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총학생회 선거는 민주노총 상근 간부 비리, 민주노동당의 재보선 패배 등으로 인해 사회 전반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좌파에 불리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그래서 선거가 치러지기 전, 일각에서는 뉴라이트가 약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곤 했다.

그러나 막상 이번 선거에서 우파들이 전면적으로 약진하지는 못했다. 정확한 그림은 좌파와 우파(또는 중도우파) 사이에 맞바꾸기 현상이 주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서울 지역 대학을 보자면, 올해 우파 혹은 중도 우파들이 지도했던 곳 중에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숙명여대 등에서 좌파가 당선했다. 반면, 올해 좌파 민족주의 경향이 지도하던 경희대, 단국대, 명지대 등에서 새롭게 우파가 당선했다.

올해 우파들은 대체로 ‘한총련 탈퇴’, ‘정치활동과 학생회의 분리’를 내세워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약점을 이용하려 했다. 명지대, 경희대 등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선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소극적이었던 곳에서 우파들이 성과를 거뒀다.

경희대에서 우파들은 지난 여름부터 8·15 통일행사가 경희대에서 열린 것을 문제삼으며, 총학생회를 공격해 왔다. 당시 이 문제를 집중 공격하던 우파 학생이 바로 이번 선거에 출마해 이 논쟁을 다시 점화시켰다.

지난 여름에 총학생회는 사과 입장을 발표하는 등 수세적 태도를 보였고, 이번 선거에서 총학생회 경향의 ‘Dynamic b’ 선본은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침묵으로 일관했다. 반미청년회 경향의 ‘Let’s PLAY’ 선본은 “총학생회의 무능함이 보수운동권을 등장시켰다”면서 양비론적 태도를 취했다.

물론 경희대의 경우 좌파 민족주의 경향이 분열해 복수의 선본으로 출마한 점이 패배의 주된 요인이었다. 하지만 애초 복수 선본이 출마해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반면, 올해 좌파가 우파에 맞서 승리를 거둔 곳은 정반대의 그림이 연출됐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선거에서 좌파들은 올해 총학생회를 지도했던 우파 선본에 큰 표차로 이겼다. 이화여대의 경우 좌파 선본이 복수로 출마해 표 분산 효과가 있었는데도, 당선한 PD 경향의 선본은 우파 선본보다 1천 표나 더 얻었다.

이런 곳에서는 그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총학생회의 우파적 색채가 폭로되면서 좌파가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좌파가 자동으로 약진한 것은 아니었다.

연세대 좌파들은 올해 총학생회가 학내에서 좌파 정치단체 게시물 철거에 앞장섰던 것을 적극 비판하면서 ‘정치적 중립’의 위선을 폭로했다. 또한 총학생회가 독단적으로 등록금 인상에 합의한 것을 비판하며, 하반기에는 총학생회와 독립적으로 이월적립금 환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화여대의 경우에도 좌파 선본들은 우파 총학생회의 등록금 합의를 비판했고, 선거  전에는 이화여대 다함께 회원들을 중심으로 우파들의 동성애자 공격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좌파가 단호한 태도로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하고 그 과정에서 우파의 본질을 들춰내려 노력한 곳에서는 좌파가 기회를 부여잡을 수 있었다.

물론 올해 우파가 총학생회를 지도했던 대학 중에는 좌파의 약점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아쉬운 결과를 낳은 곳도 있었다.
가령 한국외대는 우파 총학생회가 주체사상 문건을 경찰에 넘겨 동료 학생들을 국가보안법의 제물로 바쳤고, 구사대를 모집해 민주총장 선출 약속을 지키라는 외대 노조의 파업을 파괴하는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올 한 해 동안 좌파들은 우파 총학생회에 대한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해 왔고, 이번 선거가 그 결실을 맺을 기회였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지도적 활동가들은 외대 재단이 외국어 어학 시장에 뛰어들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우파 선본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국가 교육 재정 확충 요구는 비현실적이므로 핵심 정책으로 부각시킬 수 없다면서, ‘현실 가능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올해 우파 총학생회의 핵심 정책이었던 ‘재단의 수익성 강화’ 논리를 추수하게 됐고, 이 때문에 반우파 선본은 우파 총학생회에 반대하는 대안을 분명히 제시하기 어려웠다. 좌파들이 학생회 활동을 통해 불가피하지 않은 유혹에 굴복한 경우다.

한편, 학생 좌파들이 학생회 운영에서 추수주의적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가령 반미청년회 경향은 좌파 정치색을 상당히 약화시키고, 자치 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의 분권형 학생회 모델을 제시했다. 연대회의는 일종의 여론 모니터 기관인 ‘리서치 사업단’ 활동을 학생회 활동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학생회 운영은 중요한 좌파적 입장을 표명하고 운동을 건설해야 할 때,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타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점은 지난 이건희 박사 학위 저지 시위 이후 벌어진 논란에서 반미청년회와 연대회의가 취했던 우유부단한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또한 우파들이 제기하는 ‘학생회에서의 정치 배제’ 논리에도 무력해질 수 있다.

물론 학생회가 정치 조직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학생회에는 다양한 정치가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회에 개입하는 좌파들은 단순히 학생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도하는 학생회가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장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비운동권 선본들도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은 좌파 선본을 비판하면서 주로 협상을 강조하곤 한다. 대체로 좌파들은 총학생회를 운영하면서 투쟁을 건설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학생 좌파들은 선거 시기만 되면 득표에 연연하다 보니,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투쟁을 방어하는 데 소극적이다. 학생들의 교육 여건과 연관된 공약을 제시할 때도 학생들의 자주적 행동을 통해 쟁취하겠다는 관점은 뒷전에 둔 채, 마치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인 양 느껴지게끔 취급하곤 한다.

‘협상이냐 투쟁이냐’, ‘학생회에서 정치활동을 분리하자’ 등 선거에서 제기되는 논점을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어렵다.

선거에서 당선하는 것이 좌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길을 자동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당선하느냐 하는 점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선거 기간 동안 여러 논점들을 회피해서 당선 이후에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데 스스로 발목을 잡아 왔다면, 좌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는 커다란 제약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파가 총학생회를 지도하더라도 좌파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우파 총학생회가 투쟁을 외면하고 있는 동안 독립적으로 학생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운동을 건설한다면 좌파들에게 다시금 기회가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