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월 3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의 발제문을 다듬고 보충한 것이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이번 전쟁은 아마 1945년 이래 유럽에서 가장 많은 병력이 투입된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을 놓고 좌파 측에서 혼란이 적잖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은 무엇이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우선 자본주의와 전쟁의 관계를 짚어 보고, 과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요한 전쟁들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살펴본 다음, 그 교훈을 적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살펴보려 한다.

자본주의와 전쟁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전쟁으로 점철된 사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수천만 명이 죽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끔찍한 전쟁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100여 년 전 독일 사민당 지도자 카우츠키는 전쟁과 자본주의의 필연적 관계를 부인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전쟁이 필연이 아니고 지속적 평화가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이런 주장은 지금도 흔하다.)

레닌과 부하린 등 동시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을 날카롭게 반박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이윤을 위해 서로 경쟁한다. 이 경쟁은 결코 평화적인 과정이 아니다. 국경을 넘어 경쟁하게 된 자본가들이 경제적 방식뿐 아니라 자국의 국가기구와 무력에도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축적의 동력인 자본 간 경쟁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원인인 것이다.

이윤을 위한 자본가들의 맹목적인 경쟁 속에서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세계를 누가 지배할지를 두고 서로 각축전을 벌이게 됐다. 레닌을 비롯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이런 경쟁 체제를 제국주의라고 했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대국들은 경쟁을 제어하려고 서로 협정을 맺기도 했지만, 그들 사이에 새롭게 갈등이 불거지고 다시 전쟁이 나는 것을 협정들이 막지는 못했다.

제국주의와 전쟁이 자본주의의 동력인 경쟁적 자본축적에서 비롯한다는 점에는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 전쟁을 없애려면 자본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근본적 대안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에게 착취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인 노동계급과, 제국주의에 억압당하는 피억압 민족들의 투쟁에 있는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과 혁명적 패배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쟁에 관한 좌파들의 주장은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시험대를 거쳐야 했다.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강대국 간 식민지 쟁탈전은 끝내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을 불렀다.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이 한편이 돼, 독일·오스트리아 등과 맞붙었다.

전쟁이 벌어지자, 그전까지 전쟁 반대를 수없이 다짐했던 독일 사민당 등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자국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모두 적국의 호전성과 공격성을 비난하며 그에 맞서 ‘우리’ 나라를 ‘방어’하자고 주장했다. 독일 사민당은 러시아 차르(황제)의 전제정을 비난했고,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은 독일의 확장주의·군국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자국 지배계급의 전쟁 노력에 반대한다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저버렸다. 결국 수많은 애먼 청년들이 참호 속에서 학살되는 것을 도운 셈이다.

그때, 비록 소수였지만 자국 지배계급의 전쟁 노력에 반대한 혁명적 좌파가 있었다. 독일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그런 좌파의 중심 인물이었다.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주적은 국내에 있다”고 말했다. 영국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범죄에도 반대하되, 독일 노동계급은 무엇보다 자국 지배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전쟁을 일으키는 자본주의 체제와 약소국 억압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선의 반대편에서는 러시아 혁명가 레닌과 그가 이끈 볼셰비키 당이 자국 지배자들의 전쟁 노력에 반대했다. 레닌은 제1차세계대전이 제국주의 전쟁임을 분명히 했고, 거기서 “방어적 전쟁”이나 “조국 방위 전쟁” 운운하는 것은 “순전한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레닌은 노동계급이 계급투쟁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제국주의 전쟁을 국내 지배자들에 맞선 혁명과 내전으로 전환시키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혁명적 패배주의”로 알려진 입장이다.

레닌의 “혁명적 패배주의”는 양대 제국주의 진영 중 어느 한쪽이 승리하는 게 더 낫다는 차악론이 아니었고, 중립론도 아니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차르 전제정에 대항하고, 독일 노동자들은 카이저(독일 황제)에 대항하자는 것이었다.

