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노동계급의 좌파 후보 셋(정의당, 진보당, 노동당)이 얻은 표는 다 합쳐 85만 표가 좀 못 된다.

그중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80여만 표를 차지한다. 그러나 5년 전 대선에서 200여만 표를 득표했으므로 반토막이 더 났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는 3만 7000표를 얻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주요 산별노조 위원장들 등 민주노총 지도자 다수가 김재연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적은 득표다.

(오준호 후보의 기본소득당이 실천 면에서 여전히 좌파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기에 일단 이 글에서는 논외로 친다.)

이백윤 노동당 후보는 9000여 표를 얻었다. 2012년 대선에서 노동자 출신 후보 김소연과 김순자 후보가 각각 얻은 1만 6000표, 4만 6000표를 합친 것에 크게 못 미친다.

설명

좌파의 대선 성적은 왜 이렇게 저조했을까?

일부 좌파는 공고화된 양당 구도와 민중경선을 통한 좌파 후보 단일화 협상의 결렬을 원인으로 꼽는 듯하다.

양당 구도가 견고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존재하는 정치 현상을 묘사하는 것일 뿐이고, 좌파의 성적이 저조한 원인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게다가 반례들이 있다.

양당 구도 속에서도 2002년과 2017년 대선에서는 좌파 후보(각각 권영길과 심상정)가 약진했다. 두 대선의 공통점은 선거 직전에 대중 운동이 분출해 우파를 약화시키고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좌파도 정치적 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민주노총이 중재해 노동자 정당들 간 민중경선 협상이 설령 타결됐다 한들 좌파 후보의 성적은 거의 나아지지 않거나 나아졌다 해도 미미한 수준이었을 듯하다. 선거 결과로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선거 방침을 따르지 않을 조합원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선거 결과를 단지 선거 직전이나 선거운동 기간에 어떻게 했느냐로 판가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인을 더 깊게 파헤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친자본주의적 ‘개혁’ 정부가 등장했을 때, 정부와의 충돌을 불사하고 노동자 운동을 이윤 시스템과 기존 사회 구조에 맞세우지 않는다면 세력 균형은 사용자들과 기업주들 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 동안 벌어진 일이다.

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 등 대표적인 노동계 지도부들은 문재인 정부 임기 중 5분의 4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이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매우 의식적으로 조절했다. 말로 하는 비판조차 조심스러운 마당에, 만만찮은 수위의 투쟁에 노동자들을 대거 동원하는 노력은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정당과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그 저항이 강력할수록 더 많은 개혁을 얻어 낼 수 있다. 그럴 때, 정치적 세력 균형이 좌파에 유리하게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야 선거 공간에서조차 좌파가 전진할 여지가 생긴다.

다르게 작동하는 선거 논리와 투쟁 논리

하지만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세력들은 계급투쟁보다는 선거주의 방향으로 내달려 왔고 그 결과 세력 균형은 노동계급과 좌파들에게 유리하게 바뀌지 못했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 전반부에 선거법 개정에 거의 ‘올인’ 했다. 그 목표 하나로 조국의 특권을 변호했다가, 정부로부터 정서적으로 이반하는 변화 염원층으로부터 좀체 씻기 어려운 실망을 샀다.

특히, 가장 부적절하게도 안철수·김동연과 ‘제3지대 공조’를 제안했다. 심상정 후보는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계급의 친구가 아닌 자들을 친구라고 자기 노동자들에게 말했던 셈이다. 결국 안철수는 윤석열에게로, 김동연은 이재명에게로 갔다.

진보당은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에 참여하려다 민주당에 의해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진보당이 간첩 혐의로 구속된 청주 평화 활동가들에 대해 방어하기를 거절한 데서는 그 기회주의에 그저 씁쓸한 따름이다.

선거와 투쟁은 다소 다른 논리가 작용한다.

최일붕이 〈노동자 연대〉 406호(‘이재명을 찍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민주당 정치를 지지하는 것은 안 된다’)에서 지적하듯이, 선거 정치에서는 숫자가 가장 중요하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득표수다. 선거의 저울에서는 좌파 후보의 1000표나 부르주아 후보의 1000표나 똑같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사회적 투쟁에서 득표수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투쟁의 저울에서는 한 공장 노동자 1000명이 하급 관리, 그들의 부인과 장모 등을 합친 1000명보다 100배나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요컨대, 주요 좌파 정당들이 선거주의를 강화한 것은 노동계급의 사회적 장점과 강점을 무시한 것이었다.

물론 6월 지방선거에서는 좌파 후보가 지역에 뿌리내린 상이한 정도에 따라 대선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다. 국가 수반을 뽑는 대선과는 달리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이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일꾼을 뽑는 것으로 바뀌고, 새 정부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동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 좌파 후보가 선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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