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에서 여성이 해방됐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 또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체제로 여기는 사람은 적잖다.

그러나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은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인 국가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래서 중국 사회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비록 그 구체적 양상과 역사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이 글은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착취와 불평등, 그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잠재력을 살펴본다.

착취와 차별에 시달리는 ‘하늘의 절반’

중국 여성들은 사회의 생산 노동에 대규모로 참여해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에 기여해 왔다. ‘2017 여성과 직업 그리고 행복감’ 보고서를 보면, 중국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63.3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7퍼센트, 아시아·태평양 국가 평균인 62퍼센트를 웃도는 수치고, 여성의 경제 성장 기여도는 41퍼센트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국에서 여성은 여전히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위의 조사에 참여한 여성 응답자 중 58.6퍼센트가 직장 내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특히 임금과 출산 및 육아 과정에서 많은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들은 직장 생활의 어려움으로 ‘승진 기회의 감소’를 가장 많이 꼽았고 이미 관리직에 있는 여성들은 ‘일과 생활의 불균형’을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201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중국의 영 페미니스트들은 국가의 검열과 탄압에도 성추행과 성폭력 반대, 성교육 대중화, 취업 평등, 교육 기회 평등, 가사와 육아 분담, 여성 노동자의 권익 보호 등을 요구하며 저항을 벌이면서 중국의 성차별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성차별 현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중국에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도 성차별을 경험한다. 2018년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3만 6천 건 이상의 채용 공고 중 19퍼센트의 공고가 ‘오직 남성만’ 또는 ‘남성 우대’를 명시했다. 그 반대로 ‘오직 여성만’ 또는 ‘여성 우대’를 명시한 공고는 단 한 건 있었다.

알리바바, 화웨이, 바이두 등 대기업은 ‘아름다운 여성 동료를 약속한다’면서 남성 지원자에게 여성 동료를 취업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듯한 문구를 공고에 실어 비판을 받았고, 여성 지원자가 다수인 서비스직 채용 공고에 키, 나이 등 외모와 관련된 기준을 명시한 경우도 있었다.

헌법과 노동법 등이 채용 성차별을 금지하며 광고법도 성차별적 광고 내용을 금지하지만 정부가 이를 위반하는 기업에 엄격한 조처를 취하는 경우는 드물다.

면접 시 여성에게 가족 계획을 묻거나 임신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의 차별도 만연하다. 2021년 중국 여성의 직장 지위에 관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5.8퍼센트의 여성이 면접 시 결혼과 출산 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았고, 29.6퍼센트의 여성이 구직 활동에 장벽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채용 이후에도 임신을 이유로 간접적으로 퇴사를 종용하는 일, 출산휴가를 반려하는 일 또한 종종 벌어진다.

중국의 직장 내 성차별 ‘휴먼라이츠워치’의 2021년 보고서 표지. 여성 노동자가 출산 휴가를 사용할 경우 해고되거나 해고 위협을 받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출처 휴먼라이츠워치(HRW)

성별 임금 격차

2013년 채용 공고에 명시된 성차별에 항의하는 중국 최초 소송이 시작된 것을 계기로 채용 성차별을 포함한 직장 내 성차별에 항의하는 소송이 활발하게 벌어져 왔다. 광저우중급인민법원에 따르면 하급법원에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약 4000건의 소송이 벌어졌다. 이 중 일부는 승소했으나 법을 위반한 기업이 지급해야 할 배상액은 대체로 낮은 금액에 그쳤다.