역사는 레닌의 노선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시간이 갈수록 전쟁은 국민의 단결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계급 분단과 계급 갈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마침내 전쟁은 유럽에서 혁명을 촉발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았고, 이듬해 독일에서도 혁명으로 정부가 전복됐다. 혁명이 제국주의 전쟁을 끝낸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을 끝낸 1917년 러시아 혁명

제2차세계대전: 민주주의 대 파시즘의 전쟁?

1939년에 일어난 제2차세계대전은 흔히 민주주의 대 파시즘의 전쟁으로 일컬어진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맞서 미국·영국·소련 등 연합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전쟁이라는 것이다. 당시 처칠과 루스벨트 등 연합국 정치인들은 전쟁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반파시즘 구호를 내걸었다.

저명한 영국 공산당계 역사가 에릭 홉스봄도 제2차세계대전이 “19세기였다면 진보와 반동으로 불렸을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라고 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봤다. 전쟁이 나기 전인 1934년에 이미 그는 앞으로 벌어질 전쟁은 “세계의 재분할을 둘러싼 두 제국주의 간 투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에 “각국의 사회 체제나 국가의 정치적 형태가 무엇이냐”는 문제는 전쟁의 성격을 이해하고 전쟁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데서 완전히 부차적이라고 지적했다. 1939년 트로츠키는 이렇게 주장했다. “제국주의자들은 형태만 다를 뿐 본질에서는 같다. 식민지가 부족한 독일 제국주의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튀어나온 무서운 파시즘의 가면을 쓰고 있다. 거대한 식민지를 보유해 뱃속이 든든한 영국 제국주의는 민주주의의 가면 뒤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숨기고 있다.”

히틀러·무솔리니의 파시즘은 끔찍한 야만이었지만, 연합국들이 전쟁에 뛰어든 실제 동기는 ‘민주주의 수호’가 아니었다. 영국은 독일의 유럽 지배가 영국 제국주의에 위협이 되자 비로소 전쟁을 결심했다. 미국은 일본을 제압해 태평양을 지배하고 최강 패권국 지위를 차지하고자 전쟁에 뛰어들었다. 독일의 침공으로 불가피하게 전쟁에 뛰어든 소련은 자국에서 독일군을 밀어내고 더 나아가 동유럽을 소련의 배타적 세력권으로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좌파들은 이 전쟁을 ‘민주주의 대 파시즘’의 전쟁으로 보는 유력한 여론을 받아들였다. 영국에서는 노동당 대표 클레멘트 애틀리가 처칠 내각의 부총리가 됐고, 노동당 소속의 다른 장관들도 노동자들이 전쟁에 협력하도록 설득하고, 심지어 파업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공산당들도 모두 연합국의 전쟁 노력을 전폭 지지했다.

전쟁과 파시즘은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고 곳곳에서 저항을 낳았다. 독일군이 물러나는 과정에서 유럽 곳곳에서 반란이 분출했고, 식민지들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1945년,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거대한 변화가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많은 좌파들, 특히 공산당들은 자신들이 ‘민주적’ 또는 ‘평화애호적’ 제국주의로 규정한 영국·미국에 협력하고 기존 지배 질서의 복원을 도왔다.(1945년 9월 8일 이후 남한을 점령한 미 군정을 조선 공산당도 이렇게 규정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전쟁은 절망만을 낳는 게 아니다. 위기 속에 혁명을 촉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에서는 혁명적 지도부가 부재한 탓에 이것은 가능성에 그치고 말았다.

나치는 정말 끔찍한 존재였지만, 그래서 처칠이 전쟁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냉전과 한국전쟁: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는 부차적인 물음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시작됐다. 냉전은 흔히 ‘자본주의 진영 대 사회주의 진영’의 대결로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냉전도 두 초강대국(미국과 소련) 중심의 제국주의 경쟁 체제였다.

