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이라크 내 친(親)이란 무장 집단이 쏜 로켓포탄이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과 그 주변의 ‘그린 존’에 여러 발 떨어졌다. 이에 맞서, 미군은 탄도탄 요격 기관포 포탄을 분당 수천 발 쏘아 올려 이 로켓포탄들을 요격했다.

미국이 타국 주재 대사관에 사드(THAAD)와 유사한 원리의 자체 대공 방어 시설을 갖추고 로켓포탄을 요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미국은 10여 년 전인 2011년 12월 18일에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하고 공식 철군했는데도 전투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격과 교전은 이라크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이라크에서 친(親)이란 민병대는 공공연하게 미국의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미국이 이라크에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겠다며 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해 점령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9·11 공격을 명분으로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중요한 일부였다.

2001년 9월 11일에 알카에다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의 국방부 청사 등을 공격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정의 구현”을 외치며 9·11의 주범인 알카에다와 그 리더 오사마 빈라덴을 응징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미국의 권력자들은 이미 훨씬 전부터 군사력을 과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소련의 붕괴와 냉전 종식은 유럽 강국들과 일본, 중국 등 미국의 다른 경쟁자들이 부상할 기회였다. 미국의 최강국 지위가 위협받으리라는 불안감을 느낀 미국 정치 엘리트들은 1997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모임을 발족했다. 훗날 부시의 부통령이 되는 딕 체니, 부시의 국방장관으로서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도널드 럼스펠드 등이 그 회원이었다.

이들은 미국이 경쟁자들을 견제하려면 “불량 국가”들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봤다. “미국에 견줄 만한 국제적 경쟁자는 없다. … 하지만 현 상황에 불만족하며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잠재적으로 강력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군사적 역량과 국제적 위상으로 이들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량이 상대적·절대적으로 감소하면서 나타날 상황 속에서 [미국의 지위는] 필연적으로 약화될 것이다.”(2000년 9월 보고서)

이들에게 9·11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의 기회였다.

9·11 이후 한 달 만인 2001년 10월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공격은 탈레반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훗날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침공 전에 탈레반은 빈라덴을 제3국으로 송환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부시는 이를 거절했다. 군사력을 과시하기 좋은 손쉬운 상대인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지정학적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후 미국의 시선은 이라크로 향했다. 2002년 부시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란·북한과 함께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 대원들에게 생화학 무기를 제공하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훗날 이는 날조된 것으로 드러난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장악해 중동 석유를 지배하고자 했다.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 자원은 미국 자본주의에 훌륭한 전리품이 될 것이었다. 더 중요하게는, 중동 석유를 장악하면 거기에 의존하는 유럽·아시아의 경쟁자들을 억누를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고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를 이라크에 이식하고자 했다.

파괴

부시는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해 5월 1일에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가 내세운 이라크 “국가 재건”, “민주주의 수립”, “여성 해방” 등의 구호는 완전히 허구였다. 미국 전투기는 이라크의 도시와 마을에 폭탄을 쏟아부었고, 미국의 지상군은 가뜩이나 열악한 이라크의 사회 기반 시설을 심각하게 파괴했다.

일례로, 이라크는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중동에서 의료 체계가 가장 발전한 나라였다. 하지만 미국의 침공은 상황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질을 앓는 이라크 영유아의 사망률은 1990년에는 600명 중 1명이었지만, 지금 그 수치는 50명 중 1명으로 치솟았다. 전쟁 전인 1990년대 내내 서방의 제재하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던 이라크의 의료 체계는 전쟁으로 붕괴됐다. 2003년 이라크의 의료 예산은 1993년 대비 90퍼센트 감소했다.

미국의 침공 전에는 이라크인의 92퍼센트가 충분한 식수를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제 이라크 아동 5명 중 3명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전쟁으로 상하수도가 파괴돼 수많은 이라크인들은 오염된 강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내몰렸다.(이런 문제들은 2019년 이라크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른바 ‘후세인 흔적 지우기’였는데, 이것이 현실에서 의미한 바는 최저임금 삭감, 공공기관 민간 매각, 규제 없는 해외 기업 유치, 누진 소득세 폐지, 법인세 40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인하 등이었다.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그 가족들이 빈곤으로 내몰렸다.

