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투쟁연대 준비모임(이하 노해투)는 얼마 전 민주노총의 〈노동자 연대〉 신문 지지자 억압·차별(사상검증, 표현물 반포 금지 등) 결정에 억지춘향 식 입장을 내놓았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4월 노동자연대와의 연대 단절을 한 것은 옳았으나 이번에는 너무 오버하는 바람에 노동자연대가 고립되게 그냥 놔두지 않는 실책을 범했다. 그럼에도 노동자연대는 실제로 2차가해를 했으므로 원인 제공을 했다.

그 전에 우리는 민주노총의 결정을 이렇게 반박했다: 백보 양보해 우리가 ‘2차가해’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걸 이유로 민주노총이 노동자연대 소속 조합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관료 기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상검증까지 하겠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정치적 자유 침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보안법에 의한 민주적 기본권 침해에 빗대어 설명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면, 노해투는 마치 보안법 피해자에게 ‘당신이 그런[친북 또는 혁명적 또는 둘 다] 주장을 했으니 공안 당국에 원인 제공을 한 것이다’ 하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입장은 방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방어하는 척이라도 하자니 부자연스런 논리를 펴게 된 결과이다.

사실, 만일 우리 측이 우리의 2차가해 사례를 들라고 노해투에 요구한다면, 노해투는 그런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를 주저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노해투가 그런 사례를 실제로 제시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사건과 관계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사건 관련성 여부는 실제로 따져 봐야 아니까.

노해투는 반론을 펴려 할 때 다시 멈칫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반박하는 즉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같은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 추구자들에 의해 ‘2차가해’ 행위로 몰리며 제지를 받을까 고민될 것이다. 우리야 민주노총과 관련해 손해 볼 게 아마도 더 남아 있지 않지만, 노해투는 민주노총 일부 조합 조직의 집행권 획득에 관심이 많으므로, 우리와 ‘2차가해’ 문제로 논쟁하는 것이 별로 득 될 게 없을 것이다.

이런 제약과 자기검열이 자유로운 상호 토론과 논쟁에 도움이 되나?

노해투는 20개월 전 민주노총의 (노동자연대와의) 연대 단절이 옳았다고 정당화한다. 그리고 노해투 자신도 (변혁당과 마찬가지로) 민주노총의 수많은 노동자연대 배제 행위를 번번이 지지했다.

사실 민주노총의 갑질과 완장질도 (그리고 심지어 위기 시기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보안법을 내세운 국가 탄압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가 민주노총보다 훨씬 영향력 없는 노해투를 두려워하겠는가.

오히려 노해투의 연대 단절은 노해투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다른 몇몇 단체들이 (공개 또는 비공개로) 그런 결정을 할 때 흔히 그렇듯이 말이다.

연대는 좌파단체끼리 이합집산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고 개방적인 공동행동

그러나 급진좌파 단체들의 연대 단절 방침은 대중 운동과 관련해 재고해야 할 바가 있다. 얼마 전 노해투의 청년운동팀도 (변혁당 학생 조직과 함께) 학생행진을 좌파도 아니라며 연대 단절 입장을 발표했다.

그때 우리는 “학생행진이 좌파도 아니”라는 부정확한 주장 하나만 바로잡았다.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 독일에서(더 정확히 말하면 가장 중요한 일부 주州에서) 공산당이 나치당에 투표하라고 주장했다. 사회민주당이 나치당보다 더 나쁘다는 그릇된 인식을 근거로 그랬다.

그러나 어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도 독일 공산당은 나치의 일종이거나 어쨌든 좌파도 아니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독일 공산당의 그런 행동은 정확히 말해 ‘초(超)좌파적’이라고 불러야 맞다.(그리고 단지 투표 문제뿐 아니라 거의 모든 문제들을 놓고 사회민주당에 대해 초좌파적 태도를 취했으므로 당시 독일 공산당의 노선은 종파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학생행진의 애초 대선 관련 입장(윤석열에게 투표하기를 감수하라)도 ‘초좌파적’이었다. 학생행진 자체를 “좌파도 아니”라고 비판하면, 즉 좌파를 두고 좌파도 아니라고 비판하면 연대가 아예 불가능하다.