성별 임금 격차 또한 1990년대 이래로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 한 기업 연구소가 발표한 〈2019년 중국 직장 성별 차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중국 여성의 평균 임금은 6497위안으로 남성 평균 임금의 약 78.3퍼센트 정도다. 보고서에서 선정한 상위 15개의 고소득 직종 중 두 개 직종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직종에서 여성 비율은 30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근속연수와 승진 여부도 임금 격차의 원인으로 꼽혔다. 설문에서 승진 방해 요소에 관해 질문했을 때 여성들은 주로 가사노동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사회적 지지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2018년 중국 국가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2시간 6분인데 비해 남성은 45분에 그쳤고, 육아시간도 여성은 평균 53분, 남성은 17분이었다. 그러나 남녀 취업자의 평균 임금 노동시간은 남성 7시간 52분, 여성 7시간 24분으로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 서비스의 부족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유급 노동을 하면서 가사와 양육도 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맡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적 괴롭힘 또한 여성에게 고통을 주는 중요한 문제다. 2013년, 광둥성의 여성노동자 지원단체 두 곳이 각 공장의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성적 괴롭힘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중 성적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무려 각각 69.7퍼센트와 71.2퍼센트나 됐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6.6퍼센트의 응답자는 중간에 처리가 흐지부지됐다고 했고, 가해자가 면직 처리된 것은 고작 1퍼센트에 불과했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주목을 받고 사회적 지지를 받았던 것은 이처럼 만연한 성적 괴롭힘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중국의 미투 운동은 2018년 베이징 항공대학 박사졸업생 뤄시시가 교수 천샤오우에게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시작됐으나 이것은 피해 당사자의 고발로 그치지 않고 수많은 목격자와 주변인들의 증언과 고발로 이어졌으며, 한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무려 70여 개 대학에서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폭력 방지를 요구하는 청원에 참가했다. 이후 대학교와 미디어, 시민단체, 종교계 등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돼 2018년 한 해에만 36건의 고발이 벌어졌다. SNS 게시글이 삭제되는 온라인 검열과 탄원서 서명자에 대한 당국의 철회 압박 등이 있었음에도 미투는 커다란 지지를 모았다.

중국 혁명의 성격과 여성

중국에서 여성 차별이 지속되는 것은 사회주의가 여성해방에 무관심하거나 둘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일까?

페미니스트 인류학자이자 《지연된 혁명: 중국 사회주의 하의 여성생활》(한울)의 저자인 마저리 울프는 1980년대 초 중국을 방문해 연구하면서, 중국에서 여성의 현실이 1949년 혁명 이전 시기에 비해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진정한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울프는 그 이유를 여성해방을 남성이 주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위 ‘계급 대립’을 해소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 여성해방이라는 목표가 부차화되고 지연됐다고 설명한다. 혁명을 이끈 남성 공산당 지도자들이 여성해방을 목표로 삼았으나 가부장적 생각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소련, 북한, 중국 등 소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여성 차별이 존속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낀 좌파와 페미니스트들의 많은 수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여성해방은 부차화되기 마련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여성 차별의 원인을 계급 사회가 아닌 남성의 본성에서 찾는 가부장제 이론을 수용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에서 일어난 혁명은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몰아낸 민족 해방 혁명이었지만 노동자가 권력을 잡은 노동자 혁명은 아니었다.

처음에 공산당은 1921년 소규모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창당해 1925~1927년 중국 혁명 때 분출한 노동자 투쟁 속에서 성장한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었다. 하지만 1927년 국민당의 학살로 노동자 총파업이 진압된 뒤 공산당은 농촌으로 피신했고 노동자 정당에서 중간계급 지식인이 이끄는 농민 게릴라 부대로 변모했다.

1949년 공산당은 권력을 장악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지만, 이 혁명에서 노동계급은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고 공산당도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었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 아니라 스탈린주의 소련을 모범 삼아 국가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길로 나아갔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강력한 국민국가를 빠르게 건설하기 위해 공산당은 노동계급을 혹심하게 착취했다. 이 때문에 ‘여성해방’과 ‘성평등’이라는 구호도 자본축적에 종속됐다.

마오쩌둥 시대의 국가는 여성의 생산 활동 참가를 독려했다. 1953년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며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뭐든 할 수 있다’는 선전 속에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로 여겨진 중공업, 광산업, 운전 등의 분야에도 여성의 진출이 장려됐다. 그 결과 여성 취업률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1940년에는 전체 노동자의 7.5퍼센트이던 여성 노동자 비율이, 1960년에는 약 20퍼센트로 20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1960년대 초에 일시적으로 대량 실업이 발생했지만,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 추세는 계속돼 1980년대 말에는 76~79퍼센트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마오 시대에서 개혁·개방까지

좌파 일각에서는 마오 시대에는 여성해방이 거의 실현됐으나 1970년대 말 개혁·개방과 시장화 때문에 성평등이 후퇴했다고 본다. 하지만 1949년 혁명의 성과로 중국 여성에게 중요한 개혁이 시행된 것은 맞지만, 마오 시대에도 중국 여성의 삶은 해방과 거리가 멀었다.

