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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한복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여러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특히 2월 4일 개막식 공연에서 조선족을 대표한 참가자가 한복을 입고 등장한 것이 한국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개막식 전 지린성 소개 영상에는 한복·윷놀이·강강술래 장면도 나왔다.(지린성에는 조선족 자치주가 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중국이 ‘우리’ 문화를 중국 내 소수민족 문화로 격하하고 더 나아가 이를 중국 문화로 빼앗아가는 “문화공정,” “중국의 문화 침탈”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때마침 개막식 며칠 뒤 쇼트트랙 경기에서 중국에 유리한 판정으로 한국 선수들이 피해를 입자,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의 중국 성토는 더 거세졌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 공연 ⓒ출처 〈KBS뉴스〉

오늘의 한·중 관계

이번 논란을 계기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파들은 중국이 더 강해지면 한·중 관계가 금방 근대 이전의 조공-책봉 관계로 돌아갈 것처럼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구한말 조선에서 중국 정치인 위안스카이가 상왕(上王) 행세한 것을 상기시키며, “한반도의 대(對)중국 2000년 종속 역사의 질곡을 끊[자]”고 했다.

그러나 전근대에 한반도의 국가들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인식은 상당히 과장된 인식이다. 특히, 이를 오늘의 한·중 관계에 유비하는 것은 잘못이고, 그 정치적 함의는 위험하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경제와 막강한 군사력을 거느린 제국주의 국가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때로 힘을 과시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한국도 경제 규모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6위의 중간 규모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중국과의 무역도 최근의 성장에 기여했다. 전체 수출에서 대중국 수출 비중이 25퍼센트나 돼 한국 경제의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가 크지만, 중국에게도 한국은 세 번째로 중요한 무역 대상이다.

이처럼 중국과 한국이 경제·군사 면에서 대등하지는 않지만, 일방적으로 한국이 억압당하거나 종속돼 온 관계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한국의 문화를 “침탈”하려 한다는 말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세력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한미동맹에 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을 과시하고 전쟁까지 불사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 동맹국들에도 압력을 가하고 또 그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미 관계가 지배-종속의 관계는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한·미·일 동맹의 틀 안에서 발전해 왔지만, 그 결과로 자본축적의 자체 중심을 형성했고, 그에 따라 독자적 이해관계도 발전시켰다.

한국 지배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국·일본 제국주의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 쇼비니즘

일각에서는 한복 논란은 물론 동북공정 등에서도 한국에 대한 중국의 “문화 제국주의적 태도”가 드러난다고 한다.

물론 중국은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 때문에 일련의 역사 다시 쓰기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는 주로 한족 중심의 ‘중화민족 부흥’을 강조하고,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국경 지역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중국 제국주의의 프로젝트였다.

또한 그런 프로젝트 중 하나인 동북공정에는 북한에서 격변이 일어나 국경 지역이 불안정해지는 것에 대비하는 목적도 있었다. 여차하면 개입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중국 당국은 자국의 동북 지방이 고대부터 중국의 일부였고, 조선족도 중화민족의 일부라고 주장해 온 것이다. 그래서 동북공정에 분명 제국주의적 역사관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국가를 종속시키려고(이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진행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국내 대중의 불만을 다스리고 미·중 갈등에 대처하려고 중국에서 애국주의를 부추겨 왔다.

또한 올림픽 개막식에 조선족을 비롯한 55개 소수민족 사람들을 등장시켜 한족을 중심으로 모든 소수민족이 하나로 화합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한 것은 특히 신장위구르 논란을 의식한 정치 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중국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직시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나 한국 주류 정치인들의 국수주의적 대응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조선족은 한복 입으면 안 되는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이재명 등 주류 정치인들은 모두 조선족 사람이 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한복을 입은 것을 문제 삼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는 한국이 독립 국가로 존재하므로 중국이 조선족을 소수민족 중 하나라고 표현한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족은 한국이 건국되기 훨씬 전인 19세기부터 수차례 대규모 이민으로 형성돼 온 중국 내 소수민족이다.

일부가 중국 내륙으로 이주하기도 했지만, 다수는 중국 옌볜에서 자치주를 유지하며 살아 왔다. 위구르인들처럼 가혹하게 억압당해 온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여러 굴곡을 겪기도 했다.

오늘날 조선족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유지해 갈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지적했듯이, “조선족 동포[는] 자신들의 문화와 의복을 국가로부터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그 점에서 조선족이 원해서 한복을 입은 것을 두고 한국의 정치인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인들의 쇼비니즘 언사에 속지 마라

윤석열은 “고구려와 발해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역사,” 안철수는 “한복은 대한민국 문화”라며 쇼비니즘적 선동에 나섰다.

윤석열 같은 우파는 이번 논란을 한·미·일 동맹 강화론에 힘을 싣는 기회로도 삼았다. ‘권위주의’ 중국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미국·일본 등과 더 확실히 손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주한 미국대사 대리도 반중 정서 덕을 보려고 한복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한복은 한국의 전통문화’라고 거들며 논란에 끼어들었다.

이재명도 국수주의 선동에 편승했다. 그는 중국에 “문화를 탐하지 말라”고 한 데 이어, 한술 더 떠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을 격침시키자는 취지의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정부와 주류 정치인들은 중국에 대한 낡은 편견에 편승해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고 한다. 또한 더 나아가 친미·반중을 기조로 하는 한·미·일 동맹 강화에 우호적인 여론을 이끌어 내고, 대중의 시선을 국수주의 선동으로 엉뚱한 쪽으로 돌려 무마하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경제 침체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 속에 서민 대중의 고통과 원성은 커졌다.

민족주의는 노동자와 서민에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과의 일체감을 느끼라고 설득하는 이데올로기 구실을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는 미국은 물론 중국 제국주의에도 반대하되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와 반제국주의에 기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