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특히 한일갈등 사태, 조국 사태, 검찰 ‘개혁’과 공수처 가동 사태 등의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노동계급의 조건 및 운동과 직결된 ‘사회적 대화’(경사노위)와 노사정 잠정합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는 정치적 무능과 계급의식 부족을 드러냈다.

‘계급의식’은 노동계급[일부가 아닌] 전체의 [단기적이지 않은] 장기적 이익과 목표, 이를 위한 수단들을 중요한 것으로서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정치적 약점과 그 결과들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마녀사냥의 일환으로 민주노총은 노동자연대 접근금지령 발효를 결의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 결정이 기본권에 위배된다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비판 여론을 피하려고 법률가들을 동원해 문구를 성안 중이다.

선 결정, 후 성안 참 대단한 의사결정 기구이다. 문구가 성안되지도 않았는데 결정을 내리다니. 그것도 전원 합의로.

각 부서 책임자들이 운용하는 행정 체계로서 관료제의 구성 요소는 이런 것들이다: 권위의 서열, 칸막이화된 분업과 그에 따른 다양한 부서들, 판에 박힌 일상, 번거로운 절차들, ‘규정대로 한다’는 식의 형식주의.

그러나 관료제의 원천은 관료 자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 관료는 (사용자와의) 교섭 전문가를 뜻한다.

교섭 전문가 집단으로서 노동조합 관료에 대해 알려면 먼저 노동조합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의 성격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거의 모든 부를 만든다. 농민과 전통적 도시 중간계급(특히 장인)도 부를 생산하지만, 노동계급 생산물의 가치에 견주면 비할 바가 못 된다.

노동자가 생산한 부는 극소수인 자본가들이 차지한다. 자본주의의 이런 근본적 모순 때문에 노동자들과 노동력 사용자들 사이에는 계급투쟁이 벌어진다.

노동자들은 단결을 도모하게 되는데,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고 결집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만드는 조직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혁명적 조직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국민의힘 후보를 찍는 사람부터 자본주의를 전복하길 바라는 혁명가까지 정치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가입한다. 더구나 특정 산업이나 특정 업종, 특정 직종의 노동자들을 조직한다. 그래서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보다 일부의 이익을 표현할 뿐 아니라(이를 부문주의라고 한다), 심지어 다른 노동조합과 경쟁하기도 한다.

게다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분리시킨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임금 등 노동조건과 관련된 요구들은 정치적 요구가 아닌 사회·경제적 요구이므로 노동조합이 다룰 수 있는 반면, 더 넓은 사회의 변화에 관련된 요구들은 개혁주의 정당이 다룰 요구라고 생각한다.

조직의 폭넓음 때문에 물타기 되거나 모호해지거나 증발된 정치([노동]조합주의), 조직 대상의 부분 편중, ‘정경분업’(정치와 경제의 분리) 등 ᅳ 이 모든 일은 노동조합이 착취에 맞선 투쟁에서 중심적 구실을 하면서도, 또한 노동자들의 이익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지키려 하고, 착취 자체를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착취의 조건만을 개선하려 해서 생기는 일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중요한 무기이면서도, 투쟁을 제한하는 기구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이중적 성격을 보지 못하면 성마르게 치달아 노동조합 운동에 환멸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성격 자체가 아니라) 특정 노동조합 지도자(예: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가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예: 민주노총 좌파)도 흔히 잘못된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 지도자가 투쟁을 이끌지 않는 것을 그저 비난만 하고 투쟁 일구기에 착수하기를 방기하거나, 아니면 좌파적 지도자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예컨대 2020년 7월 노사정 잠정 합의가 큰 쟁점이 됐을 때 민주노총 좌파는 잠정합의안 반대를 조합원 대중을 동원한 투쟁으로 격상시키려 애쓰지 않았고, 좌파 정치단체들 대부분도 그런 중집 성원들에 대해 무비판적이었다.

이 두 경우 모두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행동할 잠재력을 간과한 채 노동조합을 상의하달 식으로 이해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이는 노동조합 관료의 관점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좌파’를 자처해 온 활동가들과 그들의 정치 조직들이 그동안 노동조합 집행권 장악을 지향하면서 흔히 범해 온 오류이고 과오이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행동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혁명가들은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파악하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행동에 나섬으로써 싸울 자신이 생기고, (연대를 우습게 아는 시대에) 단결을 이루도록 고무해야 한다.