그래서 점령은 처음부터 저항과 반란에 직면했다. 소규모 첨단 군대를 이용해 ‘전환적 전투’를 벌인다는 럼스펠드의 이론은 군사력만으로는 분노한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오랜 진실 앞에서 무기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악행으로 얼룩진 점령 악명 높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미군은 이라크인 재소자를 일상적으로 학대했다 ⓒ출처 Wikimedia

미국은 상황을 안정시키려고 종파 갈등을 부추겼다. 후세인이 속한 소수파인 수니파를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시아파를 적극 끌어들였다. 이것은 끔찍한 내전과 종파 간 폭력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점령 4년째인 2007년이 지나면서야 이라크는 약간 ‘안정’됐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저항 세력에 승리해서가 아니었다. 수니파 저항 세력 상당수를 포섭하고 친이란계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에 권력을 넘겼기 때문이었다.

이는 미국에게 엄청난 지정학적 후퇴였다. 이라크를 점령해 중동 석유를 통제하고 그럼으로써 중동의 반미 강국인 이란을 억지한다는 침공의 목표가 완전히 어그러졌다. 미국 지배계급은 천문학적 돈을 투입하기가 점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 전 세계에서 벌어진 대규모 저항과 그것이 보여 준 전쟁 반대 여론의 영향도 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 운동이 벌어져,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에 항의했다.

‘테러와의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인 잠재적 경쟁국 억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워졌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오히려 미국이 이라크의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중국이 세계 제2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래서 부시의 뒤를 이어 2009년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아시아로의 회귀”를 외치는 한편 승리할 수 없는 중동 전쟁에서 발을 빼겠다고 했고, 결국 2011년 12월 이라크에서 완전히 군대를 뺐다.

미군 철군 이후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점령군이 살해 사실을 은폐하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아무도 정확한 수치를 알지 못하지만, 적게 잡아도 이라크 사람들 수십만 명이 죽고 다쳤다.

이라크 경제와 사회는 엄청난 상처를 입었고, 빈곤과 종파 갈등이 판을 쳤다. 철저하게 사회가 무너진 상황에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같은 반동적 괴물이 탄생하기도 했다.(철군한 지 고작 몇 년 후에 미국은 ISIS 격퇴를 말하며 또다시 이라크를 폭격했다.)

한편,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군하면서 중동 지역의 세력 균형에 정치적·군사적 공백이 생겼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터키·이스라엘·이집트 등 지역 강국들이 그 공백을 메우려 경쟁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지역 최강자 자리를 두고 이란과 경쟁한다. 이런 경쟁은 중동 지역에서 또 다른 군사 충돌을 낳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예멘 내전이다. 친이란 성향 반군이 예멘의 정권을 잡으려 하자, 이란과 경쟁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에미리트·이집트 등을 규합한 ‘아랍연합군’을 결성해 예멘을 폭격했다.

미국의 동맹인 이스라엘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실패하며 영향력이 커진 이란을 경계한다.(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점령 이후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관계는 이전 어느 때보다 긴밀해졌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반(反)이란 성향의 아랍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바로 그 동맹의 거간꾼 구실을 했다.

한편, 중동 최대의 산업국 이집트는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리비아의 군벌을 지원한다. 그리고 터키는 앞서 열거한 국가들 모두를 견제하기 위해 이란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나토[NATO] 회원국인데도 말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고자 이 모든 갈등의 수렁에서 힘을 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중동의 세력 관계가 계속 불안정하고, 미국의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아래로부터 저항

중동에서 제국주의 지배 질서에 도전하는 중요한 요소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이다. 2011년에 중동에 잠시나마 민주주의와 해방의 가능성이 찾아왔던 것은 튀니지·이집트에서 시작돼 아랍 세계 곳곳으로 번진 대중 저항 ‘아랍의 봄’ 덕분이었다. 그런 대중 항쟁은 친미 독재 동맹들을 무너뜨리고 위협했다.

그리고 2019, 2020년에도 수단·알제리·이라크·레바논 등 여러 나라에서 대중 저항이 일어났다. 지난해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다시 한 번 영웅적 저항에 나서며 영감을 줬다.

당시 아랍 민중이 항쟁에 나섰던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이었다. 물 부족, 산불 등 기후 재앙, 물가 인상과 생활고, 민주적 권리에 대한 억압 등. 이런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며 대규모 저항을 낳는 배경이 됐고 수단·알제리에서는 수십 년 동안 권력을 유지하던 독재자들이 쫓겨났다.

미국의 이라크 철군은, 세계 질서 재편이 제국주의 강대국 지배자들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줬다. 미국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전쟁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패배했다.

그럼에도 중동의 불안정은 미국과 강대국들이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 속에서 민중의 삶은 계속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나 중동 대중이 지난 몇 년 동안 보여 준 저항은, 지배계급이 강요하는 빈곤·분열·폭력을 넘어서 강대국들의 경쟁 판 자체를 뒤흔들 수도 있을 잠재력을 보여 줬다. 그런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진정한 해방의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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