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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 이미지와 현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환상이 크게 일었다. 6년가량 흐른 지금, 당시 유행한 주장들이 상당히 과장스러웠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당시에는 인간의 고등 정신 기능을 따라잡거나 뛰어넘을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 꽤나 유행했다. 좌파들 내에서도 유행에 편승하는 주장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관련 주장을 비판한 기사: ‘알파고와 환원론’, 최일붕, 〈노동자 연대〉 170호)

그러나 강한 인공지능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년 내 개발될 것이라던 기술들도 여전히 난항에 부딪혀 있다.

완전 자율주행 기능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 자율주행 중에 트럭으로 돌진한 테슬라의 차 ⓒ출처 〈Local 4 News〉

자율주행차가 대표적이다. 당시 구글, GM, 테슬라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2019~2021년에 완전 자율주행차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기업주들은 운송에서 인건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거라 전망하며 막대한 투자를 했다. 이에 따라 운전수들이 대량으로 실직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최근 실직한 사람들은 자율주행 전도사로 불렸던 CEO들이다.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구글 자회사 웨이모의 CEO나 GM 자회사 크루즈의 CEO는 지난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우버도 2020년 말에 자율주행차 사업을 매각했다.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일정이 계속 미뤄지며 손실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완전 자율주행 기능을 판매한다고 광고하지만, 이는 사기에 가까워서 독일 법원은 그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판결했다. 지난해 초에도 테슬라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능이 대형 트럭을 인식하지 못해 자동차가 트럭의 바퀴 사이로 파고들어 탑승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처럼 완전 자율주행 기술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일이고, 실제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 밖에도 콜센터 직원을 대신하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 AI 의사와 간호사, 컴퓨터가 분석해 주는 자산 관리와 법률 조언 등으로 관련 분야에서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많았다.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은 AI와 로봇의 발전에 따라 2025년까지 1800만 명이 고용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체 취업자의 70퍼센트, 단순 노무직의 90퍼센트가 영향을 받는다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이 인간을 보조할 수는 있지만, 아직 어느 것도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지는 못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AI 기술을 도입한 기업 중 절반가량이 고객 지원과 응대 부분에서 이를 활용했고(예컨대 고객 상담 챗봇), 향후 도입하겠다는 기업들도 이 부분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챗봇은 간단한 질문에 대한 응답 외에는 일을 처리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상담사와 통화해야 해서 그 연결을 수십 분 동안 기다리며 울화통이 터져 본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AI 기술로 노동이 사라질 것이라던 산업 부문 중에서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며 오히려 인력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곳도 많다. 콜센터, 택배, 운송, 의료 등에서 인력 부족으로 기존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과로로 고통받고 있다.

AI의 가을?

얼마 전부터는 AI 기술 자체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보도들도 나온다. 영국의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에 ‘AI의 가을’이 오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미 1950년대와 1980년대에 AI 붐이 일었다가 기술 개발이 정체되고 환상이 깨지며 투자가 축소되는 일이 있었다. 세 번째인 이번 AI 붐은 2012년에 시작됐다. 그런데 양질의 데이터 부족, 하드웨어 발전의 정체와 함께 ‘알고리듬 개발로 지능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까지 제기되면서 AI 기술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지적이다.(〈이코노미스트〉)

물론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AI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미·중 패권 갈등의 일환으로 첨단 기술 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AI는 그중 하나이다. AI는 신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군사력 강화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재정 지원을 늘리고, 데이터 3법, 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과시키며 AI 기술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 정책을 강조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기업들에 시민들의 얼굴 정보 1억 7000만 건을 본인 동의 없이 넘긴 일도 있었다.

그러나 AI 산업들이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던 주장은 과장임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닥치면서 기업 이윤율은 몇 년 전보다도 떨어졌고, 기업 투자, 생산성 향상 수준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기업들의 AI 도입 증가 속도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윤율이 낮은 상황은 기술 발전과 도입을 제약하기도 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이 2021년 1월에 조사한 것을 보면, 한국 기업의 3.6퍼센트만 AI 기술을 도입했다.

물론 신기술 개발로 신산업에서 우위를 점한 일부 자본가는 추가적 이윤을 거둘 수 있다. 이 때문에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신기술에 투자 붐이 벌어지는 일은 자본주의에서 반복돼 왔다. 그러나 기업 간 경쟁으로 산업 전반에서 기계 등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 체제 전체의 이윤율을 전보다 더 끌어내리는 모순된 효과를 낸다.

AI 산업은 기술 발전이 자본주의의 구원투수이기는커녕 자본 축적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 준다.

두려움 부추기기

비록 AI 기술로 노동이 완전히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은 상당 부분 과장됐지만, 일반으로 말해서 기업들은 기술 발전과 로봇 등 기계에 대한 투자 증대를 통해 노동자 고용 비용을 줄이려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기술 발전과 기계 도입의 확대는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용 감소와 노동 강도 강화 공격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생산이 핵심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의존한다는 근본 특징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투쟁할 잠재력이 있다. 오히려 로봇과 첨단 기술이 많이 도입돼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높은 산업일수록 파업으로 이윤에 타격을 가할 잠재력도 늘어난다.

적지 않은 좌파들도 AI 기술의 발전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호들갑에 동조하며, 노동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받아들인다. 이런 전망 탓에 인력 감축이나 노동 강도 강화, 노동 유연화 같은 공격에 제대로 맞서기 힘들다는 비관주의에 빠지고,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강조하거나 일부 노조 지도자들처럼 지레 양보 교섭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AI 기술 발전의 효과를 과장하고,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잠재력에 주목하며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기술 발전은 인류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를 건설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로봇으로 힘겨운 노동 일부를 대신하고, 여가를 늘려 창조 활동의 기회를 키울 수 있다. 또, 정보통신기술은 생산과 분배, 그리고 사회의 운영을 민주적으로 토론해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혁신 기술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강화, 실업의 우려 키우기, 불평등 증가로 이어지기 쉽다.

마르크스가 말했듯 기계로 인한 “모순과 적대는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으로부터 나온다”.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가 생산의 목적인 사회를 건설하고,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사회를 운영할 때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고도의 생산 능력은 비로소 다수의 필요를 위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