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2년 4월 29일 LA 흑인 항쟁 분출 며칠 뒤에 당시 한국의 국제사회주의자들(ISSK)이 발행하던 신문에 처음 실렸다. LA 흑인 항쟁의 성격과 의미를 잘 보여 주는 글이라고 판단돼, 약간의 편집을 거쳐 본지에 다시 게재한다.


지난 [1992년] 4월 29일부터 일주일 내내 전 세계를 뒤흔든 미국 흑인 노동자들의 항쟁이 막을 내렸다. 5월 4일까지 드러난 공식 집계(사망 58명, 부상 2100여 명, 연행 9400여 명, 건물 손상 5300여 채)는 투쟁이 얼마나 격렬하고 대규모로 일어났는지 잘 보여 준다. 그만큼 흑인 노동자들의 좌절과 분노는 대단했다.

잘 알다시피, 이번 항쟁은 백인 경찰 4명이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하고도 무죄로 풀려난 데서 비롯했다.

그 백인 경찰 4명은 고속도로 상에서 과속 운전을 이유로 로드니 킹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자기 방어 수단도 갖고 있지 않은 그를 5만 볼트의 고압 전기봉으로 실신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를 땅바닥에 뉘어놓고 곤봉과 구둣발로 마구 때려 다리와 얼굴뼈마저도 부러뜨렸다.

그런 만행을 자행한 경찰들에게 미국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 로드니 킹 사건은 경찰이 늘상 흑인, 특히 보통의 흑인들을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대해 왔던 행태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미국 전역의 흑인 거주지에서 늘 있어 왔다.

이는 미국의 지배계급이 노예제 이래로 끊임없이 부추겨 온 인종차별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줌도 안 되는 지배계급이 사회의 압도 다수인 노동계급을 착취하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지배자들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노동계급을 분열·반목하게 만드는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인종차별이 바로 그중 하나이다. 이 때문에 미국 흑인들은 온갖 사회적 수모와 차별을 받으며 대부분 사회의 최하층을 이루며 살아 왔다.

더구나 1980년 이후 미국 경제가 점점 심각한 불황의 늪으로 빠져든 때, 흑인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인종차별적 공격이 이뤄졌다. 흑인 노동인구의 평균 소득은 1975년에도 백인 노동인구의 63퍼센트에 불과했는데, 1991년에는 그 수치가 5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흑인 3명당 1명이 빈곤선(생계 유지에 필요한 최저소득 기준)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흑인 실업률은 백인 실업률의 두 배에 이른다.

보건 관련 통계는 더욱 참혹하다.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를 쏘아올린 미국에서, 다른 수치는 다 오르는데 흑인의 평균수명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할렘가(街) 흑인 소년들의 예상 수명은 방글라데시 소년들보다 훨씬 낮다.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가장 큰 이유는 살인이다!

흑인의 소외와 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한계에 이르렀다. 로드니 킹 사건에 대한 그들의 좌절과 분노는 너무도 정당하다.

제일 먼저 항쟁이 일어난 곳은 로스앤젤레스(LA)였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구호를 내걸고 투쟁이 시작됐다. 투쟁은 처음부터 격렬한 소요의 형태를 띠었다. 상점이 털리고 건물이 불타는 등 약탈과 파괴가 일어났다. 노동조합도 정치 조직도 없는 그들로서는 소요라는 형태가 아니면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 투쟁은 4월 30일부터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뉴욕·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피츠버그·시애틀·버밍햄 등 주요 도시들 대부분이 화염에 휩싸였다. 흑인들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회 밑바닥에서 신음하던 중남미계와 아시아계, 심지어 일부 백인 노동계급 사람들까지 항쟁에 가담했다.

이들의 참가는 이 항쟁이 단순히 인종차별 때문만이 아니라, 극심한 불황의 대가가 미국 노동계급 전체에 떠넘겨졌기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보여 준다. 기업의 도산과 실업·감원·해고는 나날이 늘어나는 반면 각종 복지혜택은 계속 줄어, 미국 노동인구 구조의 최하층을 이루는 사람들은 참혹한 빈곤에 시달리게 됐다. 그런 사람들이 항쟁에 가담함으로써 저항하려 했던 것이다.

