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와 경상북도 등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1주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공식 집계로는 인명 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4000여 세대, 7000여 명의 주민이 대피해야 했다.

극심한 겨울 가뭄과 강풍 등 기후변화와 계절적 요인이 결합돼 산불이 크게 번지고 진화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소방관들과 산불 진화 노동자들이 언제 방향을 바꿀지 모를 산불을 진압하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이번 산불은 한때 한울(울진) 핵발전소 인근까지 번졌다. 산불의 영향으로 핵발전소에 전기를 공급하는 외부 송전 선로 8개 중 2개가 차단됐다. 외부 전력 공급이 차단될 경우를 대비해 비상 디젤 발전기도 가동됐다. 초대형 소방 설비가 동원됐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핵발전소의 출력도 절반 가까이 낮춰야 했다.

산불은 강원도 삼척으로도 번져, 삼척의 천연가스 생산 기지에서 불과 2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불탔다. 소방당국은 이 생산 기지를 지키려고 소방대원 225명과 장비 85대를 집중시켜야 했다. 그만큼 다른 곳으로 산불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산불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출처 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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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산간 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이 지역에 핵발전소와 천연가스 발전소 등 위험 시설을 추가로 허가해 줬다.

반면, 산불 예방과 진화에는 충분히 투자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산림청과 소방청 등의 예산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림청의 2020년 결산 보고서를 보면, 산불 관련 예산은 고작 420억 원이었다. 소방청은 총예산이 2426억 원인데 산불 대응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산불 전문 진화차’ 도입에 64억 원가량 책정된 게 사실상 전부다. 강원도가 자체적으로 책정한 2021년 산불 예산은 예방과 진화 비용을 모두 합쳐 425억 원가량 된다.

기업주들에게 큰 이익을 줄 반도체 기술 개발에 올해에만 정부 예산 2896억 원이 투자되는 것과 비교해 보라. 또 55조 원에 이르는 국방 예산과 비교해 보라.

피해 주민들에 대한 지원금도 2019년 대형 산불 때보다는 늘었지만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주택이 전부 파괴됐을 때 5200만 원, 반파됐을 때는 2600만 원이다. 세입자들에게는 600만 원의 입주 보증금 또는 임대료만 지급된다.

전쟁 무기를 구입하거나 환경 파괴 기업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이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

대형 산불 빈발은 기후 재난의 일부

짧은 시간에 벌어진 기상 현상을 두고 그것이 기후변화의 결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 현상에는 일정한 변동 폭이 있고 예외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대형 산불 발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평균 기온이 오르면 수증기 증발이 많아져 토양 등이 건조해지고 이는 불이 더 쉽게 번질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오스트레일리아북미의 대형 산불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유엔환경계획이 2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2030년까지 대형 산불이 최대 14퍼센트, 2050년에는 30퍼센트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형 산불은 그 자체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한편, 나무와 같은 온실가스 흡수원을 파괴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크게 높인다. 북극의 동토와 적도 인근의 아마존에서 벌어지는 산불은 특히 그 영향이 크다. 이렇게 세계적 규모에서 악순환이 생긴다.

이번 강원도 산불은 유난히 심했던 겨울 가뭄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2020~2021년 겨울 강수량은 기상 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된 1973년 이후 가장 낮았다. 그러나 이는 장기간에 걸친 평균기온 상승과 강수 패턴 변화의 일부로 보는 게 맞다.

기상청이 지난해 발표한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를 보면, 최근 30년(1991~2020년)은 과거 30년(1912~1940년)보다 여름이 20일 길어지고 겨울이 22일 짧아졌다. 특히 봄철 기온은 지난 109년 동안 10년마다 0.26도씩 오르고 있다. 강수량은 늘어났지만 호우 일수는 줄어들었다.

산림청이 꼽은 역대 대형 산불 9건 중 8건이 2000년 이후에, 5건은 2010년 이후에 벌어진 것들이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한국에서도 자연 재해를 키우고 있다.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는 세계 9위를 차지하면서도 석탄 화력 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는 정부가 이번 강원도 산불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