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1월 하순 선거운동을 갑자기 중단했다가 돌아와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지워진 사람들”을 대변하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보의 금기 깨기”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중 진보의 금기 깨기는 심상정 후보가 2월 7일 발표한 연금 ‘개혁’ 방안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올리지 않으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는 인상하겠다는 연금 삭감 방안이다.

지난주에 참여연대가 주도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각각 이 방안을 공개 비판했다.

정의당은 이 비판들을 수용하지 않는다.


왜 정치적 후퇴인가?

정의당은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수지 불균형 해소), 노후소득보장 강화, 연금 통합의 3가지를 목표로 제시했다.

그 실현 방안으로 ▲보험료를 지금의 월 소득 9퍼센트에서 12~13퍼센트로 인상, ▲도시 지역 가입자 등 일부 보험료에 대한 국가 지원 늘리기, ▲기초연금 10만 원 인상(30→40만 원),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장차 통합하되 현직 공무원들은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하고 신규 공무원들은 처음부터 국민연금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연금 재정 안정과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상충하는 목표를 병렬적으로 내놓은 것에 함정이 있다. 양대 노총도 이 점을 비판한다.

그러다 보니 정의당의 공약은 수입(보험료)은 늘리되, 지출(연금 지급액)은 늘리지 않는다. 정의당의 노후소득보장 강화 방안은 국민연금 지급은 그대로 두고 국민연금에 내는 보험료 일부만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이다.

사실 필요보다 적게 걷히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실은 누가 복지 비용을 부담하느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지금도 기업들은 일부 노동자의 보험료를 절반만 지원할 뿐이고, 상당수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의 절반 부담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 책정 기준이 되는 월 소득의 상한선(현재 월 524만 원)도 있어서, 건강보험과 비교해도 최상층 고소득자들의 재정 부담분이 적다.

또한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도 2013년부터 점차 늦춰져서 2033년이면 만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연금 재정 안정을 이유로 연금 개시 연령을 만 65세보다도 더 늦추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한편, 국회예산정책처가 2020년에 작성한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 전망” 보고서를 보면, 명목 임금상승률이 평균(3.2퍼센트)에서 1퍼센트 오르는 경우와 떨어지는 경우의 연금 수지 개선 효과를 대조한 부분이 있다. 보고서 예측 결과는, 임금이 더 적게 오를 때 수지 개선 효과를 내고, 임금이 평균보다 더 오르면 오히려 적자가 는다. 장기적으로 연금 지급이 보험료보다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조사는 연금 수지 개선이 목표라면 임금 인상이 억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의당이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목표를 진지하게 재고해 봐야 한다.

정의당의 설명대로 해도 이렇게 보험료를 올려 봐야 현재 2055년경으로 예측되고 있는 적립금의 고갈 시점을 8년 늦출 뿐이다. 8년 뒤에 또 보험료를 올려야 할까?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정의당이 연금 재정 안정(수지 불균형 해소)에 초점을 둔 것은 노후소득보장 강화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지배계급이 재정 안정성(기금 고갈)을 걱정하는 것은 국가 재정을 절약하고 싶어서다.

정의당의 안은 계급 간 재분배 대신 세대 간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도입함으로써 노동계급 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기금 고갈이 문제라는 주장의 허점

우파는 기금고갈론을 근거로 국민연금 개악을 주장한다. 문제는 정의당도 이 전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자본가들은 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 지급에 국가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연금 개혁 방향이 연금 기금의 수지를 맞추는 것을 지향으로 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한 정의당 측의 반론은 이렇다: 기금이 고갈될 때쯤, 노인 인구가 많고 젊은 경제활동인구가 더 적기 때문에 보험료가 급격히 높아지고 연금 수령액이 줄어드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이를 막으려면 지금부터 보험료를 높여 기금 고갈을 늦춰야 한다.

즉, 노후소득보장과 연금 재정 안정은 동시에 추구해야 할 목표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애초 기금이 고갈될 것을 전제로 하고 설계된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민연금이 보험료를 낸 사람한테만 주는 방식이므로, 초기에는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것을 쌓아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적립식). 나중에 받을 사람이 많아져 기금이 점차 고갈되면 현재의 건강보험처럼 그해에 쓸 돈을 그해에 걷는 것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부과식).

