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중인 나토 전투기 지난 사반세기 동안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국가 개입의 발판이었다 ⓒ출처 NATO(플리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미국과 서방은 “비군사적”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주장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비행금지구역 설정 문제다.

언론들은 이것이 능동적 군사 개입이 아니라 폭력을 막기 위한 방어적 조처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상대의 공군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군사 목표물을 공격하겠다는 결정으로, 직접 교전을 상정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캐나다·미국이 3월 초에 자국 영공에서 러시아 비행기에 대한 비행금지를 설정한 것은 러시아 비행기 운항을 동·서에서 봉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나토가 우크라이나 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나토군(과 그 주축인 미군)이 직접 참전해 러시아군과 싸우라는 말과 같다.(관련 기사 보기)

아비규환의 전주곡

이전에도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대규모 군사 충돌의 전조였다.

1993년에 나토는 발칸 반도에서 분쟁 당사자 모두를 대상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는데, 이는 사실상 세르비아를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몇 년 후인 1999년에 나토 공군은 78일 동안 9300번이나 출격해 세르비아를 폭격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징벌한다며 1991년부터 이라크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군사 시설을 지속적으로 폭격했다. 이는 2003년 이라크 침공·점령의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2011년 3월 유엔이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는 비행금지구역 설정 다음 날부터 리비아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시행해, 6개월 만에 8500회 넘게 리비아 곳곳을 폭격했다.

당시 리비아에서는 독재자 카다피가 민중 항쟁을 제압하려 하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서방은 이를 아랍 혁명에 개입할 기회로 삼았다.

당시 친서방 정부들뿐 아니라 한국의 〈한겨레〉·〈경향신문〉, 진보 정당인 진보신당·사회당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옹호했다.

포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아파트 ⓒ출처 UNICEF

하지만 서방 개입의 가장 큰 피해는 독재자에 맞서 투쟁한 수많은 민간인들이 입었다.

리비아에 이어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된 시리아에서도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폭격을 했고, 오늘날 시리아는 전 세계에서 전쟁 난민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나라가 됐다.

군사 개입

지난 사반세기 동안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군사 개입의 발판으로 삼은 미국이 군사 충돌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이번 비행금지 조처는 세르비아·이라크·리비아와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하고 핵무기까지 보유한 러시아군이 대상이다.

그래서 바이든은 나토가 직접 우크라이나 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러시아에 군사적 타격을 가하는 것을 미국이 한사코 피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현재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음양으로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을 통해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이번 전쟁 발발 전부터 서방 강대국들은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었다.

최근 미국은 폴란드 등 나토 회원국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전투기를 제공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킬 무기를 대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에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폭로도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벌인 군사 개입을 추적해 온 잡지 《미들 이스트 아이》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미군과 계약을 맺고 군사 작전을 대리 수행해 온 민간군사기업(PMC)들이 ‘의용군’(용병) 형식으로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작전 중이라는 정황 증거들을 폭로했다. 다른 외신은 유럽 각국의 극우·파시스트 준군사 조직들이 이 ‘의용군’에 속해 참전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서방의 군사 지원에 발맞춰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려 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 지원은 우크라이나에서 충돌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응전을 도발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할 일이다.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더 심각한 전쟁(어쩌면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의 직접적 군사 충돌)을 초래할 위험한 조처라고 규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