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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가는 직장인 N잡:
노동유연화가 낳은 참담한 현실

투잡, 쓰리잡 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N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책, 온라인 강의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현재 본업 외에 부업을 더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적게는 20퍼센트, 많게는 40퍼센트에 이른다. 부업 희망자는 2000년대 초반에도 많았지만(70~80퍼센트), 실제 부업에 뛰어든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진 변화다.

정부 통계에도 가시적 변화가 있다. 2016년 40만 9000여 명이었던 부업자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전년 대비 13.2퍼센트 증가). 지난해 10월에는 58만 8000여 명에 달했다(전체 취업자의 약 2.1퍼센트).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정부 통계는 부업자 판단 기준을 너무 협소하게 규정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가령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거나, 임금노동자가 자영업을 병행하는 경우 등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월급만으론 못 산다” 퇴근 후, 주말에도 알바 뛰는 직장인들의 고달픈 삶 ⓒ이미진

이처럼 N잡이 늘어난 일차적 이유는 기존 월급만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한다. 실질임금 하락과 저임금층의 증가, 치솟는 물가에 떨어질 줄 모르는 집값, 불확실한 미래에 노후 걱정까지 커지면서 궁여지책을 찾아 나선 것이다. 많은 기업이 취업규칙상 ‘이중취업’을 금지하고 있지만, 징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퇴근 후 알바를 뛰는 상용직도 늘었다.

저임금·저질 일자리

물론, 임금 소득을 벌충하고자 하는 필요만으로 N잡의 증가를 설명하긴 어렵다. 이는 단시간/임시직 일자리 확대 등 더 넓은 노동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벌어지는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부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들의 경험을 봐도 그렇다. 가령, 미국에서 투잡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은 1970년대부터다. 미국의 소득 패널연구인 PSID 분석 결과를 보면, 1976~1991년 부업계층의 비중은 매해 20퍼센트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노동연구원). 이 시기는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가 크게 진척된 때였다.

시간제 일자리가 많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재취업 교육이 활성화된 대신) 해고가 자유로운 덴마크 등도 부업자 비율이 높은 대표적 나라들이다.

한국에서도 N잡 증가는 노동유연화의 진척과 관련이 깊다. 특히 부업자가 늘어난 지난 몇 년간 비정규직 규모와 비중도 커졌다. 그중에서도 시간제, 특수고용 노동자가 많아졌고, 임시직 중에서도 장기임시직은 줄고 한시근로가 늘었다.

배달, 택배, 대리운전 등 플랫폼 일자리가 늘어난 것도 N잡 증가에 한몫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부업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부업 전선에 뛰어들지만, 그렇게 얻은 일자리들은 대부분 저임금에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재보험 등 4대보험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에서도 배제돼 있다.

더욱이 투잡, 쓰리잡은 장시간, 야간 노동을 전제로 이뤄진다. 본업 외에 추가적으로 야간·주말·휴일근무를 해야 하니 주당 60시간, 70시간 노동은 기본이다. 그만큼 몸이 축나고 정신이 피폐해지고 대인관계도 무너진다. “노동을 갈아 넣는 N잡”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청년층 N잡 열풍” 호들갑의 진실

여러 책과 주류 언론 보도는 사람들의 N잡 선호에 대해 과장이 심하다. 20~30대 청년들은 한 직장에 구속되기 싫어해 N잡을 택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청년의 대다수는 자신이 원해서 ‘알바족’이 되기보다 취업의 문 자체가 좁아져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한다. N잡 하는 청년 비중이 늘어난 것은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이기보다 실업과 저질의 유연노동이 증가한 탓이다.

전국 만 18~34세 청년 10명 중 6명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첫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33.4퍼센트는 첫 일자리가 비정규직이었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취업했다가 금방 퇴사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도 일자리 질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규 취업자 중 입사 5개월 만에 퇴사하는 비율이 28퍼센트였다(전년 대비 10퍼센트 이상 증가).

경기가 잘 나갈 때는 기업들이 미래를 기약하며(호봉 인상, 정년퇴직 등) 청년들을 그럭저럭 붙잡아 둘 수 있었다. 경기가 안 좋고 평생 직장이 보장되지도 않는 상황에서는 저임금을 참고 버티는 게 더 어려워졌다.

‘불안정성’ 과장은 말아야

〈경향신문〉, 〈한겨레〉 등은 N잡 열풍을 다루면서 이제 상시적 일자리가 사라지고 노동이 일감 단위로 낱낱이 쪼개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도 한다.

그러나 단시간·임시직이 늘었지만, 노동의 불안정성을 과장하지는 말아야 한다.

가령 플랫폼 노동자가 크게 늘었지만 전체 노동자의 2.6퍼센트 수준이다. 게다가 이 중 적잖은 수는 상시직이고, 소위 전통적 노사관계 속에 있다.

자본가들이 불안정성을 높여 이윤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노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필요도 있다.

노동유연화가 확대되는 시기에도 자본가들은 잘 숙련된 상시직 노동자들을 필요로 한다. 쿠팡이 직접고용 정규직을 고용하거나, 콜센터들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장기근속 숙련 노동자들을 채용하려고 경쟁하는 것이 보여 주는 바다.

노동시장의 작동에는 노동자들의 저항도 영향을 끼친다. 택배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5년 이상의 고용계약 의무화를 받아들이거나, 우버 같은 해외 플랫폼 기업들에서도 노동자들이 투쟁해 사측으로부터 종속적 계약 관계를 인정받고 노동조건을 개선한 사례도 있다.

노동유연화가 크게 진척된 산업의 자본가들도 이윤을 내려면 노동자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싸울 능력이 있고, 국내외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도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이 64일간 파업해서 성과를 냈다. 미국에선 세계 최대 물류회사 아마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런 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공격에 맞설 잠재력이 있다. 물론,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우는 것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아래로부터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