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 교수 등이 참여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가 얼마 전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는 최근 수십 년간 소득·자산 불평등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잘 보여 준다.

상위 10퍼센트가 전 세계 자산의 75.5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 중 절반(37.8퍼센트)은 상위 1퍼센트의 소유다. 반면, 세계 인구 절반은 전 세계 자산의 단 2퍼센트만 차지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불평등도 지난 30년 동안 악화돼 왔다고 지적한다. 전체 자산의 4분의 1을 상위 1퍼센트가 소유한 반면(평균 61억 원), 하위 50퍼센트는 20분의 1을 나눠 가졌다(평균 2700만 원).

소득을 보면, 한국의 상위 1퍼센트가 1년에 6억 4000만 원을 벌 때, 하위 50퍼센트는 1200만 원을 번다. 인구 절반이 최저임금도 못 버는 셈이다.

소득 보장 공약

불평등 심화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도 소득 보장과 복지 확대 공약들이 나오고 있다.

연 100만 원 기본소득 공약을 내놨던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최근 상병수당 도입 등 “신복지” 공약을 내놓기 시작했다.

“신복지”는 당내 대선 경쟁자였던 이낙연이 기본소득에 대항하는 공약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이재명은 이낙연의 신복지팀(김연명 교수 등)을 그대로 영입해 후보 직속 신복지위원회를 만들었다.

신복지의 기본 얼개는 최저 보장 소득 기준선을 정해 두고 여러 사회수당들을 증액해 소득을 보조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노인 기초연금, 아동수당, 기초생계비 지원, 의료급여 등 각종 사회수당의 액수를 일정한 최저 보장 기준선까지 증액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돌봄 등 공공서비스 공급을 늘려 평범한 사람들의 지출을 줄이는 것도 포함된다.

신복지의 이런 목표는 최근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내놓은 ‘시민평생소득’ 공약과 통하는 면이 있다. 정의당의 공약은 시민최저소득 보장, 사회보험의 전 국민 소득보험화 그리고 연령별·역할별 사회수당(“범주형 기본소득”) 도입 등으로 이뤄진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는 국가책임일자리제, 주4일제, 전국민고용보험, 무상교육 등을 내놨다. 다만 농민 월 150만 원 지급 공약은 부분적 기본소득과 흡사하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는 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 후퇴를 비판하며 월 65만 원(연 780만 원) 기본소득 공약을 내놨다.

부자 감세 등을 지지하는 윤석열이나 안철수는 진지하게 따져 볼 만한 복지 공약 자체를 아직 내놓지 않았다.


구애 이재명이 중도층을 견인한다며 우클릭하는 것은 자본가들에게 기성 질서를 책임 있게 수호하는 정치인으로 보이려는 것이다 ⓒ출처 이재명 캠프

이재명: 기본소득에서 신복지로

이재명은 지난해 11월 이후 지지율 위기를 겪으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좌우 줄타기를 해 왔다. 노동계급 출신이자 민주당 주류와는 다소 다른 기반(노동조합 내 상층과 좌파적 지식인 기반)을 갖춘 이재명에 대해 한국 지배계급이 강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파는 보편적 복지 자체를 싫어한다. 국가 복지를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파는 복지가 저임금 일자리에 대한 “노동 유인”(시장 규율)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게다가 복지 확대는 부자 증세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여러 보편 복지 중에서도 기본소득을 특별히 흠집내는 데는 이재명을 떨어뜨리려는 속셈도 클 것이다.

이재명이 중도층을 의식한다며 우클릭 언사를 늘리는 것은 기성 사회 질서를 더 책임 있게 수호하는 정치인으로 보이려는 시도다. 박근혜 사면 결정을 존중한다거나 전두환의 경제 성공 인정 발언, 부동산 세금 완화 시사 등.

물론 이재명의 지지 기반은 노동계급 내 변화 염원층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재명의 우파 눈치 보기는 기회주의적인 좌우 줄타기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이 이재명의 선거 지지율 면에서는 득이 되는 듯하다. 윤석열은 강경 우파적인 성향이 계속 드러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파의 의제와 강조점을 중도파·개혁파들이 수용하는 것은 길게 보면 우파에게 유리한 요소가 된다.

계급타협적

그렇다면, 이재명이 기본소득보다 신복지를 강조하는 것도 우경화의 일종일까? 이미 그의 기본소득 공약 자체가 후퇴해 왔다는 점에서는 우경화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신복지론이 더 분명하게 복지 재원 마련 방안으로서 부자 증세를 회피한다는 점에서는 후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이 지난 수년간 주창해 온 기본소득론에는 급진적 면모가 있었다. 모든 개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정해진 액수를 조건 없이 지급, 공유부배당론(“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을 근거로 탄소세·토지세 등을 재원으로 제시한 것 등. 토지세는 부자 증세다.