국영 기업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원칙으로 명시했으나 이는 현실과 거리가 있었다. 성별 분업이 여전히 존재했는데, 여성들은 흔히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직종에 고용됐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노동을 수행해도 남성보다 적은 노동 점수를 받았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드물었고, 연금 등 사회보험이 보장되는 국영기업에서 일할 가능성 또한 남성이 더 높았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전까지는 성별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였음에도, 1988년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84.4퍼센트에 그쳤다.

여성의 노동력을 대규모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보육과 가사를 지원해야 했다. 여성들이 이전처럼 시간이 드는 방식으로 가사와 육아를 할 수 없게 되자 국영 기업과 집단 농장 등에 3세 이하의 아이를 무상으로 맡길 수 있는 탁아소 및 유치원이 세워졌다. 도시에서는 단위 체제를 중심으로 직장과 마을에 주거 공간, 공동 식당과 수리센터, 학교 등도 설립됐다. 1955년 육아 휴직 규정이 제정돼 56일간의 유급 출산휴가가 제공됐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실제 노동계급의 필요에 비하면 그 양과 질이 턱없이 부족했다. 질 좋은 탁아소와 식당은 도시의 대규모 국영 기업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소규모 기업과 농촌 지역에서는 탁아소와 식당의 질이 나빴고 그나마도 부족했다. 대약진 운동 시기에 농촌에 서둘러 만들어진 탁아소, 간이 식당, 세탁소 등은 충분한 재정을 투자하지 않아 시설의 질이 낮았고,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가장 먼저 폐지됐다.

국가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며 생산적 노동 참여를 적극 권장하면서도 경제 성장의 속도가 느려질 때마다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이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중공업 위주의 생산 속에서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덜어 줄 소비재 생산이 부족한 것도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더했다. 여성들이 생산 노동에 대거 편입됐지만 여전히 집안일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고, 이는 여성의 신체 특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정당화됐다. 여느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노동계급의 재생산, 특히 다음 세대 노동력을 기르는 비용과 부담을 개별 가정 내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시장 개혁으로 여성 대중의 조건이 나빠졌다. 1990년대에 많은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되거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여성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불안정한 저임금 비숙련 일자리에서 일하는 이들이 먼저 해고됐는데, 여성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 기간에 해고된 노동자의 약 69퍼센트가 여성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성별 임금 격차는 점점 커졌다. 중화전국부녀연합회(부련) 산하 부녀연구소가 2013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1990년에 여성 도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남성 임금의 77.5퍼센트였으나 2010년에는 65.8퍼센트로 감소했다.

개혁·개방 이후, 국영 기업을 통한 종신 고용과 복지가 축소되자 가족의 부양 책임이 다시금 강조됐다. 그전 시기에 공기업 등에 있던 탁아소, 유아원, 병원 등의 시설이 문을 닫았다. 0~3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차원의 공적 서비스는 아예 사라졌다. 질 좋고 저렴한 보육 서비스를 찾기 어려워 만 3세 이하 영아는 주로 여성과 조부모가 가정에서 돌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정부가 공공 보육 재정을 대폭 삭감하면서 사립 보육시설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했다. 2015년 기준 중국의 유치원은 65.4퍼센트가 사립으로 공립보다 2배 많고, 도시 지역의 경우 75.9퍼센트의 유치원이 사립이다. 국가는 돌봄 서비스를 축소하면서 보수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자녀를 양육하고 집안일을 하는 모성을 강조하면서 여성 차별을 정당화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여성