나치 부상 시기에 독일 공산당이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사회파시즘’론에 따라 사회민주당을 나치의 샴쌍둥이 같은 조직으로 취급했을 때 이미 연대는 아예 불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노해투의 청년운동팀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없다. 경험이 많지 않은 급진적 청년들이 종종 초좌파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너무 애늙은이 같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걸핏하면 연대 단절 운운하는 것은 급진적 청년들이 배울 게 못 된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 청년들은 마르크스주의 정치 대신에 종종 도덕주의의 영향을 받기 쉽다. 그래서 급진적 청년들일수록 정치(특히 정치 전략과 전술)를 익혀야 한다. 감정과 소박한 사고가 앞서면, 그저 서로를 내치며 장기적인 공멸로 갈 위험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노해투든, 다른 어느 급진좌파(혁명적 좌파 포함) 단체든, 급진좌파 전체가 별 힘도 없는데 누가 급진좌파 단체들의 연대 단절 위협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럼에도 요즈음 같은 시기에도 급진좌파는 양식 있는 좌파 활동가들(특별히 노동운동과 일반으로 사회운동 모두에서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주장을 가끔 내놓을 수도 있다.

바로 연대가 중요하다는 주장이야말로 요즘 같은 시기에도 적어도 양식 있는 일부 활동가들에게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주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하고나 무슨 일로든 하는 연대(묻지 마 연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안별(따라서 전술적) 연대가 가능하고 필요하다.

가령 김일성 회고록 판매 금지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스탈린주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일관된 자유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이 검열에 반대하고 언론·출판의 민주적 권리를 지키려는 연대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대형 서점들의 보이콧으로 해당 출판사의 저항이 벽에 부딪혀 있어서 현재 연대가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연대는 강령(정치 단체의 기본입장)을 둘러싸고 이루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시도는 배신적 타협을 낳고 기회주의를 고무한다. 당면 전망(당면 시기 전술들의 총체)을 둘러싼 타협도 마찬가지 결과를 빚는다. 그동안 PD계 급진좌파들이 가장 커다란 좌파 세력(전에는 자민통계와 민주노동당, 요즘엔 정의당?)과 경쟁하려고 무원칙한 기회주의적 연합을 추구한 4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물론 노해투가 예컨대 변혁당과 노동당의 통합에 가세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 합당은 좌파적 개혁주의 성격이므로 혁명적 정치 조직인 노해투가 거기에 동참하는 것은 지지자들에게 어리둥절함과 혼란만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입당 전술을 구사하기에는 상대방이 너무 소규모이다.)

물론 특정 상황에서는 아일랜드의 ‘이윤보다 사람들이 먼저다’ 같은 급진좌파 정치연합도 일정 기간은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대중 행동 건설을 목표로 하는 연대는 사안별이고 전술적이어야 한다. 해당 사안과 관련 없는 일을 끌어들여 연대 단절하는 것은 커다란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

선거 연합은 공동전선의 대용물이 아니다

노해투는 자신의 롤 모델처럼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 PTS가 (다른 세 트로츠키주의 단체들을 끌어들여) 주도하는 선거 연합, 노동자좌파전선이 한 달 전 선거에서 거둔 좋은 성적에 매우 고무된 듯하다.

일찍이 2015년에 나도 아르헨티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대선에서 가능성을 보여 준 것에 기뻐했다.(니콜라스 델 카뇨 대통령후보와 미리암 브레그만 부통령후보가 메이트를 이뤄 81만 2530표, 득표율 3.23퍼센트, 득표순 4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종파적이기로 세계 곳곳에서 악명 높다. 우리 단체도 트로츠키주의 조직이지만 솔직히 이 점은 부끄럽다. “트로츠키주의자 한 명당 조직 하나”라는 비아냥도 들은 적이 있다.

아르헨티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근래 선거들에서 거둔 괜찮은 소득만큼 나는 그들이 종파주의에서 벗어났기를 바란다. 내가 20년 전에 만난 아르헨티나 트로츠키주의자 로베르토 사엔스 당시 MAS(‘사회주의운동’) 간부는 아르헨티나 트로츠키주의의 종파적 전통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1987년 아르헨티나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전설적 지도자 나우엘 모레노가 사망하자, 그가 이끈 조직은 무려 20개 이상의 조직으로 분열했다.)

1976년 아르헨티나 운동의 참패와 그 오랜 여파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특히, 1976~1983년의 “더러운 전쟁”으로 아르헨티나 민주화 운동 활동가 9천 명이 군부 정권에 의해 고문살해 당했다.

그러나 1989/91년 옛 소련 블록의 몰락도 아르헨티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사기 저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옛 소련을 관료적으로 퇴보했어도 노동자 국가라고 봤기 때문이다.

