 정부는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지원하고 국내 결식 아동을 비롯한 빈곤층에 무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부자들한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는 노동자·농민의 생존권을 지키자는 주장은 ‘조국농업 사수’보다 폭넓은 지지를 받기에 훨씬 더 적합하다. ‘자주적 민족경제’라는 신기루를 쫓기 보다는 노동자·농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공동의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