미국과 소련이 이끄는 양대 진영의 적대와 갈등은 제3세계 곳곳에서 위기를 키웠고, 특히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국지적 열전을 낳았다.

세계를 둘로 쪼개 놓은 냉전의 압력 하에서 당시 좌파들은 양 진영 중 하나를 지지하는 쪽으로 이끌렸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이가엘 글룩스타인(토니 클리프)은 이런 선택을 거부했다. 미친 듯한 군비 경쟁을 벌이는 제국주의 초강대국들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둘 모두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워싱턴(미국)도 모스크바(소련)도 아닌 국제사회주의”라는 구호를 제시했다. 이 구호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지키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냉전 시기를 헤쳐 나가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클리프가 이런 구호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 없는 관료적(전면적) 국가자본주의 사회임을 이해한 덕분이었다. 또, 클리프는 소련이 제2차세계대전 말에 점령한 동유럽의 국가들과 민족들을 억압하는 제국주의 국가라고 봤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냉전이 사실은 제국주의(간) 갈등임을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한과 미국의 우파들은 북한이 먼저 남침을 해서 한국전쟁이 시작됐음을 강조한다. 이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한의 침공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전쟁을 했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누가 먼저 총을 쐈는가?’ 하는 문제는 전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서 완전히 부차적인 물음이다. 거기서 출발해서는 전쟁에 대한 올바른 분석과 방침을 취할 수 없다.

한반도는 당시 냉전의 최전선이었고, 전쟁 대부분 기간 미국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중국과 직접 맞붙었다. 즉, 한국전쟁은 냉전 하에서 벌어진 제국주의(간) 열전이었다.(그래서 미·중 갈등이 점증하는 오늘날, 이 전쟁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무대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맞붙은 열전이었다 ⓒ출처 미군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까지 과거 중요한 전쟁들에서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살펴봤다. 그 역사적 경험과 교훈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서방 세계의 많은 좌파들은 러시아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가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를 먼저 침공했다거나, 권위주의적 국가라면서 말이다. 마치 서방은 제국주의가 아니고,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식이다.

영국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나토의 확장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좌파 지도자인 제러미 코빈이 당대표였던 시절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이 영국 제국주의의 믿음직한 대변자임을 보이려 한다.

영국 노동당 좌파계 의원들은 러시아와 나토를 모두 비판하는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성명에 서명했다가, 키어 스타머의 협박에 굴복해 서명을 철회했다. 전쟁 반대에 앞장서기는커녕 오히려 당 지도부에 충성하며 납작 엎드려 버린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민주사회당(DSA) 지도자이자 민주당 좌파계 하원의원들이 러시아만을 반대하고 러시아 제재를 촉구하는 입장을 냈다. 바이든 정부와 자국 제국주의에 굴복한 것이다.

이런 일들은 제1,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좌파가 취했던 입장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좌파의 경우,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특별 성명을 발표해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항전을 지지한다. 그는 비록 나토의 확장도 문제였다고 지적하지만, 결정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러시아 제재, 우크라이나 군수 지원 움직임을 분명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나토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결국 자국 지배계급의 서방 제국주의 지지와 협력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2월 28일 민주노총, 참여연대, 사회진보연대, NGO 시민단체들은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의 침공 중단을 요구했다. 러시아가 먼저 총을 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러시아 규탄에 주력했다. 이들도 정의당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간) 전쟁으로 봐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무자비한 공격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과 서유럽 강대국들도 제재와 무기 지원 등을 통해 이 갈등의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소련 해체 후 미국은 동유럽 국가와 옛 소련 소속 공화국들을 나토로 끌어들여 왔다. 미국이 동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점증하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침내 러시아의 푸틴은 나토의 확장에 대응하고 러시아가 세계적 수준의 지정학적 경쟁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주목할 만한 선택을 했다.

