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WTO 각료 회담 기간 동안 진행된 반WTO 포럼과 급진좌파 회의에서 중국의 사회 성격과 중국 운동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됐다. 여기에 참가했던 〈다함께〉 기자 김용욱은 중국 문제가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2월 15일 ‘남반구초점’과 ‘세계화감시’ 등이 주최한 ‘중국과 세계화’라는 토론회에는 거의 1백 명 이상이 참가했다. 이날 가장 주목받은 발표자는 국역된 《13억의 충돌》(이후)의 저자이자 대표적인 중국 ‘신좌파’ 지식인인 한더치앙이었다.

중국 ‘신좌파’의 주장은 국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국내 시장과 대중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자본주의 운동 내 좌파 케인스주의자들과 공통된 측면이 있다.

이것은 중국 내 이데올로기 지형이 세계 반자본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반가운 사례다.

다른 한편 한더치앙은 마오주의와 시장 개혁의 결합을 대안으로 여기는 중국 ‘신좌파’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그는 1980년대가 그런 대안이 가능함을 보여준 시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더치앙은 1986년 학생 시위나 노동자 파업, 심지어 1989년 천안문 항쟁을 낳은 사회적 모순과 투쟁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한술 더 떠 “서구 민주주의 파산”을 예로 들면서 이런 투쟁들의 중요한 요구 사항 중 하나였던 민주화가 중국에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 대만 노동자가 중국 노동자들이 독립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중요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우리는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동란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합리적 변화를 바란다”고 답했다. 현시대 마오주의자들의 정치적 파산을 이만큼 명확히 보여 주는 말도 드물 것이다.

이에 비해 홍콩 트로츠키주의자인 아우룽의 주장은 돋보였다. 그는 “그런 주장은 노동자· 농민 대중이 지배자들이 무엇을 해줄 때까지 온갖 박해와 억압을 참으면서 조용히 기다리라는 말일 뿐이다. … 칼에 찔렸을 때, 칼을 탓할 것인가 아니면 칼을 휘두른 자를 탓할 것인가?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명백하다. 그것은 중국 정부다” 하고 주장했다.

아쉽게도 아우룽의 비판은 결정적 한 방이 부족했다. 그는 결코 중국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좌파’의 진정한 약점은 대중의 복리를 얘기하면서도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중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연관돼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우룽의 ‘신좌파’ 비판의 한계는 그가 마오시대 중국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면서 중국이 지금 그로부터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과 연관돼 있다.

마오시대를 어쨌든 노동자 국가로 보기 때문에 아우룽은 한더치앙이 마오시대를 이상화하는 것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할 수 없었고, ‘이행기’ 중국에서 혁명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협소한 관점에서만 지적했다. 그는 재국유화를 통해 ‘중국 사회주의’ 재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자일스 웅파콘의 주장은 매우 중요했다. 일단 그는 마오시대의 중국을 어떤 의미에서도 노동자를 위한 사회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마오는 중국을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군사적 슈퍼 파워로 만들기 위해서 노동자와 농민들을 쥐어짰고, 신장성과 티벳을 점령하고 타이완을 군사적으로 위협해 왔다. 이렇게 실패한 대안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진정한 대안은 군사적 필요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며,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싸우는 것에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 토론회에서 좌파적 대안을 제기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심지어 일부 참가자들, 특히 중국 본토에서 온 NGO들은 좌파들이 플로어에서 주장을 하는 것에 매우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토론인 ‘21세기와 사회주의: 중국과 사회주의’는 이 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은 공개 토론회가 아니라 주로 다양한 트로츠키주의 경향들만이 모인 토론회였다.

참가자들은 현재 중국이 자본주의 국가(혹은 ‘거의’ 자본주의 국가)이며, 중국 공산당과 독립된 변혁적 사회주의 조직과 혁명(그 의미는 서로 다를 수 있을지라도)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나 정작 ‘과연 중국 노동자들이 전국적인 수준에서 중국 국가와 자본에게 도전할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는 이견이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중국 국가의 억압· 중국의 경제 성장·민공 문제를 비롯한 노동계급의 분열 등의 요인 때문에 전국적 노동자 운동의 등장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은 영원할 수 없고, 우리는 이미 대중적 투쟁이 급속히 증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통계를 봐도, 2004년에만 1백 명 이상이 참여한 소요가 7만 4천 건이나 발생했다. 분명히 투쟁이 일반화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것은 그 동안 중국 노동자들을 주로 경쟁자로 바라봤던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노동자들을 고무할 것이다” 하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과 홍콩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중국 노동자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의식과 조직화의 수준을 예로 들면서 이런 전망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자일스는 회의주의에 빠질 이유가 없음을 지적했다. “중국은 분명 굉장히 억압적인 국가이지만 현재 지배자들이 분열해 있고, 조직화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이것은 분명 민주화 요구를 놓고 싸우고 있는 홍콩 대중들에게도 기회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함께’의 김어진도 “홍콩 대중이 반WTO 활동가들에게 보여 준 관심과 호의는 놀라웠다. 이것은 홍콩에서도 변혁적 정치 조직이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었고, 홍콩의 운동은 분명 중국 본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특히 젊은 층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 트로츠키주의자들 대부분은 중국의 혁명적 전망에 대해 선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중국 노동자들이 대규모 투쟁을 통해 국가와 자본에 도전할 가능성과 그것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변혁 조직의 건설 가능성에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이런 회의주의는 이들이 거의 20년 이상을 성장하지 못한 채 고립돼 있던 상황의 반영일 것이다.

다행히도 이날 대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매우 정열적으로 대만에서 부르주아 정당과 독립된 변혁 조직을 건설할 필요성을 지적하며 이를 위해 운동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분명히 대만에서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준 반가운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