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 전 본지는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롭 월러스의 말을 인용해 1면에 실었다. “자본주의는 코로나21, 코로나22도 만들어낼 것[이다.]”

남부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 오미크론 변이는 한 달 만에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됐고, 지배자들은 팬데믹 초기에 그런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너무 빠른 감염 속도 탓에 지금 널리 사용되는 검사법(PCR)이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도 나올 지경이다. 하루 확진자 수가 미국에서는 20만 명,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백신을 2~3차까지 접종한 사람들도 속수무책으로 감염되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치명률이 낮아졌다지만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사망자도 늘고 있다. 팬데믹 초기에 목격했듯이 병원이 환자로 가득차면 다른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도 높아질 수 있다. 소방서 등 사회 필수 기능을 담당하는 노동자들도 다수 감염되면서 사회 인프라 유지와 기능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인류 전체의 안전을 위해 백신을 공급하기보다 이윤을 위해 백신 기술과 생산을 통제해 온 기업들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백신 연구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도 그 성과를 국내외에 공유하기는커녕 백신 독점 경쟁을 벌인 선진국 정부들도 이런 상황에 일조했다. 경쟁자들보다 자국 경제를 더 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이들의 최우선 관심사였다. 그래서 국제적 협력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 탓에 ‘유엔 백신’이나 ‘WHO 백신’은 여전히 없고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백신만 찾고 있어야 한다.

롭 월러스의 예고가 적중한 것은 이런 행동 양상을 예측하기가 너무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코로나21, 코로나22

한두 달 뒤면 국내에서도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이미 국내의 코로나 환자 병상은 대부분 포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본격화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문재인까지 나서서 국립대병원과 공공병원에 병상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것도 찔끔 병상을 확보한다고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수백 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병상이 나기만 기다리며 집에서 앓고 있다. 병원을 16곳이나 찾아갔지만 입원하지 못해 구급차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던 산모도 있다. 이들을 보살피는 임무가 가족 등 보호자들에게 떠넘겨지다 보니 감염 위험은 물론 돌봄 노동에 수반되는 각종 부담도 늘고 있다.

정부는 병실 이용을 ‘효율화’한다며 확진자를 집에 머무르게 하더니, ‘중환자’를 빨리 퇴원시켜 병실을 확보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조처를 시작했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들까지 저항하고 언론들도 관심을 기울이자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사태가 더 악화하면 누구를 살릴지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런 상황은 전혀 불가피하지 않았다.

감당 안 되는 확진자 폭증, 늘어나는 열악한 컨테이너 임시 병상 ⓒ이미진

정부가 지난해부터 인력과 병원을 긴급히 늘려왔다면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우파 야당은 이런 반감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고 중환자 20일 퇴원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작 공공병원 증설과 인력 충원을 위한 조처들(예산 등)을 뒷전으로 미룰 때에는 정부와 보조를 맞춰왔으면서 말이다.

요양병원을 포함해 각종 요양 시설에서는 집단 감염이 이어지고 있고 악명 높은 동일집단(코호트) 격리가 늘면서 희생자도 늘었다.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 이런 시설들은 또다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정부가 근본적 대책은 외면한 채 국립대병원과 공공병원을 압박하면서 또 다른 희생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인력 충원 없이 이 병원들에서 더 많은 병상을 코로나 환자 치료에 투입할수록 다른 환자들의 치료가 미뤄질 것이다. 취약계층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얼마 안 되는 공공병원들이 코로나 환자 치료에 ‘올인’하면서 아파도 갈 곳 없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백신패스 의무화 반대한다

이런 상황이 빤히 예상됐는데도 정부는 공공병원과 인력을 늘리라는 요구를 외면해 왔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떠넘기고 새로운 속죄양을 찾아 책임을 회피할 궁리만 하고 있다. 백신패스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백신 미접종자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한편, 거리두기처럼 더 효과적이지만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는 조처들을 최대한 피하려고 백신패스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백신이 감염 자체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신패스는 사실상 바이러스 전파는 막지 못한 채 정부 책임을 떠넘기는 효과만 낼 것이다. 백신에 대한 이해할 만한 불신으로 미접종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치료와 보상 대책을 내놓으며 설득하진 못할망정, 접종을 사실상 강제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반발만 낳을 것이다.

앞뒤도 안 맞는 백신패스 도입에 반발이 일자 정부는 시행시기를 조금 미루고 청소년들에게 적용하는 규제를 다소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조처가 한번 시행되면 정부는 차츰 그 수준을 높여가려 할 것이다. 백신패스 도입에 반대해야 한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