중재자

‘관료’는 노동조합의 이런 모순된 성격이 현실화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다. 그저 모욕하고 질타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혁명적 조직에도 관료와 관료주의가 있다.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겨우 200명 안팎 규모(모두 활동 당원이었다)이던 1901년 말에 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 불필요한 절차에 집착하며 일 처리를 지연시키는 당 관료들의 형식주의를 매우 날카롭게 비판했다. 노동자연대에도 관료들이 있다(필자를 비롯해). 비록 우리는 제정 러시아의 혁명가들처럼 시베리아 유배를 갈 일상적 위험 속에서 활동하지는 않지만, 민주노총 관료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낮은 임금을 받는다(4대 보험 없고 판공비 없이 월 50~60만 원 수준).

노동조합 기구를 유지하려면 일단의 관료(집합명사)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노동조합 관료는 작업장의 일상과 그곳의 조합원들에게서 떨어져 활동하는 고위 상근간부층이다. 그들의 일상은 사용자와 교섭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것, 즉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관료는 (다른 사회 계급처럼) 그들이 처한 물질적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투적이기 이를 데 없는 현장조합원이 노동조합 관료가 되더라도 타협의 압력을 받는다. “현장파가 올라가면 국민파 된다”는 말은 이제 진부한 말이다.

좌파적 노동조합 지도자가 결정적 순간에 파업을 철회하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전투적 노동조합 지도자 출신으로 정부 수반이 돼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광원 노동조합 지도자 출신으로 ANC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앞장서 온 시릴 라마포사 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이집트 독립노동조합연맹 창립자 출신으로 엘시시 반혁명 군부 정권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카말 아부 아이타까지, 이런 사례는 국제 노동운동사에 수두룩하다.

노동조합 관료는 노동조합 기구(그의 사회적 지위의 원천인)를 보존하는 데에 큰 이해관계가 있다. 이를 두고 독일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이들[노동조합 관료]에게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 고귀해서, 투쟁의 이해관계도 그것에 비하면 부차적이게 된다.”

가령 2003년, 2006년, 2009년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철도공사의 손배가압류청구소송은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로 하여금 노동쟁의에 강요된 법적 제약들 때문에 파업 투쟁이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들의 온건함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하려는 당시 노동조합 관료층에 의해 강력히 고무됐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재정을 위협하는 노동조합 단속 법률은 노동조합의 재정(그리고 관료 기구 일반)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파업 같은 행동을 노동조합 관료가 점점 더 자제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현실의 경험은 노동조합 단속 법률의 존재와 그것의 실행은 별개 문제이고, 그런 법률은 반격해서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많은 노동자들이 법을 무시하고 저항할 투지를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것이 또한 2016년 가을 철도노조 파업의 교훈이기도 했다. 그 파업은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과 만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어 결국 국회가 박근혜를 탄핵하게 만들었다.

노동조합 재정에 대한 국가의 공격도 쟁점이지만, 못지않은 쟁점은 노동조합 재정에 대한 국가 지원이다. 노동조합 관료 기구의 핵심이 재정임을 잘 아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형태의 국가는 노동조합 기구에 재정 지원을 한다. 그리고 가장 온건한 노동조합 관료들은 이를 노동조합이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포장한다. 민주노총 산하 지역본부·지역지부들은 이미 국가(중앙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연간 수백억 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건물 임대와 관리·유지 비용 충당과 상담소와 비정규센터 운영 비용 충당을 위해). 상담소와 비정규센터 운영 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민주노총 규약상 금지돼 있다. 그런데도 지난 몇 년간 민주당 정부 하에서 암암리에 액수가 늘어 왔다(지난해의 경우 11개 지역본부 산하 43곳이 89억 원가량 받음). 민주노총 상층 기구 내부에서는 국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더 많이 받도록 허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러나 재정 자립성은 노동조합의 자주성(독립성)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국가가 그냥 마음씨가 고와 돈을 주는 게 아니다.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면, 국가의 압력(이는 요청의 형태로도 나타난다)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노동조합 기구에 대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 관료는 더 수동적인 조합원들의 정서를 반영하려 하고, 조합원들을 폭넓게 동원한 투쟁보다 자신의 교섭 능력을 점점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부나 사용자의 반격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로 파업에 점점 더 소극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조합원들의 권익을 지키려면 파업이 반드시 필요한 때조차 말이다. 또한 관료층 자체의 이익을 더 앞세우고,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분리시키는 경향[(노동)조합주의]도 증대한다.