그럼에도 이런 비교가 무색한 것은 이재명 공약의 액수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는 이재명의 후퇴(연 100만 원)를 비판하며 월 65만 원(연 780만 원) 공약을 제시했다.

한편, 신복지 정책은 모두에게 같은 액수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예산 낭비라고 비판하며 소득에 따른 차등 지급과 공공서비스의 확대가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신복지론은 기존의 복지 재원을 대폭 늘리지 않는다(늘릴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재정 확대를 위한 증세를 부담스러워해서다. 노동계급 증세가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법인세나 부자 증세를 우려한 기업주들의 반대를 의식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주류의 신복지 노선은 이른바 중(中)부담-중(中)복지다. 획기적 복지 확대를 위한 대규모 부자 증세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증세를 하더라도 국민 전체의 세금을 올리는 점진적 보편 증세를 선호한다. 이렇게 보면, 이재명이 신복지를 더 강조하는 것은 부자 증세 문제에서 체제와의 타협을 보여 준다.

정의당의 시민평생소득 공약이 형식상 신복지 구상과 유사한 것은 정의당이 보편 증세를 선호해 온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정의당은 현재 이 공약의 재원을 명확하게 내놓진 않았다.

사회의 변화

복지 문제에서 일차적인 핵심은 자본주의 국가의 예산(지출) 우선순위(어느 계급의 필요에 부응할 것인가) 문제다. 그런데 국가 예산은 세금으로 걷어서 마련하는 것이므로 재원 마련(징세)의 방법(어느 계급에게 부담을 지울 것인가)도 동시에 제기된다. 이는 결국 전략과 주체(누가 어떻게 이를 강제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3가지 점이 얼마나 중요하고 서로 연결돼 있는지는 국가 관료와 기업주들이 재난 지원금과 기업 지원 각각에 대해 보인 상반된 태도에서도 잘 드러났다.

결국 보편적 복지 확대가 강력한 재분배를 통한 평등이라는 목표에 다가가려면, 군비 대신 복지 지출 늘리기와 부자 증세가 강력하게 추진돼야 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지속적인 계급투쟁과 동떨어질 수 없다.

기본소득은 물론이고 정의당·진보당 등 좌파들은 여전히 보편적 복지 확대를 주장하지만, 대체로 이런 목표와 수단에서 많이들 멀어졌다.

과거에는 한국 사회를 사회민주주의 복지사회로 재편한다는 목표 아래서 ‘부유세와 무상의료·무상교육’을 한묶음으로 주장했지만, 지금은 체제 실패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목표를 넘어서지 않는다.

최근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는 변화되는 경제 환경과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특히 플랫폼 노동이 늘고 있는데, 고용 노동자 중심 사회보험 방식이 주종을 이뤄서 복지 사각지대와 노동계급 내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이들의 방향은 국가가 이를 보조하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보편 증세 등)하는 것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직된 고용 노동자가 받는 혜택이 문제가 아니라 나머지 노동자들이 그런 혜택에서 배제된 것이 문제다. 그것은 국가와 자본가들이 의식적으로 배제한 것의 결과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는 의료와 교육, 교통, 통신, 돌봄(보육) 등을 대거 무상화하고 장애인과 노인 등 현업에서 물러난 노동자·서민에게 충분한 생활 수당을 주면 해결할 수 있다. 기업과 부자들이 재원을 내야 한다. 사각지대 해결은 ‘모델’이 아니라 결국 계급투쟁 문제다. 제도는 투쟁이라는 매개를 거친 결과물이다.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박근혜 퇴진 촛불부터 사면까지

문재인 정부 5년 돌아보기

– 일시 : 2022년 1월 13일(목) 오후 8시

– 발제 : 김문성 (〈노동자 연대〉 기자, 《최근 한국 현대사 ─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사유물론으로 보기》《문재인 정부, 촛불 염원을 저버리다》 공저자)

○ 참가 신청 https://bit.ly/meeting0113

토론회 당일 오후 7시 30분에 유튜브 접속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촛불 투쟁으로 퇴진·구속된 박근혜가 4년 9개월 만에 사면됐습니다. 대중운동으로 우파 정권을 쫓아냈는데, 그 뒤 대중이 염원한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우파가 되살아났습니다. 반면 좌파의 존재감은 미미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촛불 투쟁과 문재인 정부 5년을 돌아보며 사회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얻어야 할 교훈을 살펴보려 합니다.

– 문의: 02-2271-2395, 010-4909-2026(문자 가능)

○ 노동자연대TV 채널에서 지난 온라인 토론회 영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노동자연대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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