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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영입:
윤석열의 강경우파 본색 물타기일 뿐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12월 2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직속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의 수석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이런 행보는 페미니즘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민의힘이 성차별을 공공연하게 옹호하는 우파 정당이고, 올해 6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 뒤 이준석, 하태경, 윤석열 등이 페미니즘을 거듭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지예(이하 직함 생략)는 올해 이준석과 페미니즘 문제로 공개 논쟁을 여러 차례 벌였다. 7월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걸자 당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항의했다. 지난달 페미니즘 친화적인 범죄학자 이수정 교수가 국힘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신지예는 “국힘은 페미니스트들의 대안이 될 수 없죠”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윤석열의 본질 흐리기

신지예는 윤석열이 “여성폭력을 해결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좌우를 넘어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해서” 합류했다고 말한다. 민주당이 모든 영역에서 “내로남불”이었다며 정권교체를 통해 “공정하고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 특정 권력이 약자들을 맘대로 짓밟을 수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치적 배신을 정당화하는 이런 주장은 터무니없다. 윤석열은 부유층과 기업주를 대변하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가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군가산점제 부활 등 성차별적 공약도 내놨고 이를 철회하지도 않았다.

윤석열이 좌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신지예의 주장은 윤석열의 강경 우파 본색을 가리는 구실을 할 뿐이다.

윤석열이 신지예를 전격 영입한 것이 선거상의 책략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우파 본질이 드러나 중도층의 지지가 떨어지며 이재명과의 격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처 김건희의 허위 이력 논란이 커지자 지지가 더 떨어져 다급해진 것 같다.(신지예는 윤석열과 12월 18일에 만난 뒤 합류를 결정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자신의 강경 우파 본질을 흐리고 페미니즘을 이용해 이재명을 공격하고자 신지예를 영입했다. 이준석의 반대를 무시하며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를 영입한 것도 같은 목적이다. 그러나 이수정이 범죄 문제에서 국가기구의 강경 대처를 지지하는 엄벌주의자이기에 우파적 견해와도 잘 맞는다.

신지예는 윤석열 선거 캠프에 합류하자마자 낯뜨거운 윤석열 칭찬을 늘어놓고 이재명을 ‘여성 살해범을 변호한 후보’, ‘성범죄 정당의 후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윤석열은 신지예 영입이 당의 정체성 변화와 무관하다고 강조했지만, 기존 방침과 모순되는 영입에 당내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당원들의 반발이 잇따르고 하태경은 공개적인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준석은 신지예 영입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당의 기본적인 방침에 위배되는 발언을 하면 제지하거나 교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석열의 위선적인 물타기 시도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신지예의 행보에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개방적 대중 투쟁이 존재하지 않고 우파가 범죄의 공포를 부추기는 상황에서 신지예의 영입이 아무 효과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이르다.

신지예는 페미니즘을 대표하지 않지만 페미니즘의 모순을 보여준다


신지예는 2016년부터 총 4번의 선거에 출마했는데, 2018년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새 세대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순식간에 떠올랐다. 당시 그는 녹색당 후보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하며 8만여 표를 얻어 4위를 차지했다.(김종민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보다 1200표를 더 얻었다.)

이런 선전은 페미니즘이 부흥하는 가운데 그해 불법촬영 항의 시위라는 초유의 대규모 여성 운동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 덕분이었다. 신지예는 선거에서 낙태죄 폐지, 낙태약 보건소 비치 등 급진적 공약을 내걸었고, 당시 등장한 그 시위를 적극 지지했다.

신지예는 엔지오 여성단체는 물론, 좌파 사이에서도 큰 기대를 모았다. 〈한겨레〉 〈경향신문〉 〈여성신문〉 등 덕분에 지난해 녹색당을 탈퇴한 뒤에도 전도유망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그런 만큼 신지예가 우파 진영으로 간 것은 페미니즘 지지자들 사이에서 당혹감 또는 분노를 안겨 주고 있다.

페미니스트가 자본주의 정당을 통해 정치권으로 진출하게 된 지는 수십 년 됐지만, 대부분 민주당 쪽으로 갔지 국힘 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 지지를 주장했지만 이런 입장은 극소수였고, 이런 입장을 취한 사람이 우파 정당에 합류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래 민주당 정부가 세 차례 집권하면서 민주당으로 진출한 페미니스트들은 거듭 지지자들을 실망시켜 왔다.

몇몇 단체는 신지예의 국힘 합류를 비판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창인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의 20일자 성명은 “신지예 씨의 기괴한 변절,” “배신의 정치”를 규탄했다.

여성 국회의원 배출에 주력해 온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도 “양당정치의 문법에서 벗어나 제3지대를 만들자고 한 본인의 발언과 활동에도 배치된다”며 신지예의 국힘 합류를 비판했다.

신지예의 선택은 이례적이지만, 그저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신지예의 우경화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환멸이 낳은 감정적 혼란 속에서 페미니즘의 모호함이 도달할 수 있는 한 극단을 보여 준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차별에 반대한다는 점이 분명하지만, 여성 차별과 계급 차별을 분리시키기에 흔히 정치적으로 모호하다. 정치를 배격하는 아나키즘부터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 정당, 온건 좌파, 급진 좌파까지 두루 수용될 수 있다.

우파는 본질적으로 성평등에 냉소적이지만, 페미니즘의 모호함 때문에 우파가 페미니즘의 언사를 사용하거나 주요 인물을 영입해 성평등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여지도 생겨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우파가 이용하는 것에 맞서려면 여성운동 측에서도 대중 투쟁이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기층의 운동을 비종파적이고 개방적으로 건설하는 데 중심을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