이런 정치투쟁/경제투쟁 분리(분업)는 경제 파업은 허용되지만 정치 파업은 불법화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더욱 고무된다. 그리고 정치 파업이 불법인 상황은 노동조합 관료로 하여금 조합원들을 총력 동원한 대중 투쟁(특히 파업)보다는 국가 위원회 참여나 국회 로비에 더 힘을 쏟도록 하는 자극과 명분이 된다.(그런데 이처럼 협상을 중시하다 보면 때로 배신적 타협을 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정치투쟁/경제투쟁 분리(분업)는 많은 좌파 정치단체들이 노동조합 집행부에 참여하면서 노동조합의 성격에 적응해 개혁주의적이 되는 통로가 된다. 가령 노동자연대 측이 노동전선 측을 찾아가 그곳 간부들인 양동규 운영위원과 권수정 운영위원들의 처신(소위 ‘2차가해’ 관련한 민주노총의 노동자연대 숙정에 협력하거나 앞장서는 것)에 항의하자, 노동전선 측은 그 운영위원들이 각각 민주노총 간부(부위원장)와 금속노조 간부(여성할당 부위원장)로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므로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상집과 금속노조 상집에 가서 따지라”고 했다.

그래서 노동자연대 측이 정작 정치조직 노동전선 자체는 입장이 없는 거냐고 묻자 자기들은 정치적 입장이 상이한 단체들과 활동가들의 연합체이므로 통일된 입장을 가질 수 없다고 대답했다.

바꿔 말하면, 정치 조직 노동전선도 타협이 일상화돼 있고, 노동조합(민주노총)도 타협이 일상화돼 있다. 레닌은 타협을 배신적 타협과 불가피한 타협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협이 일상화돼 있으면 이 두 종류의 타협을 구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에 굴복하는 것은 과연 불가피한 타협일까, 아니면 배신적 타협일까? 좌파들 간의 사분오열과 지리멸렬과 기회주의를 더한층 심화시켜, 결국 노동조합 운동의 투쟁성과 급진성도 약화되도록 방임하거나 협력하거나 앞장서는데도 배신적이지 않고 불가피한 걸까? 도대체 양·권 개인들이나 노동전선 단체가 노동조합에 개입하는 목적은 뭔가?

확고하지 못하고 흔들림

노동조합 관료는 책임지고 노동자들의 불만을 관리해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누리므로 사용자들의 압력과 현장조합원들의 압력 사이에서 동요한다. 그들은 등 떠밀려 투쟁을 이끌 잠재력도 있지만, 투쟁의 발목을 잡을 잠재력도 있다. 광범한 대중 파업이 자본주의와의 타협의 여지를 위협하면 더욱 그렇다.

가령 1996년 12월 26일 민주노총은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당이 야당인 민주당을 배제한 채 날치기로 노동법 개악안을 통과시킨 데 항의해 파업에 돌입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은 파업 돌입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명된 파업은 꽤 지속되며 확산 일로에 있었는데, 돌연 1월 17일, “이후로는 수요파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직전에, 한보그룹이 부도났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IMF 위기”라고 불리던 경제 공황이 한창 엄습하던 1998년 2월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정리해고제를 수용하는 노사정 사회협약에 조인하는 배신적 타협을 했다. 조합원들이 대거 몰려가 격렬하게 항의하자 그는 사임하고 단병호 비대위원장이 그를 대체했다. 그러나 그도 약속했던 총파업 계획을 사흘 만에 취소했다.

물론 관료식 대응으로도 때때로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정부나 사용자들이 양보할 여유가 있거나 해당 쟁점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 대대적 투쟁 없이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나쁜 때는 그런 식의 대응은 일을 그르치게 만들 뿐이다. 예컨대 경제 침체가 길어지고 사용자들의 공세가 세진 최근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직고용을 얻어 내려면 파업과 함께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어 광범한 연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는 흔히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이나 투쟁 회피에 반대하는 조합원들과 혁명적 좌파를 엄격히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전투적인 조합원들에게 “다른 조합원들은 무관심하거나 보수적이다”며, 조합에 괜스레 분열을 일으키지 말고 단결하자고 호소한다. 노동자들이 ‘단결’이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귀 기울이는 것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단결’은 연대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다.

