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점증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 중심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 중심 진영으로 세계가 갈린 신냉전이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거나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류 국제관계 학자들은 미국과 중국의 군사 충돌 가능성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빗대어 설명하곤 한다. 이 용어는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 국가가 불안감을 느껴서 이를 견제하다가 전쟁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몇몇 우파 이데올로그들은 미·중 패권 경쟁으로 진영이 갈리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과 갈라서는 건 너무 큰 손해를 초래하며, 신냉전 도래를 피해 균형 외교를 추구하자는 반박도 있다.

박홍서 한국외대 연구교수가 쓴 《미중 카르텔》(후마니타스, 2020)은 미·중 갈등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박홍서는 이 책에서 미·중 관계의 미래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확증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중 카르텔: 갈등적 상호 의존의 역사》, 박홍서 지음, 후마니타스, 18,000원, 364쪽

그는 《미중 카르텔》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핵무기나 지리적 요인, 그리고 경제적 상호 의존 등을 고려하면 미중 간 전쟁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이 현실적이다.” 미·중 간 경제적 상호 의존에 주목하는 박홍서의 주장은 일부 좌파들도 참고하는 듯하다.

박홍서는 미국과 중국 경제가 상호 보완적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은 중국에 달러와 지식을 수출하고 중국은 미국에 제조업 상품을 수출해 왔다는 것이다.

그도 미·중 간에 갈등과 경쟁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일종의 카르텔”이라고 주장한다. “현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서 둘 다 큰 이익을 얻고 있고 “군사 충돌은 곧 공멸”을 의미하므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현존] 국제 질서 안에서의 다툼”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박홍서는 지금과 같은 핵무기 시대에는 레닌의 제국주의론보다는 “자본주의 국가 간 담합 가능성”을 제기한 카우츠키의 말이 더 적확할 것이라고도 했다.

초제국주의론

박홍서가 언급한 카우츠키의 주장은 일명 초제국주의론으로 불린다.(관련 기사: 본지 384호, ‘카우츠키 ‘초제국주의론’에 대한 레닌의 비판’).

100여 년 전에 카우츠키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동역학에서 비롯한, 자본주의의 붙박이 같은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군수 자본가 같은 일부 자본가들이 선호하는 ‘정책’으로 이해했다. 그는 전쟁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에 불합리한 것이라고 봤다.

박홍서의 접근도 본질적으로 이와 유사하다. 그는 미국에서는 중국 위협론이 “군산복합체의 존재를 정당화”해 주며, 중국에서는 반미 민족주의가 “중국공산당의 대중 동원”을 원활하게 해 주는 기제라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제 질서 안에서 행위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미·중 전쟁은 없을 공산이 크다고 여긴다.

카우츠키나 박홍서의 주장처럼, 과연 오늘날 세계는 경제적 상호 의존 등에 기초해 강대국 간 전쟁이 없는 국제 질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면,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높은 국가들 간에 군사적 갈등이 일어난 사례는 매우 많았다. 경제적 상호 의존이 군사적 갈등을 일시적으로 제어해 줘도, 근본적으로 막아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외려 경제적 상호 의존이 국가 간 갈등을 더 불안정하게 해 전쟁이 일어난 사례들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은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검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런데 박홍서는 오늘날의 세계를 설명하면서 “후기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쓰는데, 자본주의가 과거 양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때와는 크게 달라졌다고 보는 듯하다.

즉, 미국은 “승산 없는 제조업 대신 달러화로 표시되는 금융자본 확산에 치중”해 왔고, 이런 금융 지배와 더불어 “지식 기반 경제”로 경제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이와 같은] 신용경제에서는 생산 없이도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의 달러 패권 체제에 편승해 제조업 상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그렇게 번 달러를 다시 달러화 자산에 재투자해 미국 소비 시장을 부양했다.

분명 자본주의는 시대에 따라 변해 왔지만, 그 근원적 특징은 변함없다. 즉, 노동자들에 대한 임노동 착취에 의존하는, 미친 듯한 자본 간 축적 경쟁의 체제다. 이 때문에 모순적이고 항구적으로 불안정한 체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자체의 모순 때문에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없는 데다가 경기 회복은 짧고 더디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체계적으로 불균등 발전도 일으켜 왔다.

또한 군수 자본가가 아니더라도 자본가들은 세계 시장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 자본가들의 상호 의존(통합)이 경쟁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 자본이 중국에 투자를 하고 그 대가로 수익을 올렸지만, 최근 미국의 많은 IT 기업들이 중국 정부 주도의 첨단 산업 육성 전략이 자신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까 봐 미국 정부의 개입과 지원을 바라고 지지한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5G 등 첨단 산업의 국제 공급망에서 중국을 어떻게든 고립시키려 한다.

