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얼마 전 치러진 임원선거에서 낙선운동을 편 활동가(금속노조 노동안전실장)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그가 권수정 여성 할당 부위원장 후보를 “비방”하는 홍보물(유인물, 웹자보)을 유포하고 “반대표 행사를 종용”한 행위들이 선거관리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시정 통보를 무시했다는 ‘괘씸죄’도 더해졌다.

금속노조 노동안전실은 산업재해 관련 노동조합 활동 중 벌어진 한 노조 간부와의 갈등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권수정 후보(당시 여성부위원장)가 부당하고 불공정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해 왔다. 그리고 이번 금속노조 임원선거 기간에 홍보물을 발행해 권 후보에 반대표를 찍자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했다.(권 후보는 여성명부에 단독 출마해 찬반 투표 대상이었다.)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는 조합원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 행위로서, 찬반 논쟁을 할 일이지 징계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징계위에 회부한다는 것은 결국 비판받은 지도부가 자신을 비판한 활동가를 처벌하도록 해 주는 셈이다. (징계 결정은 중앙집행위원회가 한다.)

징계 회부의 근거가 된 금속노조 선거관리규정은 이렇다. “조합원 누구라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정하는 홍보물 외 선거 관련 홍보물은 제작·배포할 수 없다.”

이에 따르면, 허용되는 표현물은 노조의 공식 선거공보물, 노조 선관위의 승인을 받은 후보자 개인 홍보물 뿐이다.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이 아닌 조합원들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의사 표시도, 후보들의 정치·실천에 대한 평가 등 견해 표명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다들 말로는 “조합원 중심의 선거”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정작 조합원들은 선거에서 입 다물고 후보들만 쳐다보라는 것이다. 심지어 조합원들은 등록된 선거운동원이 아니면 낙선운동은 물론이고 당선운동도 못한다!

이는 헌법상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금속노조는 “노조 잡는 선관위”(〈금속 노동자〉, ‘공직선거법 위반을 빌미로 한 국가 중앙선관위의 재갈 물리기를 비판하며’)를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금속노조가 국가 선관위에 한 비판은 현재 금속노조의 선거규정에도 해당될 수 있다.

공직선거법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낙선운동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제약 조건이 달린다. 선거운동의 주체, 시간, 방법 등이 포괄적이고 엄격하게 규제된다.

가령, 낙천·낙선 대상자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은 허용되지만, 현수막을 내걸거나 인쇄물을 반포하고 서명을 받거나 확성기를 사용하거나 집회를 여는 것은 모두 금지된다. 사실상 하지 말란 소리다.

최근에도 대법원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후보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총선넷 활동가들에게 벌금형을 확정했다. “유권자의 입 막는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라”는 요구가 제기되는 이유다.

노동조합 민주주의

그런데 적잖은 노동조합들이 이런 억압적인 법률을 비판하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선거관리규정에 일부 규제 조항을 차용해 쓰고 있다. 심지어 공직선거법보다 더 규제적인 면도 있다.

노동조합 운동과 기구, 특히 그 지도자들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적응해 온 것의 한 효과일 것이다. 국가가 허용하고 권장하는 수단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노조 활동에서 점점 상층의 입법 로비, 각종 정부기관 등과의 사회적 협의, 법률 소송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그 방증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공명정대한 선거”를 위해 “엄정 중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선거에서 조합원들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주장들을 하면 선거의 공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립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다. 조합원들이 “엄정 중립”을 지키며 침묵해야 “공명정대한 선거”가 가능하다는 것은 모순되게 들린다.

공정과 단합을 유지하겠다며 조합원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관료적 발상일 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노동조합 선거는 점점 더 지도자들(이나 그 지망자들)만의 ‘리그’가 되고, 조합원들에겐 침묵과 수동성만 조장할 뿐이다.

이런 일들은 다양한 의견 개진과 토론을 통해 단결된 행동을 해 나아갈(즉,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료적 행정주의에 더 의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불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냉소

지난 20여 년간 노동조합 상층 관료층이 안착되고 ‘현장’(기층)과 멀어지면서, 금속노조 임원선거도 점점 더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후보가 나와도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공약을 봐도 비슷하고 구태의연한 얘기들의 반복이라 변별력이 없다는 얘기가 많다. 각각의 후보가 그동안 어떤 주장과 실천을 했는지 대다수 조합원들은 알기 어렵다.

이는 무엇보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이 선거 때는 이전 지도부의 온건함과 배신을 비판하며 당선하고도, 당선 이후에는 별반 차별성을 보이지 않고 노동조건 개선 염원에 부응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돼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면, 조합원들의 의사 표현을 보장하고 정보를 공유해 토론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사 표현의 기회를 늘리고 그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대중적 투쟁이 활성화돼야 한다.

지도력은 이런 과정의 토론과 행동 속에서 경험으로 더 잘 검증되는 것이다. 낙선운동을 금지하고 징계로 엄벌하는 것은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조합원들의 냉소만 부를 수 있다.

한편, 이번에 금속노조 선관위는 노안실장이 “후보자에 대한 비방 금지” 규정도 어겼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낙선운동은 곧 비방’이라는 식으로 곧장 나아가는 것도 부적절하다. 이는 허가되지 않는 의견 표명 자체를 불온시하기 때문인 듯하다. 또, 비방과 비판을 사실상 구별하지 않는 듯도 하다. 

금속노조 선관위는 이미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가 처리 종결한 사건임에도 노동안전실 측이 그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그 중집 결정 자체가 이전의(노안실에 유리한) 결정을 뒤엎는 것이어서 논쟁의 쟁점 사안이다.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자유롭게 비판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누군가 설사 잘못된 주장을 편다고 해도, 이를 행정적 규제로 차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 측의 지원을 받아 선거에 개입하거나, 노동조합 활동과 무관한 후보자 개인의 사생활을 끄집어 내 음해하거나, 대화와 소통을 방해하는 폭력을 쓰는 등의 행위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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