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3월 13일
이 폭격은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대응이었다. 바로 전날인 12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장비 2억 달러어치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문제의 훈련소는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서방의 무기가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러시아와 서방이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종식 이래 강대국 간 직접 충돌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강대국 간 충돌에 반대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해 즉각 철군을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러시아가 낳는 참상을 이유로 서방이 더 많은 살상과 파괴를 촉발하는 것을 정당화해서도 안 된다. 이 전쟁에서 ‘권위주의’ 러시아에 맞서 ‘민주주의’ 서방을 지지해야 한다는 서방 측의 주장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컨대 사회진보연대 한지원 씨
한지원 씨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윤소영 전 한신대 교수도 “권위독재주의”에 맞서 바이든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수호하려는” 서방 주도 국제 질서, 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유럽이 스스로 영토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지는 것”, 즉 서유럽의 군비 증강이 “최선”의 평화 보장책이라고 주장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인터뷰도 번역·게재했다.
같은 체제의 일부
한지원은 “동맹국과 함께 성장하는 질서는커녕 부패한 재벌과 독재를 주변국에 수출하는” 러시아 체제가 서방의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보다 “퇴행적”이라고 한다. 서방 제국주의에 관한 일종의 ‘차악론’인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퇴행”은 서방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러시아에서도 관철된 결과였다.
러시아의 “최악의 재벌 경제”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러시아 경제를 더욱 파탄으로 몰고 갔다. 푸틴이 혹독한 권위주의 통치를 추진한 것은 바로 이에 대한 대응이었다. 푸틴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상승한 데 힘입어 러시아 자본주의를 국가 주도로 재정비하고, 이에 대한 반대를 억눌렀다.
이런 조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러시아 노동계급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불평등 수준은 미국과 비슷하고 서유럽보다 심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심각한 불평등은 러시아 사회의 최대 불안정 요인이다.
러시아 자본가 주류는 소수의 예외를 빼면 푸틴과 유착했다. 더 많은 경제적 득을 보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방은 푸틴의 통치 스타일을 그다지 문제 삼지 않았다. 예컨대, 푸틴이 체첸 독립운동을 분쇄한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 성장이 서방에 득이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이 서유럽 자본주의의 연료 구실을 했고, 러시아 자본이 서유럽 금융시장에 들어가 서방 금융가들을 만족시켰다. 푸틴은 선진국 클럽 G8의 일원으로 대접받았다.
요컨대,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서방 주도의 정치·경제 질서 안에서 성장한 것이다.
근래에 서방이 푸틴의 권위주의를 문제 삼는 까닭은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옛 소련 소속이었던 러시아 접경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군사력을 이용하고 있어서다. 푸틴이 2008년에 조지아를 침공하고 2014년에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갑자기 서방은 그의 온갖 악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사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이 자국 패권을 굳히려다 위기에 빠진 것과 관계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세계 경제 위기의 진앙지가 되면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각 열강이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변했고, 러시아에게는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러 나설 기회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바로 그 직접적 결과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의 투쟁으로 보는 관점은 우선 실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회진보연대는 “푸틴이 전쟁의 명분으로 나토의 위협을 내세우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서방 제국주의의 전쟁 책임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변호론이 될 뿐이다.
우크라이나와 동유럽의 ‘자결권’?
사회진보연대 측은 나토의 동진을 옛 동구권 국가들이 푸틴의 “퇴행적” 체제에 맞서 자발적으로 서방식 체제를 “선택”했음을 부각한다. “국민이 원했고 … 이득이었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나토를 선택한 것”
하지만 왜 나토는 러시아의 가입 의사를 두 번이나 외면했을까? 서방이 30년에 걸쳐 동유럽 국가들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유혹하며 동진한 것은 러시아를 포위하는 전략의 일부였다.
그 과정에서 서방은 전쟁도 불사했다. 1999년 나토의 발칸반도 폭격이 그 사례다.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점령도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의 서방 동맹국들에게조차 미국 힘의 과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유럽 대중은 서방의 영향력 확장으로 이득을 봤는가? 서방의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확장은 동유럽에서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 노동계급 삶의 망가짐, 극우와 파시즘의 부상을 낳았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지배층은 서방과 교역을 늘리고 시장 친화적
젤렌스키 정부 역시 친서방·반러시아 국수주의를 강화해 왔다. 지금도 서방의 군사 개입 확대를 요구하며 긴장 고조에 일조하고 있다. 나토와 러시아의 직접 충돌을 낳을 것이 분명한 우크라이나 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이 전쟁에서 서방의 비호를 받은 젤렌스키 정부가 승리하면 우크라이나를 서방 제국주의 쪽으로 더 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는 다시 서방과 러시아 사이 더 큰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의 속박에 맞선 민족자결권 운동이 진보적인 것은 피억압 민족의 해방이 제국주의에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를 피해 나토에 가입하는 것, 즉 한 제국주의에서 벗어나 또 다른 제국주의 진영에 가담하는 것은 그런 효과를 낼 수 없다. 장기의 졸 신세를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확대·강화가 어떤 의미에서 진보성이 있는가?
러시아 제재라는 서방의 지원을 지지할 수 없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방식인 러시아 경제 제재를 “연대”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푸틴의 권위주의에 맞선 러시아인들의 저항도 약화시킨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푸틴은 응전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고 있다. 러시아가 무력을 점점 더 많이 동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본지가 지적했듯, 제재의 대가를 가장 크게 치를 것은 푸틴이 아니라 평범한 러시아인들이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가 푸틴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제재로 생존 위기에 빠진 러시아 대중이 푸틴을 더 증오하게 될 수도 있지만, 서방의 압박에 맞서 자국 국가 지지로 결집해야 한다는 압박도 마찬가지로 커질 수 있다. 그러면 푸틴이 러시아 반전 운동을 공격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이것이 러시아에서 반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전쟁을 하는 당사자들
그리고 이런 저항이 강대국들 간 갈등을 끊이지 않게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방 지배자들은 그 경쟁 체제에서 득을 보는 자들이므로, 지지를 제공할 대상이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