불균등 발전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과 중국 경제는 달러와 상품 수출입 등에서 순환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 점이 이 순환 구조가 안정적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경제 모두 균형 성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사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이 순환 구조가 상당히 불안정한 바탕 위에 있음을 보여 준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불황에서 세계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이제 중국이 새로운 위기의 진앙지가 될 수 있다.

장기 불황은 국가들 간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세계경제 상황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협력적 대처가 어렵게 되고, 국가 간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2008년 위기 이후로 미·중 갈등도 본격적으로 악화돼 왔다.

게다가 경제 위기와 더불어 국가 간의 상대적 경제력 비중도 변해 왔다. 경제의 지리적 분포 변화는 국가들 간 힘의 균형도 바꿔 놓는다. 이런 불균등 발전은 자본주의의 역동적 성격 그 자체에서 비롯한 것이다.

박홍서는 중국이 지금의 국제 질서에서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었고, 그래서 “현상 유지 국가”에 가깝다고 본다. 기술 굴기와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미국과 격차가 여전히 커서 미국을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물론 지금 중국 경제가 달러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이 점이 중국 제국주의의 취약점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이 당장 미국의 세계적 지위에 도전할 의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의 부상과 그것이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위의 주장보다는 더 복잡하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해 온 기존 국제 질서에 완전히 통합된 세력은 아니다.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래로 구축해 온 동맹 체계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격화

오늘날 중국 지배자들은 수십 년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곳에서 미국을 밀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남중국해 영유권을 확보하고, 대만을 중국에 편입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군사력 증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목표들은 중국 지배계급한테는 나름의 합리적 선택이다. 즉, 대외 무역으로 경제를 성장시켜 온 중국이 상품 수출입, 해외 투자, 자원 수입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박홍서도 중국의 “경제 이익”과 군사력을 연관된 문제로 여긴다. 그리고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확보 노력과 미국의 견제도 책에서 소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중국해에서 양측이 벌이는 무력 시위를 “과시”에 그칠 일로 치부한다. 전쟁까지 갈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중국해를 비롯해 인도-태평양의 바다를 지배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적 패권 유지에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바다에서 첨예하게 부딪히는 것이다.

긴장 고조 남중국해에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는 미군 ⓒ출처 미 해군

다른 측면에서도 중국의 부상은 기존 국제 관계의 불안정을 불가피하게 수반했다. 중국의 존재가 여러 국가들이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제공해 준 것이다.

따라서 중국 지배자들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의향이 없더라도,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부흥은 미국의 패권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중국을 제압하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경계하는 현지 국가들에 접근해 왔다. 이는 현지 국가 지배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줬고, 중국의 맞대응도 불렀다. 이를 배경으로 지금 인도-태평양에서는 해묵은 분쟁들이 재발되거나 악화되고 있다. 인도-중국 국경 분쟁,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대만 문제 등이 바로 그런 사례들이다.

물론 지금 미국과 중국 모두 전쟁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때로 지배자들 스스로 감당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위기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의 장기 불황과 기후 위기처럼 말이다. 제국주의와 전쟁 문제도 그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결코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핵무기

국가들의 경쟁은 궁극적으로 무력의 우위로 판별된다. 그래서 국가들은 무기를 경쟁적으로 축적하는 끔찍한 경쟁을 벌이게 되고, 이는 결국 인류를 몇 번이고 망하게 할 핵무기 경쟁으로 이어져 왔다.

핵무기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강대국 간 전쟁이 제어될 수 있다는 환상도 만들어 줬다. 공멸할까 두려워서 국가 운영자들이 전쟁을 선택하지 않고 갈등을 정치적으로 풀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핵무기의 존재는 강대국들이 한동안 서로 전면전을 벌이기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경쟁의 논리는 인류가 핵전쟁에 참화에 빠질 뻔한 위기도 숱하게 만들어 냈다. 냉전 시절에 미국과 소련이 상대방의 의도와 행동을 오판해 어처구니없게도 핵전쟁이 일어날 뻔한 적이 여러 차례였다.

강대국들의 자본가 계급도 핵무기가 자칫 자신들이 누려 온 모든 부를 날릴 수 있는 위험한 무기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핵무기의 배치와 사용은 자본주의 경쟁 논리에 내재된 것이기에, 자본가 계급은 핵무기 제거에 진정한 이해관계가 없다. 지금도 미국, 중국, 러시아 지배자들은 상대방을 겨냥해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고 배치하는 데 여념이 없다.

미국과 중국이 요행히 미래에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는 결코 보장된 미래가 아니다. 박홍서는 한국 정부가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평화 공동체 수립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한국 국가도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서 일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지금의 불안정에 일조해 온 세력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수혜자들의 합리적 선택에 기대를 걸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대국 간 갈등과 전쟁 위기를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제거할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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