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대외 정책에서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서방의 전통적 동맹국들을 결속하고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을 정당화하려 한다 ⓒ출처 백악관

12월 9~10일에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주재하고 세계 110개국 정상이 참가한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화상 회의로 열렸다.

이미 초청국 명단이 알려졌을 때부터 이 회의가 민주주의와는 별 상관이 없고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와 관련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관련 기사 본지 393호 ‘민주주의와 상관없는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서방의 친자본주의 언론 〈타임〉조차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위선의 극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의 극우 총리 나렌드라 모디, 필리핀의 악명 높은 강경 우익 대통령 두테르테,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 보우소나루 등 누가 봐도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들이 회담에 참가했다.

인도가 초청받은 것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동맹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인도를 초청하면서 파키스탄도 초청해야 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숙적이지만 중국 편으로 넘어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프리덤하우스’가 매긴 ‘민주주의 점수’에서 100점 만점에 37점을 받은 국가다.

중동의 경우, 친미 왕정·독재 국가를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방과 가까운 이스라엘만 초청할 수도 없으니, 이라크를 초청해 구색을 맞췄다. 이스라엘은 인종 분리를 법으로 명시한 인종차별 국가이고, 이라크의 정치는 미국과 이란의 영향력 사이에서 종파 갈등과 부패로 얼룩져 있다.

프리덤하우스가 아예 ‘자유롭지 않은 나라’로 분류한 앙골라나 콩고민주공화국을 회의에 초청한 것은 첨단 기술에 필요한 “원재료를 포함한 그 나라들의 천연자원에 중국이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을 의식한”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적했다.

이데올로기 포장

현재 미국 대 중국·러시아 갈등의 초점이 되고 있는 대만우크라이나도 회의에 참가했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꾸준히 악화돼 왔다.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서는, 서방이 자신의 영향권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에 반발한 러시아가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회의에서 어떤 합의나 공동 선언이 채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이번 회의를 발판 삼아 내년에 열릴 대면 회의에서 ‘행동 계획’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바이든이 대외 정책에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중국·러시아와의 갈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고 공격적 대외 정책에 대한 미국 대중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임기 중에 미국과 소원해진 서방의 전통적 동맹국들을 다시 미국 중심으로 결속시키는 데 민주주의 레토릭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들이 자랑하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는 최근 서방 선진국들 내에서도 위협받고 있다. 지배자들이 계속되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과정에서 극우(와 파시스트)가 성장한 것이다. 서방 주류 언론들조차도 ‘미국이 민주주의를 설교할 처지냐’ 하는 볼멘소리를 하는 배경이다. 사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 자체가 민주주의를 침식한다.

한편, 문재인은 이 회의에 참가해 바이든의 패권 강화 시도에 힘을 보탰다. 물론, 회의에서 중국에 관한 언급은 일절 피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한국 지배자들의 전통적인 한미동맹 중시 기조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최근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것은 그 한 사례일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미·중 경쟁에서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은 한반도를 지정학적 불안정의 한복판에 밀어넣는 꼴이 될 것이다.

패권 경쟁

중국은 자신이 나름의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며 바이든의 시도를 비난한다. 미국이 실패한 미국식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 강요해 세계를 분열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민주주의를 나름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중국 정부는 표현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신의 권리와 생활 조건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원한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바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홍콩 대중의 항쟁도 가차없이 짓밟았다. 신장 위구르 억압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 어느 쪽이 더 형식적 민주주의에 가깝느냐 하는 문제, 즉 국가 형태와 정치적 지배 체제 형식 문제는 두 나라 간의 갈등이 전형적인 제국주의 강대국 간 경쟁이라는 점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미국·중국 모두 경쟁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정권들을 지지할 것이고 반민주적 행위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미국이 민주주의 수호의 이름으로 온갖 잔혹한 독재자들을 지원해 온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제국주의 갈등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은 트로츠키의 말처럼,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재앙에서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요소인 노동계급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제국주의 강대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 대중의 조직과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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