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파산한 김대중 '개혁'의 전도사

 

임미정

 

차기 대선 주자로 노무현이 부상하고 있다.

최근 성균관대에서 열린 노무현과 김근태 초청 토론회에는 무려 6백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강준만이 쓴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은 발매 2주 만에 10만 부가 팔렸고 한국대학신문의 설문조사에서 노무현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1위로 뽑혔다. 노무현이 이렇게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말〉 지와 인터뷰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난 97년 대선에서 권영길을 찍었고, 지금도 개인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대선에서 노무현이 나온다면, 반드시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물론 이인제가 나오면 좀 고민스럽겠지만 …. 어쨌든 이회창의 집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에 대한 과감한 문제제기도 그렇고 노무현에겐 개혁성, 진보성이 분명히 있다.”노무현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가 이회창이나 이인제, 김중권 같은 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지역주의와 학벌주의에 때묻지 않은 데다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인기는 김대중에게 실망과 환멸을 느끼고 있는 대다수 노동자와 학생 들이 단순히 이회창 같은 수구 우파 쪽으로 기울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이 곧장 민주노동당과 같은 새로운 좌파적 대안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기성 정치인 중 상대적으로 참신한 인물에게 쏠리고 있다.   노무현은 상고 출신으로 사법고시 합격 후 판사를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변호사 시절에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과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사건의 변호를 맡아 인권 변호사로 알려졌다. 그러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군부정권에 대한 신랄한 질문으로 스타가 되었다.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거부하고 지난해 4·13 총선 때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에 출마해 낙선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은 이 때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 생긴 애칭이다.

 

이미지만 ‘개혁’

그러나 노무현이 말하는 개혁은 김대중식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DJ 시대는 역사의 진보 시대”라면서 김대중의 개혁 실패가 강력한 수구세력의 저항으로 인한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천에서 김대중은 수구세력의 압력에 타협해 왔고, 국가보안법 같은 문제에서는 그 자신이 수구파였다. 김대중은 〈조선일보〉 같은 수구세력이 헛기침 한 번 하면 좌파와 노동자 운동을 몽둥이질해 희생양으로 바쳤다. 노무현은 파벌 중심, 보스 중심의 낡은 정치를 청산하기는커녕 동교동계라는 파벌에 기대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등극하고 싶어한다.  자신을 밀어 줄 뒷배경을 찾아 민주당 내 동교동계에 추파를 던지던 노무현은 동교동계 퇴진에 대한 목소리가 워낙 높자 최근에는 다시 동교동계와 거리를 두고 쇄신파에 자신을 밀어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5월 정풍운동 때부터 민주당 내에서 계속 제기되는 쇄신론에 대해 동교동계를 옹호해왔다. 그는 10·25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교동계 수장 권노갑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쇄신파에게 “그들의 인권도 지켜 줘야”한다며 “한두 명 자른다고 쇄신이 되느냐”고 되레 어깃장을 놓았다.  보잘것 없는 민주당 쇄신도 반대하면서 동교동계와 쇄신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노무현을 보면서 ‘정치 철새’를 떠올리는 것이 무리일까? 그는 이미 과거에도 ‘3김 정치의 청산’을 주장하며 민주당과 평민당의 합당에 반대하다 1997년 대선 직전 순식간에 김대중 지지로 돌아선 경력이 있다.

노무현은 김대중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분열적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노무현은 분열적 지역주의의 대안으로 영남 출신인 자신이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남 출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지역주의가 해소될까? 지역주의는 영호남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의 경험, 그것을 추구할 계급 정치를 통해서 사라질 수 있다. “정치적 제휴만 잘 하면 영남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노무현의 주장은 김대중의 지역등권론이나 김윤환의 영남후보론과 너무나 흡사하다.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기

노무현이 말하는 개혁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노무현은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방문해 “내가 경영자라도 (공장 가는 길을) 컨테이너로 막겠다”,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을 거부하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했다가 계란 세례를 받았다.  대우차의 한 노동자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난 개인적으로 노무현 지지자였다. 그래서 노무현이 우리 공장에 온다고 했을 때 상당히 흥분되어 있었다. 다른 노동자들도 노무현은 다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를 최소한 위로는 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노무현이 말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믿어온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렇게 변한 줄은 몰랐다. 한때 ‘친노동계’ 인사로 통했던 김대중이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서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듯 노무현도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1천7백50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되고, 바로 얼마 전 경찰한테 무자비하게 짓밟힌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그는 대선 후보감으로 떠오르자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은 철저하게 삼가고 있다. 그는 성균관대 토론회에서 한 학생이 사립학교법 제정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 묻자 “내가 말하면 여러분이 싫어할 것”이라며 의뭉스럽게 넘어갔다. 언론개혁에 대해서도 “〈조선일보〉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며 애매하게 말했다.

김대중 지지가 결국 몸 대주고 뺨 맞는 결과만 낳았듯이 노무현에 대한 짝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 대립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 대립이다. ‘개혁적’ 이미지로 포장된 시장주의자에 불과한 노무현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 같은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