항쟁은 흑인들의 투쟁에서 미국 전체 노동 대중의 투쟁으로, 로드니 킹 사건 무죄 평결 규탄에서 체제 자체에 대한 커다란 분노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애초에는 선거를 앞두고 항쟁을 조기 진압할지 양보할지 중간계급의 눈치를 살피던 조지 부시 정부(사실 부시 자신이 인종차별로 악명 높다)는 지금이 진압할 때임을 재빠르게 알아차렸다. 흑인 중간계급까지도 소요 때문에 사유재산이 파괴되고 있다고 원성을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종차별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공화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미국 민주당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평결이 부당하다고 떠들기를 그치고 ‘폭동 행위’를 공공연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5월 1일, M16 소총과 최첨단 진압 무기로 무장한 연방군이 출동했다. 투입된 연방군은 1989년 파나마 침공과 1990년 걸프전에 파병됐던 최정예 병력이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매우 거칠고 격렬한 것 같은 소요는 조직된 노동자 투쟁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타올랐던 만큼 쉽게 꺼진다(여론과 공권력 앞에서는). 미국 제국주의가 제3세계에 간섭할 때 이용했던 ‘질서’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앞에서, 그때 동원된 것과 똑같은 군대 앞에서, 일주일 동안 벌어졌던 흑인 소요는 쉽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미국 흑인들의 처지가 별로 나아질 것은 없기에, 머지않아 다시 한 번 더 커다란 투쟁이 터져나올 것이다.


한국인 이민자들의 피해 바로보기

이번 항쟁에서 줄곧 한국인 이민자들은 분노한 흑인들의 표적이 됐다. 한국인들이 흑인과 중남미계를 상대로 한 밑바닥 소매업에 주로 종사해 왔고, 그러면서 그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 왔기 때문이다. 한인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려던 15살 흑인 소녀를 쏴 죽인 두순자 씨 사건이 그 사례다.

이것이 사실이긴 해도 흑인 노동자들은 표적을 잘못 골랐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 이민자 역시 백인 지배계급한테 차별당한다. 지배계급이야말로 인종차별을 만들어 낸 주범이다. 그들은 그러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빈곤과 인종차별로 생긴 좌절과 분노가 갈 데까지 가고, 이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정치 세력이 없을 때는 가까이 있는 다른 희생자들이 분노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점을 잘 아는 미국 지배계급은 오랫동안, 자기들에게 겨누어져야 할 흑인들의 저항을 다른 인종에게 돌려 왔다. 1991년 여름, 뉴욕 크라운하이츠에서 일어난 하시드계 유대인 살인 사건에서도 보듯, 성난 흑인들의 희생양은 주로 유대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인 이민자들이 희생양이 됐다. 미국 지배계급은 아주 성공적으로 이렇게 만들었다! 그들은 항쟁이 일어나자마자 그 진원지였던 LA 사우스센트럴가(街)에 한인 상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국인이 흑인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만을 TV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또, 경찰을 흑인 거주민이 1퍼센트도 안 되는 부유층 거주 지역 베벌리힐스로 철수시켜, 성난 흑인들이 한국인 이민자들을 공격하도록 부추겼다.

미국 지배계급이야말로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재앙을 안겨다 준 진짜 ‘폭도’임이 분명하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한국인이 당했다”고 해서 흑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그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서는 안 될 것이다. 저들의 거짓말을 믿지 말고 당신의 눈을 믿어야 한다! (사진을 보시오) 진정한 적은 형님인 부시이자 아우인 노태우이고 그 둘 다인 자본가 계급이다!

미국 경찰이 일상적으로 흑인들을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대해 온 것은 항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출처 다큐멘터리 〈LA92〉에서 캡처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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