팔레스타인계 영국인 마르크스주의자 이가엘 글룩스타인(토니 클리프)은 노동조합 관료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들은 개혁주의적인 동시에 소심하다. … 그들은 개혁을 선사하길 원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아는데도 국가와 정말로 겨루어 보려 하지 않는다.(그런데 국가는 개혁을 허용하기는커녕 기존에 허용한 것마저도 도로 빼앗으려 한다.) 그러면서 개혁을 이룰 유일한 방법인 현장조합원 투쟁성은 두려워한다.”

지도부가 아니라 현장조합원이 관건이다

노동조합 관료 안에는 좌파적 관료와 우파적 관료가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관료 내 좌우 차이보다는, 노동조합 관료의 영향력이 현장조합원의 영향력과 반비례한다는 점이 분석상 더 선차적인 문제이다. 좌파적 노동조합 지도자도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관료로서 받는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가장 좌파적인 지도자도 다른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그와 결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가령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9월 총파업을 갖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던 산별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현장조합원들의 힘(압력)에 기대기보다는, (하루파업으로 축소된) 파업 집회의 연설에서 오히려 그들을 추켜세우며 달래려 했다. 그래서 그해 11월 민중총궐기는 총파업의 대안이자 타협의 산물이었다.

또한 올해 건보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건보 노조 집행부가 저지하려 하고 훼방 놓을 때 공공운수노조 지도부와 민주노총 지도부 성원들이 비판하지 않고 모두 침묵한 것도 또 하나의 사례다.

그러므로 분석의 출발점은 자본주의 하에서 사용자와 노동자들이 적대 관계에 있고 그 결과로 노동조합이 결성된다는 점이다. 그다음으로는 기층 노동자 대중과 노동조합 관료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를 좌파와 우파로 구분하는 것은 또 그다음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하고 싸울 자신이 생기려면 혁명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관건은 기층에서 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료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관료를 무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현장조합원의 압력이야말로 관료가 투쟁을 이끌도록 강제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를 압박하고 다른 노동자들의 연대를 조직할 현장조합원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 필요성을 1915년 스코틀랜드의 클라이드노동자위원회는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집행부가 노동자들을 제대로 이끄는 한 집행부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독자적 행동에 나설 것이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것은 기층 노동자와 노동조합 관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최고의 지침이다.

여기서 “독자적 행동”이라는 말이 공문구가 되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층 노동현장에서 동료 노동자들의 신망을 받는 투사들이 투쟁 전부터 네트워크를 구축·유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클라이드노동자위원회는 그 네트워크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각 업무현장의 대표로 이뤄져 있고 낡아빠진 규칙이나 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진정한 정서를 대변하려 한다. 우리는 사안이 중요하고 현장조합원들의 염원이 있으면 언제든 즉각 행동에 나선다.”

트로츠키가 공동전선에 대해서 한 다음 말이 노동조합에도 적용될 수 있다. “대중과는 언제나 함께하지만, 동요하는 지도부와는 그들이 대중을 이끌려 할 때 한해서만 함께한다. 대중의 압력에 떠밀려 지도자가 동요할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때는 지도자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때조차 결코 지도부 비판을 애써 삼가서는 안 된다.”

좌파적 집행부를 세우는 문제

노동조합 운동 안에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주장이 있다: 노동조합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범좌파’ 연합을 통해 선거에서 좌파 활동가가 당선되는 데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더 투쟁적인 노동조합 정책이 채택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좌파적 집행부의 등장은 노동조합 관료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조인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이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최상의 조합 활동가들이 조직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의 반영이기도 하다. 게다가 좌파적 활동가가 집행부 상근간부직에 오르면 노동자 투쟁의 명분을 대변하고, 정치적 운동에 연대하고, 기층 활동가들을 돕는 데 일정한 구실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관료 내의 정치적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 관료와 현장조합원들의 이해관계 차이이다. 좌파 집행부 세우기에 목표를 두는 전략의 한계는 노동조합 관료의 구실에 지나친 기대를 갖고 노동조합 기구를 좌파적으로 이끄는 것을 너무 크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집행부한테서 독립적으로 현장조합원들이 싸울 자신을 갖게 되고 그들 네트워크의 힘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투쟁하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관료가 보수적 압력에 밀려 후퇴하는 것을 막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데도 말이다.

