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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론은 자본주의적 성장에 대한 단순한 반발을 넘어서는 주장입니다

김종환 기자가 필자가 쓴 ‘탈성장, 기후 위기의 대안인가’ 기사를 읽고 제기한 몇 가지 이견에 대해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김종환 기자는 많은 탈성장론자들도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하므로, ‘성장과 탈성장이 모두 필요하다’는 논거는 탈성장론을 비판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탈성장론자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의미에서 성장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요르고스 칼리스는 성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파이 전체의 크기는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성장은 … 총에너지 사용량 감소를 주장한다.” “우리가 중시하는 많은 것들(공공 보건, 공공 교육, 공공 육아)과 관련하여 필요한 것은 양적 증대가 아니라 질적 향상”이라고도 주장한다.(강조는 장호종)

즉, 성장이 필요한 영역도 있지만 어쨌든 에너지(와 자원) 사용의 총량을 줄이는 속에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량이 줄어야 한다는 판단의 근거는 대단히 빈약하다. 왜 그런지 분명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데, 자본주의가 필요보다 이윤을 앞세운다면 이들은 필요보다 총량을 앞세운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만큼 에너지를 이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오래된 논의(생태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을 포함해)를 모를 리 없는 이들의 주장이 단지 ‘지배자들에 대한 즉자적 반발’이라고만 여기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평가로 보인다.

김종환 기자는 탈성장을 주제로 한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에서 전화 발언으로도 좋은 기여를 해 줬는데 이와 연관된 옥의 티가 있었다. “탄소예산을 모두 소진한 뒤에 혁명이 일어난다면 사회주의 할아버지가 와도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십중팔구 혁명은 IPCC가 2018년에 제시한 탄소예산을 모두 소진한 뒤에야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IPCC는 이미 2021년에 일부 내용을 발표한 6차 보고서에서 그 시점을 현재로 앞당긴 바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됐건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할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에너지(와 자원) 사용량에 대해 취해야 할 입장은 그 총합이 ‘필요’에 따라 정해져야 하고 그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는 신중론이지 선험적으로 고정된 한계를 상정해 덮어놓고 줄이라는 것이어선 안 된다. 자본주의하에서 그런 입장은 고통 전가에 악용될 위험성이 크고, 심지어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에서조차 재생에너지와 복지를 늘리고 늘어난 수명만큼의 시간을 고통 속에 연명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줄여야 하는 것은 온실가스이지 에너지 사용량이 아니다.

김종환 기자가 인용한 마틴 엠슨의 주장에는 나도 완전히 동의한다. 그런데 그 문장 어디에도 고정된 한계는 언급돼 있지 않다. 재생 속도와 지속가능한 대안재 개발 속도, 자정 능력 같은 자연의 한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사회에 따라 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컨대 착취와 불평등이 사라지고 민주적으로 생산을 계획하는 사회에서 인류는 필요에 따라 성장과 탈성장을 결정할 것이고, 생산을 조직하는 방식을 재편할 뿐 아니라 대체재를 개발하고 재생 속도를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력도 발전시켜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복원·유지해 나아가야 한다.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