후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종파주의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 자신은 종파주의를 지극히 멀리했다. 그의 저작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들은 (연속혁명론에 관한 저작들은 별문제로 하고) 바로 파시즘과 공동전선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사상을 실천하지 않고, 그와 레닌이 코민테른 제2~4차 대회(1920~22)에서 그토록 강조한 공동전선 전술들의 필요성을 못 본 척하는 건 참으로 안타깝다.

소수파 정서와 소수파 마인드 때문일 것이다. 옛 소련 몰락 때까지 무려 60여 년 동안 스탈린주의(공산당)와 사회민주주의에 의해 정치와 운동의 주변으로 밀려난 탓에 이런 정서와 마인드가 내면화됐다.

옛 소련 몰락 얼마 뒤부터는 아나키즘의 일종인 자율주의가 거의 20년간 운동 안에서 득세했다. 그 시기에 정치는 사회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사회민주주의를 이렇게 불렀다)가 부르주아 정당과 함께 지배했다. 그래서 그 시기에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치유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물론 일부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이 시기에 대안세계화운동에 능동적으로(때로는 주도적으로) 참가해 종파주의로부터의 돌파구를 열었다.

2012년부터 바로 얼마 전까지는 시리자와 포데모스, 제러미 코빈 하의 노동당 같은 좌파적 사회민주주의가 부상했다.

그러나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는 급속히 주저앉았다. 이들과 함께 부상한 우익과 극우는 여전히 강력한 채 말이다.

이런 때 아르헨티나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연합해 선거에 성공적으로 참여했다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선거 강령은 정치 강령을 반영하지만, 실용적으로 반영한다.

이와 관련해 2000년대 말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 NPA의 대선 참여 경험이 시사적이다. NPA 대선 후보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차라리 게바라주의자에 좀 더 가까울 성싶었다. 그러니까, 확실한 트로츠키주의 조직 혁명적공산주의동맹 LCR이 2000년대 대안세계화운동으로 빨려 들어온 다소 자율주의 경향이 있는 청년들을 끌어들여 세 곱절로 팽창하면서, 당의 트로츠키주의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당의 얼굴로 선출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선거의 특성이라는 면에서 봐줄 만하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브장스노의 개성과 인간적 매력, 대선에서의 좋은 성적에 큰 호감을 느낀 새 청년 당원들은 대개 선거 강령에 동의했겠지만, 2012년(국제적인 광장점거운동의 열기가 가신) 이후부터는 그들의 사기가 저하됐다. 더구나 장뤽 멜랑숑과 공산당이 동맹을 맺은 ‘좌파전선’이 선거에서 뜨면서 NPA는 한층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그리고 이슬람과 무슬림 차별의 핵심 쟁점인 히잡·부르카·니캅의 공공장소 착용 금지 문제를 놓고 NPA가 명확한 이슬람·무슬림 방어 입장을 내놓지 못한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NPA의 입장은 방어론이라기보다는 양비론에 차라리 더 가까웠다.

이런 이유들로 한때 1만 명까지 성장했던 NPA의 규모는 오래지 않아 LCR 시절의 규모(2000명)로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에는 분당 사태도 겪었는데, 역시 대선을 앞두고 장뤽 멜랑숑 운동에 대처하는 문제와 이슬람 혐오에 대처하는 문제가 핵심 요인으로 도사리고 있었다.

이처럼 선거 참여는 본래의 정치 강령에 실용주의적(심지어 기회주의로의) 압력을 가한다.

그래서 해당 선거 시기의 고유한 타협점과 강조점이 두드러질 수 있다. 가령 어떤 대선(가령 2007년)에서는 북한과 그 핵무기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기후 위기를 둘러싼 쟁점에서도 폭로를 넘어 구체적 요구 제출 문제에 이르면 논쟁거리가 상당할 것이다. 만일 이번 대선 중에 대만을 놓고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부각된다면 선거 연합의 파트너들은 대만 문제를 놓고 어떤 통일된 입장을 취할 것인가?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 PTS의 선거 유세 내용에는 (그들의 기관지 〈좌파신문(이스키에르다 디아리오)〉에 따르면) “인종 문제를 계급으로 해소하는 것”을 비판하는 정체성 정치의 주장들이 많다.

그래서 PTS 주도 선거연합체 노동자좌파전선의 한 파트너인 노동자당의 당시 대표 호르헤 알타미라는 PTS를 “유아기의 포데모스” 같다고 비판했다. 포데모스는 좌파적 포퓰리즘을 자처해 왔다.

또한 PTS는 이스라엘 비판이 유대인 혐오(안티세미티즘)라며 금지법을 입법하겠다고도 공약했다.(아르헨티나 PTS의 이런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 오·남용의 영향을 받아 노해투가 소위 노동자연대의 ‘혐오’ 발언을 응징하려 드는 건가?)