중국에서 여성들의 삶이 그대로이거나 계속 악화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 속에서 급속한 도시화, 높아진 교육 수준, 대규모 도시 이주 등으로 여성들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지난 20년 사이에 고등교육 진학률이 대폭 증가했는데,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대학 진학률은 2020년 54.4퍼센트로 나타났다. 이는 2000년에 비하면 4배 증가한 수치다. 2016년 대학 졸업자 중 여성의 비율은 절반 수준인 51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자 중 여성의 취업률은 남성보다 25.5퍼센트 낮았으며, 86.6퍼센트의 여대생이 ‘성차별로 인해 채용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부련의 한 조사에서는 여성 대졸자가 평균 9개의 이력서를 내고 나서야 1번의 면접이나 필기시험 기회를 얻고 있으며, 44개 이력서를 내고 나서야 취업 기회를 얻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 중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영 페미니스트들은 높아진 기대와 성차별적 현실이라는 간극을 경험했다. 젊은 여성들은 1980년대 이후 엄격한 한 자녀 정책이 실시되고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에 태어났다.

이전 세대 여성들과 달리 이들은 가족의 기대 속에서 대학에 진학하고, 어느 정도 성취를 거두면서 자랐으나 대학과 직장 등에서 예기치 못한 성차별의 현실을 마주했다. ‘남녀 평등’을 추구한다는 국가가 성차별 개선에 미온적이고, 1980년대 이후 상대적으로 악화한 여성의 지위 등을 배경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새롭게 출현했다.

2012년 광저우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화장실 확충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식의 항의 활동이 이어졌다. 성추행을 여성의 옷차림 탓으로 돌리는 지하철의 게시물에 항의해 독특한 복장을 하고 팻말 시위를 벌이고, 성차별적 채용 절차에 항의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2015년에는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대중교통에서 성추행 반대 스티커 배포를 계획한 여성 5명이 체포돼 37일간 구금됐는데,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이들의 석방 요구에 지지와 연대가 모이기도 했다.

오늘날 중국의 여성 노동참여율은 마오 시대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개혁·개방 이후 여성들이 대부분 노동시장에서 쫓겨나 가정으로 돌아간 것처럼 주장한다. 1960년대 말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90퍼센트에 달했고 오늘날에는 60퍼센트대이므로, 수치만 놓고 보면 마치 여성 노동자의 약 1/3이 집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979년 이후 중국 여성 고용률 통계는 주의해서 봐야 한다. 도시와 농촌을 나눠 보면 차이가 있다. 도시와 읍 단위에서는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여성의 취업 증가율이 남성보다 더 높았다. 1982~1990년에 금융, 문화, 교육, 보건, 방송, 체육, 사회복지 등 도시의 서비스업에서 여성 노동자 수가 크게 증가해 서비스업 여성 노동력 비중이 21퍼센트에서 78퍼센트로 증가했다.

농촌에서는 개혁·개방 이전의 생산 단위이던 인민공사가 1983년 해체되면서 개별 가구가 농업 생산의 단위가 됐기에, 가족 단위로 일하는 농촌 여성들은 취업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수 있다. 또, 농촌에서 가정은 생산의 단위이므로, 인민공사 해체 뒤 농촌 여성이 가정에서 집안일만 하지는 않았다. 여성은 농가의 주요 노동력이었다.

중국의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출처 ILO SCORE Programme(플리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해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졌다.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해 노동자가 됐다. 농촌에 호구를 둔 채 도시로 이주해 일하는 농민공의 규모는 2020년 기준 2억 856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대도시의 대공장에 밀집해서 일하는데 이 중 여성의 비율이 약 60퍼센트나 된다.

태어난 지역에 따라 농촌 호구와 도시 호구로 나뉘는 호구제도로 인해 농민공은 도시에서 교육, 의료 등의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절대 빈곤선을 턱걸이로 넘는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에 12시간, 주 6일간 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 7일을 일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에게는 감시 카메라와 벌금으로 엄격한 노동 규율이 강요된다. 2010년 선전에 있는 폭스콘 공장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연장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저임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십여 명이 투신해 목숨을 잃었다.

투쟁 잠재력

2010년대 벌어진 농민공들의 저항은 이러한 불만이 집단적 방식으로 분출해 노동계급 고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분업화된 생산 네트워크의 중요한 일부로 편입됐다는 점 덕분에 이들의 잠재력이 더 커졌다.

