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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영국 대처 정부 시절 광원 파업의 기억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봤다.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뮤지컬을 보러 갔으나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뮤지컬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1984~1985년 영국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원작 영화보다 훨씬 경쾌하고 힘이 넘쳤다.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나는 뮤지컬 첫 장면부터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와 달리 뮤지컬에서는 처음부터 영국 광원노조의 파업 노동자들이 함께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나오는 노래는 'Stars Look Down'으로, 마가렛 대처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모두 힘을 합쳐 투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주인공 빌리가 런던으로 발레 오디션을 보러 가려고 하지만 오디션 참가비와 오고가며 묵을 숙박비, 교통비 모두 턱없이 부족해 아버지인 재키 엘리어트가 고민 끝에 파업 대체 인력에 지원하는 장면은 뮤지컬에서도 나온다. 이때 주변의 많은 파업 노동자들이 재키를 말렸는데, 노동자들이 본인의 어려운 형편에도 십시일반으로 귀한 돈을 빌리의 꿈을 위해 조금씩 기부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1년 동안 파업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 나머지 재키가 대체 인력에 자원했을 때, 같은 파업 노동자이자 빌리의 형인 토니는 울분에 차 애꿎게도 빌리에게 욕을 해대며 화를 낸다. 당시 파업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이때 한 배역이 ‘그들(사용자와 대처 정부)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라고, 우리끼리 싸우는 거 말이야.’ 하고 소리 친다. 멋들어지는 노래의 한 소절도 아니었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대사였지만 이 뮤지컬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이었다.

영웅적 파업과 패배

이 뮤지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4~1985년 영국 탄광 지역에서 벌어졌던 광원 파업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영국 광원 파업은 1년이라는 영국 최장 기간의 영웅적 파업 끝에 패배하였다. 대처의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와 서민을 병들게 했다.

파업 동안 승리할 뻔한 순간들도 있었다. 노동자들이 셰필드 근처 오그리브 창고에서 코크스 공급을 막기 위해 대규모 피케팅을 시도 했을 때와 1984년 7월 항만 노동자들이 보수당 정부의 파업 파괴 행위에 반대해 전국적 파업을 잠깐 동안 벌였을 때 그랬다.

영국노총(TUC) 지도자들은 끝내 파업 노동자들을 외면했다. 이들은 효과적인 대규모 피케팅을 오히려 가로막았고 광원들을 홀로 싸우게 남겨 뒀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정말 열심히 싸웠음에도 상층 노조 관료의 배신과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자신감 부족으로 제대로 연대하지 못했던 것이 이 파업 패배의 큰 요인이었다.

연대

하지만 이 파업에는 수많은 연대가 존재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영국 LGBT 활동가들이 결성한 ‘광원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LGSM)’도 의미 있는 사례다.

사진의 왼쪽. 소셜리스트 워커의 팻말.
1984~5년 영국 광원파업 당시 소셜리스트 워커 팻말

뮤지컬에서는 1984~1985년 파업 당시에 사용됐던 팻말의 디자인을 고스란히 살려 소품으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뮤지컬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눈에 띄었던 팻말 중 하나는 영국 혁명적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의 “Victory the the miners / Solidarity will win(광부들에게 승리를 / 단결은 승리할 것이다)” 팻말이었다.

실제로도 당시 파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던 구호였다고 한다. 그때 그대로의 팻말 디자인을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 뮤지컬 공연 현장에서 보게 되다니, 〈소셜리스트 워커〉를 발행하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1984~1985년 광원 파업 때 잘 연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2022년 2월 2일까지 공연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대처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재치 있는 가사가 더해진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 공연 장면도 일품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자본주의에 맞서는 이들이라면, 약간은 부담스러운 티켓값을 지불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한 연말 내지 연초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