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탈성장론은 자본주의적 성장에 대한 단순한 반발을 넘어서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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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기자가 필자가 쓴 ‘탈성장, 기후 위기의 대안인가’ 기사를 읽고 제기한 몇 가지 이견에 대해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김종환 기자는 많은 탈성장론자들도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하므로, ‘성장과 탈성장이 모두 필요하다’는 논거는 탈성장론을 비판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탈성장론자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의미에서 성장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요르고스 칼리스는 성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파이 전체의 크기는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성장은 … 총에너지 사용량 감소를 주장한다.” “우리가 중시하는 많은 것들
즉, 성장이 필요한 영역도 있지만 어쨌든 에너지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오래된 논의
김종환 기자는 탈성장을 주제로 한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에서 전화 발언으로도 좋은 기여를 해 줬는데 이와 연관된 옥의 티가 있었다. “탄소예산을 모두 소진한 뒤에 혁명이 일어난다면 사회주의 할아버지가 와도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십중팔구 혁명은 IPCC가 2018년에 제시한 탄소예산을 모두 소진한 뒤에야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IPCC는 이미 2021년에 일부 내용을 발표한 6차 보고서에서 그 시점을 현재로 앞당긴 바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됐건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할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에너지
김종환 기자가 인용한 마틴 엠슨의 주장에는 나도 완전히 동의한다. 그런데 그 문장 어디에도 고정된 한계는 언급돼 있지 않다. 재생 속도와 지속가능한 대안재 개발 속도, 자정 능력 같은 자연의 한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사회에 따라 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컨대 착취와 불평등이 사라지고 민주적으로 생산을 계획하는 사회에서 인류는 필요에 따라 성장과 탈성장을 결정할 것이고, 생산을 조직하는 방식을 재편할 뿐 아니라 대체재를 개발하고 재생 속도를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력도 발전시켜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복원·유지해 나아가야 한다.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