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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WTO 투쟁을 돌아보며 - 저항과 반란이 대륙의 입구에 상륙하다

각료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계속된 “폭도들이 온다”는 식의 악의적인 선전은 먹혀 들지 않았다. 반대로 홍콩 시민들은 시위대의 일거수일투족에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시위대에 음식을 건네 주고 농민가를 따라 배우는 홍콩 시민들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위대가 연좌시위를 했던 글라우세스터 거리 주변은 시위대에 힘 내라고 소리치는 홍콩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경찰은 물러나라는 뜻의 광둥어를 연일 외쳤다.

12월 17일 집회 후에도 이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규모 연행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18일 폐막집회 때 무려 1만여 명이 빅토리아 공원에 모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홍콩민중동맹(HKPA)의 활동가이자 홍콩노총의 교육국장 멍시유탓은 “이번 시위의 결과로 홍콩의 시위 문화가 크게 변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시위에 참여할 것이고 더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싸울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홍콩 정부가 그토록 폭력적으로 나온 것이 틀림없다” 하고 말했다.

이번 시위가 홍콩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뭔가 새로운 의식이 꿈틀거리게 할 계기가 됐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실제 〈사과일보〉 12월 20일치에 따르면 “WTO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는 인상은 11.5퍼센트이고 나빠졌다가 32.8퍼센트”였다.

나는 13일 첫날 개막행진 때 행진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로 꽉 찬 도로의 광경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태어나서 그렇게 호기심에 찬 눈망울들을 본 기억이 없다.

재치있고 기발한 준비들도 한몫했다. 전여농은 홍콩에서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대장금’ 주제가를 개사해서 “반세계화” 노래를 만들어 홍콩 시민들과 함께 불렀다.

반WTO 시위의 영향은 며칠 뒤 보통선거권 쟁취를 요구하는 집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Ⅳ면 “다운 다운 간접선거”를 보시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중국 정부는 홍콩을 들썩거리게 한 시위대에게 본때를 보이고자 했다.

홍콩 정부와 경찰은 홍콩의 반WTO 시위가 대륙에 미칠 영향도 두려워했다. 중국 정부는 반WTO 시위가 가뜩이나 분노에 휩싸여 있는 중국 대륙의 농민들을 자극할까봐 전전긍긍했다.

홍콩의 자유주의 신문인 〈사과일보〉 16일치에 따르면 실제로 중국 정부는 중국 농민들이 반WTO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국경선 통제를 시도했다.

반면에 한국민중투쟁단 상황실이 중국 정부가 시위대를 전원 연행해 바로 풀어 주지 않을 수도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중국 정부에 대한 태도와 관련있다.

17일 새벽까지 진행된 각 단체 집행책임자 회의에서 상황실 주요 활동가들은 연행되면 바로 풀려나거나 곧바로 강제출국 당하는 정도의 사태만을 예상했다.

중국 정부에 대한 안이한 생각은 소고백화점(홍콩에서 가장 큰 백화점 앞)에서 열린 촛불 집회 때 오종렬 의장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다. 오의장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을 때 너무도 기뻤다. 하나의 국가 아래에서 중국 사회주의와 홍콩 자본주의가 함께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홍콩과 한 시간 거리인 광둥성에서 농민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한 바로 그 정부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중국 사회주의’ 정부가 반WTO 시위대를 야만적으로 탄압하고 감옥에 처넣었다!

물론 한국 참가단이 매우 훌륭한 구실을 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투적이고 활력있는 집회와 행진, 다양한 몸짓과 노래 등으로 반WTO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훌륭하게 전달해 냈다.

다만 삼보일배는 시위대의 주장을 알리고 동정심을 사기에는 효과적이었을지는 몰라도 한국 시위대가 삼보일배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상황실장을 비롯한 한국민중투쟁단의 일부 주요 활동가들은 가장 국제적이고 큰 규모가 될 18일 폐막 행진을 주요 일정으로 고려하지 않았던 점은 아쉽다. 시간이 갈수록 반WTO에 공감하는 수많은 홍콩 시민들의 참여 속에서 “다운 다운 WTO!”를 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18일 폐막 집회와 행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투쟁은 자유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인 홍콩에 기름진 저항의 토양을 만들었다. 특히 한국 활동가들은 1천여 명이 넘는 최대 규모의 국제 원정 투쟁단을 조직함으로써 국제적인 반신자유주의 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이것은 국내 반자본주의 운동 발전에도 주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세계자본주의의 허파 홍콩, 그것도 WTO 각료회의장 앞에서 WTO라는 뱀파이어의 시체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뱀파이어의 숨을 멎게 할 저항과 반란이 13억 인구가 살고 있는 대륙의 입구에 새로 상륙했음은 분명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