극적인 사례로 1972년과 1974년 영국 광원 파업을 들 수 있다. 당시에는 지도부에게서 독립적인 아래로부터의 주도력과 동력이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심지어 위원장이 우파적 인물이었는데도 노동조합 역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반대로 광원들이 1984~85년에 최악의 패배를 겪을 때 당시 위원장(아서 스카길)은 매우 좌파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광원 노동조합 등의 현장조합원 네트워크는 전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의 좌파적 지도자들은 변화의 표현일 뿐 아니라 변화의 브레이크이기도 하다.”

이 점을 보여 주는 최근 한국 사례 하나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다. 민주파 집행부의 등장은 현장조합원들의 누적된 불만이 반영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몇 년간 현장조합원들을 실망시키고 활동가들이 좌파적 집행부 배출에 갈수록 관심을 쏟으면서, 현장조합원들의 능동성과 주동적 움직임이 약화됐다.

좀 더 급진적인 노동조합을 따로 만드는 문제

역사적으로 거듭 나타난 또 다른 경향은 활동가와 전투적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관료의 보수적 통제력이 약화되지 않는 것에 좌절해, 더 급진적인 노동조합을 따로 만드는 것이다. 20세기 초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즘의 대표 사례인 미국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 1920년대 초 독일의 좌파적 공산주의자들,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 공산당들의 ‘적색노조’ 등이 그 역사적 선례다. 한국에서는 알바노조가 민주노총을 비판하며 민주노총과 별개로 조직하려 했던 사례다. 그러나 그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더 유니온은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며 경사노위(디지털 플랫폼 노동: 배달 업종 분과위원회)에 참가했다.

레닌은 《‘좌파적’ 공산주의 — 유치증》에서 이런 경향을 반대했다. 혁명가들은 기존 노동조합에서 지지자들을 조직하고, 진정으로 투쟁할 현장조합원 조직들을 구축해 기회주의적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좌절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레닌의 견해는 본지 146호 ‘노동조합 운동과 초좌파주의’를 참조하시오.]

몇몇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따로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전략은 다수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회피하고 되려 전투적 조합원들을 덜 전투적인 조합원들한테서 떼어 놓고 인위적으로 운동을 분할한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이 전략은 노동조합 관료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도망치는 전략이다. 그래서 기존 관료가 조합원 다수를 계속 장악하도록 해줄 뿐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도전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사실상 현장조합원들이 압력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지도자에게 대중적 압박을 가하고 책임을 물을 잠재력을 무시하는 일이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관료와 사용자들을 돕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이런 우여곡절 끝에 새로 만든 노동조합도 개혁주의적 관료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노동조합 관료의 개혁주의라는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갖는 모순된 성격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맺음말

혁명적 좌파가 좌파적 노동조합 집행부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고도 가능한 특정 상황이 존재하고, 그런 전술(전략이 아니어야 한다)을 통해 혁명적 좌파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전술을 구사하든, 투쟁을 뒷받침하도록 노동조합 관료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든, 아예 노동조합 관료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을 건설하기 위해서든, 어쨌든 현장조합원의 힘을 키우는 것을 대신할 방법은 없다.

이런 행동으로 놀라운 승리를 얻어낼 수 있다. 1972년 영국에서는 현장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공인 파업을 했다.

이런 행동은 정부를 압박했고, 결국 정부는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던 조합원들을 닷새 만에 석방해야 했다.

이처럼 현장조합원 조직은 노동자들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투쟁의 결과뿐 아니라 투쟁 과정에서도 현장조합원 조직은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한국의 전투적인 노동조합원들은 대개 “현장조직”으로 불리는 그룹에 속해 있다. 이 그룹들은 주로 노동조합 집행부 선거 도전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서구의 계급투쟁 고양기에 등장한, 작업장에서 (동료 노동자들에 의해) 선출된 현장위원들의 조직과는 이름만 같을 뿐, 실체는 전혀 다르다.

물론 이러한 작업장 위원 조직이 있다고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영국에서는 작업장 위원 조직이 이끄는 ‘직장[작업장]위원회’ 운동이 성장했지만 그 정치는 취약했다. 노동조합의 개혁주의적 지도부와 공산당, 노동당 좌파가 ‘직장위원회’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공산당은 현장 투쟁을 확대하지는 않고 오히려 좌파적 집행부 선출을 강조했다. 노동당은 1974년 정권 교체를 이루자 바로 그 좌파적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영국의 ‘직장위원회’ 운동은 이때부터 이런 세력들에 압도돼 투쟁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투적인 노동조합 운동은 작업장에서 선출된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한가운데서 혁명적 좌파가 활동할 때 제대로 일어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데에 김종환 기자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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