2010년 난하이혼다 공장에서 시작된 파업은 이를 보여 주는 한 사례다. 혼다 공장에서 파워트레인 공장의 조립부 직원 50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이 다른 부서로 확산되며 일주일 만에 부품 부족으로 중국 세 지역의 혼다 완성차 공장에서 생산이 중단됐다. 그 결과 파업 20여 일 만에 500~600위안의 임금 인상을 얻었다. 도요타 부품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트럭 운송을 저지해 800위안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다. 북부 다롄에서는 노동자 7만 명이 73곳의 고용주를 상대로 파업을 벌여 임금이 평균 34.5퍼센트 인상됐다.

중국 정부는 공식 통계를 내지 않지만, 중국노동통신(CLB)은 이 시기부터 중국에서 파업과 시위가 꾸준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노동자 시위와 파업 건수가 2011년 185건에서 2014년에 1378건, 2015년에는 2726건으로 급증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 저항 물결의 중요한 일부였다. 2014년에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에 신발을 납품하는 세계 최대 신발공장인 위위안 공장 노동자 약 4만 명이 사회보험료 문제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현대 중국에서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파업이었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약 7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같은 해, 광저우의 대학가에서 여성 청소 노동자 212명이 해고에 맞서 2주간 매일 집회를 열고 파업을 벌였고, 이에 대학생들이 연대해 함께 싸웠다. 그 결과, 해고를 막아내고 임금 인상을 쟁취했다.

파업 투쟁에 나선 중국 여성 노동자들 2014년 대학가 청소 노동자 파업(사진)뿐 아니라 여러 투쟁에서 여성이 주도적 구실을 했다 ⓒ출처 Zheng Churan

이러한 사례들은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 있는 착취와 불평등 증가에 대한 노동계급 대중의 불만이 투쟁으로 분출할 잠재력이 있고, 여성도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투쟁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데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의 이런 분석은 오늘날 중국에도 적용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성이 임금노동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의 임금노동 참여 자체를 해방으로 간주한 게 아니라, 여성이 임금 노동자가 되면서 얻는 사회적 힘에 주목한 것이다. 여성이 임금 노동자가 되면 일터와 집에서 이중의 굴레에 시달리지만, 이윤을 생산한다는 점 때문에 사용자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집단적 힘을 얻게 되고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주체가 될 수 있다.

* 이 글을 쓰면서 다음의 자료를 참고했다.

울프, 마저리 1988, 《지연된 혁명: 중국 사회주의 하의 여성 생활》, 한울.

이정구 2016, ‘중국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 〈노동자 연대〉 180호.

이윤진·백미화 2017, ‘중국의 유아교육 보육 정책’, 육아정책연구소.

샐리 킨케이드 2018, ‘중국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마르크스21》 28호.

뤼투 2019, 《우리들은 정당하다: 중국 여성 노동자 삶, 노동, 투쟁의 기록》, 나름북스.

박석진 2019, ‘중국 내 성별 임금 격차 현황과 원인’, 《국제노동브리프》 10월호.

정진희 2020, ‘옛 소련 블록의 사회에서 성평등은 실현되지 않았다’, 〈노동자 연대〉 336호.

리인허 2020, 《지금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북이십일.

박자영 2020, ‘거리의 페미니스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10년대 이후 중국의 페미니즘’, 《문화과학》                   104호.

실라 맥그리거 2021, ‘성 차별, 사회주의, 국가 — 동구권의 여성들’, 《마르크스21》 41호.

이희옥·백승욱 2021,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책과함께.

Hershatter, G 2019, Women and China’s revolutions, Rowman&Littlefield.

LABORNOTES 2014, ‘Review: Behind China’s Wildcat Strike Wave’.

LABORNOTES 2014, ‘Women Lead Sanitation Strike at Massive Education Complex in China’.

CLB 2014, ‘Defeat will only make us stronger: Workers look back at the Yue Yuen shoe factory strike’.

CLB 2019, ‘Violations of women workers’ rights widespread says Guangzhou court’.

CLB 2020, ‘Workplace discri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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