이때 점차 줄어들도록 설계된 연금 기금이 다 사라지고 적립식이 부과식으로 바뀐다고 해서, 자동으로 노동자·서민의 보험료가 폭등하고 연금 수령액이 줄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립식이든 부과식이든 계급 간 재분배, 충분한 소득 보장, 국가의 지원과 지급 보장이 반영(관철)되느냐가 관건이다.즉, 연금 기금 고갈 문제는 노동운동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에 도움될까 정의당의 ‘연금 개혁’은 국가 재정 절약을 위해 노동계급이 양보와 분열을 감수하자는 안이다 ⓒ조승진


연금 개악이 청년 세대에게 유리한가?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청년 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부담 나누기라고 정당화한다. 그러나 국민연금 보험료를 높이면,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처음부터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사실 청년 세대는 지금 국민연금을 받고 있거나 곧 받게 될 세대보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더 낮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당시 복지부장관 유시민이 주도한 개악 때문이다. 당시 명목 소득대체율이 60퍼센트이던 것을 점차 낮춰 2028년에는 40퍼센트가 되도록 했다. 보험료는 그대로 둔 채 말이다.

그런데 소득대체율 40퍼센트라는 것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40년 동안 납부했을 때나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실질소득대체율은 그보다 훨씬 낮게 마련이다. 지금도 국민연금의 실질소득대체율은 20퍼센트 초반대에 머문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내놓은 보험료 일부 지원이나 기초연금 10만 원 인상으로는 노후 빈곤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연기금 고갈을 늦춘다는 명분으로 정부와 사용자들은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더 늦추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해 왔다.

보수 언론들이 주장하는 대로든 정의당 방안대로든, 청년 세대는 훨씬 더 오른 보험료를 수십 년 내고도 기성세대보다 더 적은 연금을, 더 늦은 나이에 받게 된다.


세대 간 분배가 아니라 계급 간 분배가 돼야 한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2007년에 국민연금을 개악한 이후, 2015년에 공무원연금을 개악했다. 형평성을 이유로 말이다.

공무원연금은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 대폭 개악됐다. 그때 얼마나 개악됐는지, 공무원연금 개악론자들조차 이젠 열악하기 짝이 없는 국민연금과 비슷해졌으니 통합하기도 유리해졌다고 말할 정도다. 당시 본지는 공무원연금이 개악된 이후에는 다시 국민연금이 개악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이 볼 때, 생산 활동에서 은퇴한 노동자들에게 주는 연금은 비용 부담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라마다 노후 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노후 소득 불안정이 현재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자본에 대한 충성심을 저해할 수 있으며, 또한 부모 부양 부담이 임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이다.

이런 이중의 필요를 자본가들은 이렇게 해결한다: 불가피한 양보로 얼마간의 노후 복지를 제공하지만 대신 그 비용 부담은 최소화한다. 그럼으로써 노인 중 아직 건강한 일부는 값싼 노동력으로 부려 먹고, 일부는 노후 설계라는 이름으로 부동산·펀드 등 각종 금융 상품을 팔아먹는 시장으로 삼는다.

사용자들은 경제 침체 시대에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용해 노동자들이 시장 규율에 더 매이도록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국민연금은 지급이 지연된 임금이다. 충분한 연금 지급 요구는 정당하다. 누구라도 노후에 적정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자본가들이 충분한 노후 소득을 보장할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업주들의 부담은 일부에 불과하다. 부자들은 소득에 걸맞은 보험료를 내지도 않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그런 박약한 지원조차 받지 못한다. 연금을 내기 어려운 저소득 노동자는 물론이고, 사업장이 열악하거나 플랫폼 노동 등으로 특수고용 처지에 있는 경우 고용주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연금이 사각지대를 없애고 노후소득을 제대로 보장하도록 하려면, 계급 간 분배 강화를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여기에는 연금 대상자로 모든 노동자를 포함하고 기업과 부자들이 국민연금 재정에 더 많은 돈을 내도록 하는 것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런 요구들은 노동조합을 넘어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런 요구들을 걸고 폭넓고 급진적인 대중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동안 노동조합운동 지도부가 이런 투쟁적 전망을 외면해 왔다. 민주노총·한국노총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도) 정의당을 비판하면서도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조건부로 수용할 수 있다고 한 것도 투쟁보다는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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