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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왜 우크라이나 위기는 질질 끌어 왔는가

나토-우크라이나 관계에 대한 미-러 입장 차이가 이번 위기의 배경이다. 사진은 2017년 우크라이나 군이 나토 병력과 함께하는 모습 ⓒ출처 미군

[1961~1964년 미국 법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케네디는 냉전 시기 최대 위기였던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회고하는 책을 내면서, 제목을 [그 위기가 지속된 기간을 따서] 《13일》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위기는 몇 달 동안 계속되고 있고 심지어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점에서 이 충돌은 실질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핵심 요구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받지 않겠다고 미국이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성사될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다. 새로운 국가가 나토에 가입하려면 30개 회원국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한 국가가 여기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뭐하러 러시아와의 전쟁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꿈에서나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말한 바 있다.

푸틴은 십중팔구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게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십중팔구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 해도 그것의 방지를 보장해 주지는 않으려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도 굽히는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푸틴은 나토가 동유럽과 흑해를 잠식해 들어오는 것에 실질적인 안보 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푸틴은 미국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 한때 오바마가 거만한 태도로 일컬었던 것처럼 — “역내 강국”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플레이어로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한편, 바이든의 국내 정책은 국회에서 공화당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지정학적 후퇴, 즉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함락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스왐프 노츠” 칼럼은 이렇게 지적한다.

“바이든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추락한 시점은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날짜와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 지지율이 마지막으로 50퍼센트를 넘었던 때는 미국이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사라지기 일주일 전이었다. 그 후 바이든 지지율은 줄곧 50퍼센트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40퍼센트 선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을 굴복시키면, 국내에서 정치 판세를 다시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위기가, 종종 비교 대상이 되는 쿠바 위기와 달리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쿠바 위기는 당시 소련 지도자인 니키타 흐루쇼프가 핵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기로 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미국의 존 F 케네디 행정부가 쿠바 혁명 정부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에 맞서 흐루쇼프는 그 정부를 지키려 했다.

미사일 배치

케네디는 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쿠바를 상대로 해상 봉쇄를 단행했다. 세계는 핵전쟁 직전으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자 흐루쇼프는 추가로 미사일을 싣고 가던 소련 군함의 뱃머리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딘 러스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눈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방금 상대방이 눈을 살짝 감은 것 같다.”

사실 양측 모두가 눈을 감았다. 시어도어 부르히스가 문서보관소의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여 최근에 낸 흥미로운 연구서인 《두 10월의 총성 없는 총》은 케네디와 흐루쇼프 모두 핵전쟁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준다.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스파이들과 기자들을 통해 수개월간 비밀리에 의사를 주고받았다. 케네디는 두 가지를 양보해 흐루쇼프로 하여금 신속하게 미사일을 철수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케네디는 쿠바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된 소련을 겨냥한 미사일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이 중 두 번째 약속을 비밀에 부치기로 합의했다. 케네디가 그해 11월에 열리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공격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승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먼저 굽힌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케네디에게서 기대 이상의 양보를 받아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이든과 푸틴 모두 먼저 굽힌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은 패배를 겪은 두 제국주의 열강의 갈등이다. 러시아는 냉전의 패자였고 미국은 중동의 패자였다. 그래서 둘의 조합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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