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과 러시아와 인접한 산유국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1월 2일, 서민이 사용하는 LPG 가스요금 인상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2011년 튀니지, 이집트에서 시작된 혁명도 생필품 가격 인상에 대한 항의였던 것을 기억하라.). 그래서 수도 누르술탄과 최대도시이자 경제중심지 알마티로까지 번졌다. 특히 경제중심지이자 카자흐스탄의 전 수도였던 알마티(트로츠키의 유배지였다.)에서는 시위대가 시 정부 청사와 대통령궁을 장악하기까지 했다.

이에 카자흐스탄 제2대 대통령인 토카예프는 이 시위를 “외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소행으로 규정했다. 그는 초대 대통령 나자르바예프가 주도하던 내각 총사퇴라는 회유책을 썼으나, 시위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토카예프는 러시아와 옛 소련에서 독립한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벨라루스가 가입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동시에 이 시위에 참가한 카자흐스탄 민중들은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다른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정치인들과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공산당 관료 출신으로 소련 해체 이전부터 카자흐스탄을 지배했다. 그는 최대의 반대파였던 수도의 알마티 시장을 죽이고, 수도를 아스타나로 옮겼다. 이는 알마티를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뿐만 아니라, 소련 해체 이전에 카자흐인보다 많이 거주했던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로의 분리, 독립을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에 일어난 알카에다와 같은 이슬람주의의 부상을 견제했다.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시키고,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반대’를 목표로 설립한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했다.

한편, 경제발전을 위해 석유개발에 나서면서 한국(이명박 전 대통령하고도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과 미국 등 서방 기업을 유치하고, 이득을 자신의 가족, 측근들과 나눠 가졌다. 동시에 2021년 1월 28일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에서 카자흐스탄 정부의 석유 독립노조 탄압을 보도할 정도로 독립노조 결성 등 노동운동을 억압했다. 그리고 2005년에 이웃 키르기스스탄에서 일어난 혁명이 자국에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국경을 봉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중들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2019년에 대통령직에서 ‘자진’ 사임하고, 총리였던 토카예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수도 이름을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바꾸고, 국가안보회의와 “의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이래 계속되는 세계경제위기는 유가 상승에 의존하던 카자흐스탄 경제에 타격을 줬다. 그리고 2020년에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 19로 인해 카자흐스탄 정부는 최대교역국 중국 신장을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와 국경을 통제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까지 확진되는 등 피해가 컸다. 이러한 점에서 카자흐스탄 민중들이 “노인(나자르바예프)은 물러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나토의 동진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여 명의 군대를 배치시킨 러시아 정부는 토카예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자흐스탄에 러시아군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 군대를 파견했다. 토카예프 정부가 반정부 운동에 굴복할 경우, 우크라이나처럼 서방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비록 중국이 부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카자흐스탄에서는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나자르바예프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열병식 때 푸틴의 옆자리에 서 있을 정도로 러시아와 친하다.

또한, 미국과 타이완 해협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중국 역시 카자흐스탄 반정부운동에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중국의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이하 신장)의 위구르인과 카자흐인은 청 말 이래,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 1960년대 중소분쟁으로 국경이 봉쇄될 때까지 서로 교류했기 때문이다. 특히 카자흐인들은 신장에서 위구르인 다음으로 많고, 알마티에 가까운 일리 지역에 자치주까지 설치될 정도로 집중적으로 거주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중국은 중소 대립 동안 닫혔던 국경을 개방하면서, 러시아가 철수한 이후 카자흐스탄 등 여러 중앙아시아에 생긴 경제적, 정치적 공백을 메웠다. 경제적으로는 신장을 통해서 생필품 수출 등의 경제 교류를 확대했다. 동시에 옛 청 시절에 러시아에 빼앗겼다가 현재 카자흐스탄의 영토가 된 지역들에 대한 카자흐스탄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그 대가로 나자르바예프는 자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인 독립운동과 중국 기업의 진출로 생긴 카자흐스탄 민중의 반중 정서를 억압하고,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했다.

시진핑이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학에서 발표한 것이기도 한 일대일로 계획이 성공하려면 카자흐스탄 정부의 협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카자흐스탄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장애물일 뿐이다. 그래서 중국 외교부는 1월 6일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위를 잘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논평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행보는 카자흐스탄 민중들에게 중국이 신장처럼 자국을 식민지로 만들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더 강화시킬 것이다.

한편, 미국 정부도 카자흐스탄에서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와 집단안보조약기구의 카자흐스탄 파병에 대해 “합법성이 의심되고, 파병군대에 의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주시하겠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이는 위선이다. 왜냐하면, 미국 역시 카자흐스탄 석유 개발로 이득을 얻었고, 중국과 러시아가 약화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테러리즘 반대”를 명목으로 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의 긴장이 약화되길 원하고, 민주주의가 확대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카자흐스탄 민중들의 반정부시위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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