물론 노해투가 걸핏하면 ‘연대 단절’ 하는 종파적 습성을 버리지 않으면 노해투는 아르헨티나 트로츠키주의자 공동 선거 운동이든, 2000년대 말~2010년대 초 NPA 선거 운동이든, 그 비슷한 성공을 일궈 내기도 쉽지 않을 성싶다.

하지만 좌파 이합집산(“재편”)에 참여하려다가 원칙을 저버리는 기회주의의 함정도 주의해야 한다(그리고 돌아봐야 한다).

연대는 (정치공학을 통한) 이합집산이나 선거 연합이 아니다. 연대는 (서로 강령과 전략이 달라도) 훨씬 더 큰 운동, 대중 행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 특수한 쟁점들을 놓고 서로 지지해 주고 북돋아 주는 것이다.

전계급적 연대가 필요하고 대부분 이는 의식적으로 쟁취하는 것

노해투는 가령 톨게이트 노조 지지 연대체에서 변혁당과 합세해 우리를 축출했다. 이후 노해투는 톨게이트 투쟁 평가 책자 하나(지은이 이용덕)를 냈다. 거기서 톨게이트 투쟁에서 민주노총이 한 역할에 대해 꽤 많은 비판을 했다. 민주일반연맹에 대해서도 을지로위원회에 기대를 건다든가 투쟁의 김을 계속 뺀다는 비판을 했다.

특히, 김명환 집행부가 연대 파업에 소극적이었다며 김명환 집행부에 기대지 말고 기층 조합원들이 독립적으로 싸우자고 주장했다. 물론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투쟁을 이끌려 하지 않을 때 기층 조합원들이 스스로 싸워야 한다는 것은 나무랄 데 없는 혁명적 원칙이다.

문제는 그런 원칙이 현실화되려면 기층에서 혁명적 좌파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만약 계급투쟁의 수위가 매우 높다면 자그마한 혁명적 조직도 부양력을 받아 그런 대사건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 근처에라도 가고 싶으면 혁명적 좌파들이 연대해야 한다. 강령이나 전략으로 연대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의 승리를 위한) 매우 제한된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노해투는 함께 싸우자는 노동자연대의 호소를 (‘2차가해’를 이유로) 간단히 물리쳤다.

아무튼 일이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듯하자 노해투는 “민주노총[지도부와 기층 모두]의 실력이 그만큼이 안 되었다”고 설명한다.

글쎄, 그걸 몰랐었나?

그러나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은 민주노총(지도자들과 기구들)에 달려 있지 않았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마치 택배 노동자들처럼 광범한 대중(실로 노동계급 거의 전체)의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100퍼센트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다음 투쟁을 기약하며 노동자들에게 이럭저럭 유리하게 끝났다.

마치 순풍이 강력하게 불 때는 사공이 노를 서투르게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갈 수 있듯이, 민주노총(가맹노조 민주일반노조연맹 포함)이 흡족스럽게 이끌지 못해도 광범한 연대 덕분에 이럭저럭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자, 이 투쟁 과정 전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동자연대가 배제됐어도, 또 노해투가 현장조합원 운동이라는 비현실적 꿈을 꿨어도 그 운동은 광범하기 이를 데 없는 연대(계급 일반의 지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도, 노해투도, 혁명적 좌파는 중요하지 않았다! 훨씬 광범한 전계급적 연대가 중요하고 주효했다.

나는 혁명적 좌파가 중요한 구실을 하지 못하는(않는) 상황에서도 연대가 광범하게 구축될 수 있다고 일반화하려고 이런 주장을 펴는 게 아니다.

