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페미니스트 신지예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석열의 강경 우파 본색을 흐리는 주장을 펴고 있다.

12월 22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신지예는 윤석열을 “‘차악’이 아닌 지금의 최선”이라고 치켜세웠다.

영입 전날 윤석열과 독대한 자리에서 윤석열이 성폭력, 스토킹, 가정폭력에서 여성을 보호하는 법안에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듣는 만큼 말씀하시는 것이 달라지는, 성장하는 후보”라고 칭찬했다.

신지예는 페미니즘의 언어로 윤석열의 우파 본질을 가리고 있다 ⓒ출처 새시대준비위원회 유튜브

신지예는 자신이 “국민의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윤 후보를 선택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서, 지배계급과 우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개인이 아닌 것이다. 신지예는 윤석열의 변화 가능성을 말하며 우파 본질을 흐리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

신지예는 윤석열이 여성 대상 범죄 해결을 약속했다는 것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 보수적 공약을 발표한 윤석열을 ‘여성의 보호자’로 포장해 주는 꼴이다.

윤석열은 12월 17일 “당선 즉시 흉악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라고 했다. 여성 살해 사건들을 거론하고 26년 검사 경력을 들먹이며 자신이 이 일의 적임자라고 했다.

그러나 ‘흉악범죄 척결’, ‘범죄와의 전쟁,’ ‘법 질서 확립’은 세계적으로 강경 우파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다. 범죄 예방이나 범죄 피해자 보호가 진짜 목적이 아니다.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지엽말단의 문제로 대중의 주의를 돌리고, 경찰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범죄 척결’을 명분으로 증대된 경찰력은 파업이나 시위 진압에 사용된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파를 결집시키는 효과도 노린다.

박근혜도 2012년 대선 공약으로 성폭력·가정폭력 등 ‘4대 사회악 척결’을 내건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런 범죄는 줄지 않았고, 대다수 여성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그 이전에도 위기 때마다 이런 일이 거듭돼 왔다. 1990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자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도 2009년 용산 참사(철거민 시위에 경찰을 대거 투입해 진압하다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로 인한 위기를 모면하고자 당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을 이용했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도 IMF 위기에 따른 사회 불만을 통제하려고 탈옥수 신창원 사건을 이용해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노무현 정부도 취임 첫해 시위가 늘자 ‘강력 범죄 소탕 100일 작전’을 벌였다.

범죄의 사회적 근원을 건드리지 않고 자본주의 국가의 힘에 의존해서 범죄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우파에게 이용되기 쉬운 위험한 환상이다.

페미니즘의 모순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다

신지예의 윤석열 캠프행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분노했다. 그러나 그에 견줘 공개적인 정치적 비판은 많지 않다.

몇몇 여성단체는 비판 입장을 발표했지만, 여성단체연합과 그 소속 단체는 지금까지 신지예의 윤석열 캠프행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당혹감과 더불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는 서로 비판을 삼간다는 일종의 진영 논리가 작용하는 듯하다.

심지어 신지예를 지지했던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신지예의 행보가 운동에 끼칠 나쁜 영향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신지예의 행보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본인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이 와중에도 내가 낸 후원금이나 추천서 받아준 경험들이 아깝지 않[다.] ...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간다고 나섰는데 따뜻한 밥 한 끼 못해준 것 같아 왜 이렇게 슬프지?”

이런 무원칙한 관대함은 ‘2차가해’론을 근거로(사실은 자신을 공개 비판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연대를 집요하게 배척해 온 것과는 상반된다.

신지예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도 모순이 있다. 신지예가 국민의힘으로 간 것만 문제 삼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진출한 페미니스트들의 무기력한 모습에 대한 비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가령 〈한겨레〉는 신지예의 선택을 “자기 부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면이 있지만, 단지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면도 있다.

신지예의 행보는 맥락 없는 개인의 돌출적 행동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모순이 낳은 한 두드러진 사례로 봐야 한다.

신지예는 주류 여성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성 주류화’ 전략, 즉 자본주의 국가 기구에 진입해 페미니즘을 실현한다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그래서 기층 운동 건설보다 선거 출마와 공직 진출을 중시해 왔다.

신지예의 행보가 이런 전략의 극단적 사례임은 본인의 해명에서도 드러난다. 신지예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환멸을 느껴 양당 체제 바깥의 대안을 추구하다가 현실적 한계를 느끼고 윤석열을 택했다고 한다. 일단 정권교체를 이루고, 이를 디딤돌 삼아 페미니스트로서의 비전을 실현시키겠다고 했다.

“페미니즘은 어떤 당이나 진영에만 소속된 이야기가 아니[다.] ... 여성주의는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페미니즘이 계급을 초월하고 여성 인권을 위해서는 우파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페미니즘 일각에서도 수용돼 온 것이다.

결국 신지예도 윤석열 당선에 기여해서 국가 기구로 진출하고, 그렇게 얻은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페미니즘을 실천해 보겠다는 것이다. (희소성이 있는 윤석열에게로의 합세가 더 유리하다고 봤을 법도 하다.)

고 박원순에 대한 미투를 놓고 상당수 페미니스트들이 우파 변호사 김재련과 제휴한 것이 최근의 사례다.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인권증진국장 등을 지낸 김재련은 박원순 피해호소인의 변호사로 나서서 원사건의 실체 규명보다는 ‘2차가해’ 공세로 언론 플레이를 하며 여론몰이에 주력했다.

사실 페미니즘이 계급과 좌우를 초월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여성운동가들이 노골적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에 합류하는 것을 정당화해 왔다. 이런 주류화 전략이 ‘여성 정치세력화’로 포장돼 왔다.

이제 신지예 사례로 이런 페미니즘의 주류화 전략의 모순이 우파 정당 참여로 더 확장된 것이다. 신지예는 이 모순을 은폐하려고 자신이 우파를 돕는 것을 합리화한다.

계급과 좌우를 넘어?

한편, 급진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정의당 일부 당원들 주도의 그룹 진보너머는 12월 21일 “페미니스트 신지예가 ‘마침내’ 제 자리를 찾은 것을 환영한다”는 반어적인 제목의 논평을 냈다.

“[신지예의 국민의힘행은] 페미니즘의 내적 논리와 사상 그 자체의 몰계급성, 검열만능주의, 전체주의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에 다름 아니다.”

신지예의 선택이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닌 것은 맞다. 그러나 페미니스트가 국민의힘으로 가는 것이 필연적 결론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 차별을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관계와 분리시키기 때문에 흔히 모호하다.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은 정치적으로 여러 갈래로 연계될 수 있다.

가령 페미니즘이 젊은층에서 대중화하자 이제 우파가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의 표를 얻고자 페미니즘의 주장을 일부 차용하고, 상징적인 페미니스트 인물을 영입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가족 가치관을 강조하는 우파 사상과 성평등을 지지하는 입장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와 우파가 만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자유주의 정당이나 사회민주주의 정당 쪽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기에 신지예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국민의힘 내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신지예가 페미니스트 신념을 잃을까 봐 걱정한다.

그러나 페미니즘 지지자들이 정말 걱정해야 할 문제는 그 점이 아니다. 신지예가 페미니즘의 언어로 윤석열의 우파 본질을 가리는 게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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