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부는 ‘자발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대학에 최대 60억 원의 지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2022~2024년 대학·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정원 감축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후 정부의 충원율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는 대학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같은 날 교육부는 ‘2023년 재정 지원 제한 대학 지정 방안’도 발표했다. 정부의 입맛대로 대학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정 지원을 끊는 것이다. ‘살생부’에 오른 대학의 학생들은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한다.

대학들은 정부의 정원 감축 압박에 반발해 왔다. 정부가 정원 감축의 대가로 재정을 지원한다지만 지원 기간이 한정돼 있고 그 액수도 충분치 않아 결국 대학 운영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입학 정원을 감축한 대학들이 이런 경험을 한 바 있다.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이 없고 재정이 충분한 대학들은 정부의 정원 감축 유도 정책을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입생 미충원으로 재정난을 겪는 사립 대학들은 정부 지원이 끊기면 재정난이 더 심각해지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정원을 감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학령 인구 감소를 근거로 대학 정원을 감축하고 서열이 낮은 대학들을 퇴출하려 한다. 그런데 학령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한국의 대학이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50~60퍼센트다.

역대 한국 정부는 모두 대학 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에 매우 인색했다. 정부가 고등 교육에 지출하는 재정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다. 한국의 사립대 비율은 85퍼센트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만큼 대학 교육의 비용을 학생들에게 떠넘겼다는 얘기다.

대학 당국은 학생과 노동자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부족한 정부 지원을 메꿔 왔다. 한국의 사립대 등록금 액수는 OECD 7위다. 많은 학생들이 높은 등록금을 마련하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졸업하면 학자금 대출 빚을 갚느라 허덕인다. 대학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강요받는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줄이려 한다.

고통 전가

대학 구조조정은 애꿎은 학생과 대학 노동자들의 고통을 키운다.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의 학생들은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제한 때문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부실대 출신’ 낙인은 학생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고, 취업 과정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이 선정될 때마다 해당 대학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다.

정부의 재정 지원 중단은 대학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노동조건 악화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초 재정 지원 제한 대학에 선정된 예원예대의 교직원들은 8개월치 임금이 체불됐다.

대학 퇴출은 해당 대학의 학생들에게 치명적이다. 인근 대학에 같은 전공이나 비슷한 계열의 학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학제가 달라 편입학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결국 편입학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있다. 2020년 폐교된 동부산대 학생들 일부는 인근 대학에 동일한 학과가 없어 편입학을 포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조기 졸업을 했다.

가까스로 편입학에 성공해도 ‘폐교 대학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모멸감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2018년 서남대가 폐교돼 인근의 전북대 등으로 편입한 학생들은 ‘학벌 세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편입 대상 대학의 학생들은 가뜩이나 부족한 교육 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을 염려하며 이해할 만한 불평을 터뜨리기도 한다(편입생들을 비난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퇴출 대상이 되는 대학들은 대학 서열의 하위에 있는 대학들로, 대부분 노동계급 등 서민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지방 사립대들이다. 따라서 대학 구조조정은 교육 기회에 대한 계급 불평등을 더 키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폐교는 교직원들을 졸지에 실업자로 만들어 그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폐쇄된 동부산대, 한중대, 서남대의 교직원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 전전해야 했다.

따라서 부실한 대학을 폐교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공립화해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학생과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육 기회 박탈 퇴출 대상이 되는 대학들은 대부분 노동계급 등 서민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지방 사립대들이다 ⓒ출처 crowdpic / 크라우드픽

값싼 노동력

불황이 지속되면서 지배계급은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이 늘어나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고 있다. 정부와 친기업주 언론들은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노동계급 자녀의 대학 교육에 대한 지원을 줄이려는 것이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불황기에 저임금 일자리에 필요한 노동 공급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기업들의 요구도 반영한다. 열악한 일자리를 노동계급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계획의 일부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않은 탓에 많은 청년이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려 왔다.

애초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것은 기업들과 국가의 필요 때문이었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지면서 대학이 팽창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불황이 길어지자 고학력 노동력에 대한 수요도 둔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과 정부는 OECD 국가 중 최고인 대학 진학률을 낭비로 여기며 대학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권리다. 가난하고 팍팍한 삶을 살기도 서러운데, 왜 대학에서 교육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해야 하는가.

진짜 문제는 대학 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는커녕 줄이려 하고, 청년들에게 저질 일자리를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정부와 기업들이다.

기업의 필요를 우선하며 대학의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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