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광둥성 샨웨이 시의 둥저우 촌에서 경찰의 발포로 20여 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둥저우 촌은 홍콩에서 불과 2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어촌이다.

 2002년 샨웨이 시는 주민들이 생계를 의지하는 땅에 대형 풍력 발전소를 짓겠다고 결정해 1만 여 둥저우 촌민들이 생존 위협에 직면했다.

약 4천여 명이 토지를 잃었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의존하던 바이샤 호수를 잃었다. 몰수 이후 보상금 중 최소한 2억 위안(약 2백40억 원)의 보상금이 탐욕스런 관료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절박한 처지의 주민들은 2004년부터 항의 행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우선 각급 정부에 대표를 보내 청원을 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2005년 6월부터 발전소 공사장에 대나무 막사를 치고 매일 교대로 공사를 막는 항의 행동을 시작했다. 9월 11일에는 발전소와 연결되는 도로를 봉쇄했다.

발포 사건이 일어난 12월 6일 수백 명의 무장경찰은 주민들이 설치한 대나무 막사를 뜯어냈고, 주민들을 구타하고 세 명을 체포했다. 이에 주민 수천 명이 석방을 요구하며 발전소 주위를 둘러쌌다.

증파된 무장경찰 1천여 명은 주민들을 포위하고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키려 했다. 격분한 주민들은 화염병과 돌·폭약 등으로 경찰과 맞섰고 경찰은 실탄을 쐈다.   

현재 중국 당국은 사망자 가족들이 시체를 확인하고 인수하는 것조차 막고 있다. 그들은 시체 확인 및 인수를 포기하면 돈을 주겠다며 주민들을 매수하려 하고 있다.

 아직도 둥저우 촌에는 공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찰 방송차에서는 시위에 참가한 주민들은 하루 속히 자수하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중국의 언론이 일제히 침묵하는 가운데 사건이 해외에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11일 발포 사실을 인정했고 3명의 주민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발포 책임자로 샨웨이 시 공안국 부국장 우셩을 체포했지만 일개 시 공안국 부국장이 발포 명령을 내렸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제2의 천안문 사건”이라며 비난하자, 베이징의 중앙정부 대변인 친강은 둥저우 사건과 천안문 사태는 비교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는 중국 지배자들의 야만은 두 사건에서 하나도 다르지 않다.

현재 중국에서는 둥저우 촌과 같은 비민주적인 토지 몰수가 수많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 시안에서는 카톨릭 수녀들이 교회 토지 매입에 반대하다, 심하게 폭행당해 실명하고 반신불수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