이에 대응해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대대적으로 무기를 지원하고 있고, 러시아 항공기의 자국 영공 사용을 금지했다. 또, 러시아에 ‘핵폭탄급’ 금융 제재를 가했다. 직접 전쟁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사태에 상당히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나토가 만약 한 발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다면 상황은 정말 심각해질 것이다. 러시아와 나토 전투기들이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부딪힐 테니 말이다.

러시아는 핵무기 대비 태세 강화로 서방에 응수하고 있다. 푸틴은 서방의 제재가 선전포고와 같다고 반발했다. 서방의 제재가 전쟁을 멈추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위험한 상황을 낳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오늘날 세계가 미국과 서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중국·러시아가 중심인 권위주의 국가들로 나뉘어 있다며 서방을 (차악으로) 지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푸틴은 러시아를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해 왔다. 그러나 미국과 서유럽의 우방 중엔 푸틴 못지않은 독재자들이 많다. 미국이 지원하는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치인들도 배타적 애국주의를 강화하며 친러시아계 주민과 다른 소수민족의 권리를 유린해 왔다. 서방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는 본질을 흐리는 기만이자 위선이며, 여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연구실장은 “미국과 유럽이 세운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현실 세계에서 작동 가능한 유일한 질서”이며 러시아 주도의 질서보다는 낫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서유럽 강대국들이 중동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세운 ‘질서’를 우리가 차악으로 옹호해야 할까? 전 세계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에게 갖은 희생을 강요한 그들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작동 가능한 유일한 질서”라고 옹호해야 할까?

한지원 실장은 기존 질서에 맞선 러시아의 행태가 자유, 풍요, 평등의 지향과 상충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 질서도 같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노동자 정당이 보잘것없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지킨다며 ‘우리’ 나라의 제국주의를 지지하다가는 독립적 정치를 포기하고 노동자들을 국수주의적 혼란에 빠뜨려 인류를 재앙에서 구원할 유일한 요소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국제 노동계급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보다 훨씬 더 나은 대안을 건설할 자격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체제와 자국 지배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한편, 일부 좌파는 러시아를 서방에 맞선 진보적 대안으로 여기며 지지하기도 한다. 예컨대 자민통계 언론인 〈민플러스〉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언한 푸틴의 2월 24일 연설 전문을 게재했다.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다가 러시아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평소 미국의 한반도 간섭에 반대하고 민족 자주를 중시해 온 〈민플러스〉가 푸틴을 옹호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푸틴은 레닌과 볼셰비키의 민족 자결권 옹호가 우크라이나 문제의 발단이 됐다고 비난한 바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민플러스〉는 러시아를 옹호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서방 옹호만큼이나 러시아 옹호 입장도 잘못된 입장이다. 적의 적을 무조건 친구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과 러시아 둘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

많은 좌파들은 제국주의를 (미국 같은 특정)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이처럼 식민주의로 환원될 수 없고, 강대국들 간의 세계적 경쟁 체제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서유럽 강대국들처럼 분명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동유럽을 놓고 서방과 쟁탈전을 벌이는 제국주의 국가이고, 세계적 수준에서도 점점 더 그러고 싶어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세계적 제국주의 갈등에 얽혀 있다. 바이든 미국 정부는 중국을 의식해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강경하게 나왔고, 이 전쟁을 계기로 대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려 한다.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는 이제 중국에 더 가까워질 것 같다. 세계적 수준에서 제국주의(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해 러시아 철군을 요구해야 하지만, 절대로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미국 등 서방의 제국주의가 사태를 일으킨 주범의 하나임을 분명히 하고, 서방의 제재와 개입에 더욱 반대해야 한다.

또, 한국에 사는 우리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군수 지원 등으로 협력하는 것에도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언젠가는 아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위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런 점에서도 지금이야말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100여 년 전 외침을 거듭 강조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루마니아 국경에 대기 중인 우크라이나 피난민들 ⓒ출처 UNIC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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