연대가 중요하다는 건 일반화될 수 있는 명제인 데 반해, 혁명적 좌파가 중요치 않다는 것은 일반화될 수 없는 명제이다. 어떤 경우에는 혁명적 좌파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노해투도 자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우리로 말하면, 노동쟁의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철도 노동자 파업이 박근혜 퇴진 투쟁과 처음에 만나도록 하는 데에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2008년 5월 초 촛불 운동이 청계광장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고 광장을 돌파해 광화문으로 나와 운동이 용기를 받고 커지는 데서도 우리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의심스러우면 박원석 당시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현 정의당 고양시 을 지역위원회 위원장)과 한용진 당시 한국진보연대 대외협력국장에게 물어 보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들인 그들이 우리에게 문자를 보내어, “다함께[노동자연대]가 동을 떠 달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우리든, 노해투든, 모두 자기만족에 빠질 주제가 못 된다. 둘 다 조직 규모가 작아, 어떤 운동이 대중 운동으로 성장하는 초기 국면에서 일정한 구실을 한다 해도 사실상 우연에 불과하거니와, 운동이 훨씬 커졌을 때는 조직 규모로 인한 근본적 한계에 부딪혀, 개혁주의자들에 밀리고 그 운동의 주변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물론 노동쟁의는 사정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정치 투쟁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혁명적 좌파가 대규모 정치운동을 승리로 이끌려면 성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단체들이 서로 협력해야 할 때는 실제로 협력해야 한다. 그때, 강령을 통일시키려 애쓰지 말고 제한된 구체적 쟁점(또는 요구들)을 둘러싸고 대중 행동을 일으킬 목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당연히 필요한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되지만 비판은 공동 행동과 관련성 있는 것이어야 하고 건설적이어야 한다.

분명 노해투는 이런 면에서 과거보다 진보했다. 그래서 전과 달리, 어떤 경우에는 개혁주의 단체들과도 하나의 연대체에 속하기를 거부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톨게이트 연대체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연대체에서 노동자연대를 축출하라고 요구하고, 대표자회의가 결정을 집행위원회로 미뤘을 때, 집행위 회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완장 구실을 한 건 노해투와 변혁당이었다. 가장 온건한 개혁주의자들과도 필요하면 기꺼이 공동 활동을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들의 이니셔티브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와 종파주의는 곤란하다. 노해투는 “2차가해를 저지른 자들은 우리 자신의 입장만으로도 용납할 수 없어!” 하겠지만, 민주노총 관료층이 최근에 이 지경으로까지 나오는 것에는 개량주의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통찰이다. 우리가 접촉했던 2년 전, 당시 코리아연대 측도 이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톨게이트 노동자, 택배 노동자, 보건의료계 노동자 등을 둘러싼 광범한 연대는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 앞에서 주춤했다. 이번에는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우파적 반발이 있었고, 이에 직면해 무능하고 회피적이었던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있었고, 노동조합 운동 바깥에서 개혁주의적 영향력을 미치거나 침묵·회피한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노동자들은 아직도 마음고생을 하며 교섭 결과가 유리하게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위에 언급된 투쟁들은 (자민통계가 이끈 택배 노동자 투쟁을 제외하면) 노해투든 노동자연대(제척 당한)든 급진좌파를 그냥 지나쳤다. 정치 상황의 영향을 받았고 정치 상황에 다시 영향을 줄 수 있는 커다란 투쟁들은 급진좌파의 수중에서 벗어났다는 뜻에서 ‘자발적’이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도 급진좌파(더구나 혁명적 좌파)가 ‘연대 단절’이나 하고 있을 텐가?

어떤 투쟁은 혁명가들의 역할이 없어도 전계급적 연대가 이뤄질 수 있고, 어떤 투쟁은 혁명가들이 갖은 수를 다 해도 그런 연대가 이뤄지지 못하고, 어떤 투쟁은 혁명가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런 연대가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연대가 가장 중요하고, 연대는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노력을 정치라고 부른다.

맺으며

나중에 근본적 사회 변혁 과정이 시작돼 노동자 평의회 같은 민주적 노동자 기관이 등장한다면 지역별로 분산돼 있는 혁명적 좌파 단체들은 서로 협력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트로츠키는 소비에트가 최고 형태의 공동전선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4년여 전쯤 노해투 활동가를 맑시즘 2017의 당시 가장 중요한 워크숍에 패널의 하나로 초대했을 때 우리는 노해투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패널이 워크숍 끝난 후 비를 피하며 건물 처마 밑에서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큰 강당에서 나오는 많은 청중을 바라보며 오른쪽에 서 있는 이호동 당시 노동전선 대표에게 한 말인지 아니면 왼쪽에 서 있는 내게 한 말인지 몰라도 이렇게 말했다. “여기[노동자연대]는 회원 자격이 느슨한가 보네요.” 그러나 그가 그 워크숍에 방청객으로 온 게 아니다. 그는 동등한 패널의 일인으로 왔다. 우리 모두의 행사이고 축제였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반면 15년 전 노해투의 전신인 단체의 활동가 두어 명이 맑시즘 2006의 가장 주된 워크숍에 청중으로 참가했을 때 그들은 끝나고 “대공장 식 선전이네요” 하는 덕담을 나누며 돌아갔다. 이렇게 우호적으로 지내며 필요한 생산적 비판을 하는 건 불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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