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수준의 지지를 얻은 마린 르펜 ⓒ출처 마린 르펜(페이스북)

마크롱은 파시즘의 전진을 막을 방벽이 아니다.

4월 24일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신자유주의자 에마뉘엘 마크롱이 파시스트 마린 르펜을 58.5퍼센트 대 41.5퍼센트로 꺾고 당선했다.

지난 20년 동안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과거에는 국민전선)은 세 번이나 대선 결선에 진출했는데, 이번이 승리에 가장 가까웠다.

이들의 대선 1차 투표 득표율은 1974년 0.75퍼센트에서 올해 23퍼센트로 올랐다.

이번 대선 1차 투표에서는 이슬람 혐오자인 역겨운 극우 에릭 제무르도 7퍼센트를 득표했다. 또 다른 극우 후보까지 합치면 극우·파시스트 후보들은 도합 32퍼센트 넘게 득표했다.

결선 투표에서 표차가 적었던 일차적 책임은 지난 5년 동안 노동계급을 혹독하게 공격했던 마크롱의 통치에 있다.

지난 5년 동안 마크롱은 긴축에 반대한 ‘노란 조끼’ 운동을 분쇄하고, 이민자들의 천막을 찢어발기고, 억압적 법률을 무더기로 제정하고 무슬림을 거듭 공격했다.

마크롱 정부의 내무장관 제랄드 다르마냉은 르펜이 이슬람에 “무르게 군다”고 비난했다.

이번 대선 결선 투표에서 1650만 명 이상(역대 최다)이 투표를 하지 않거나 백지 투표하거나 투표 용지를 훼손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 넘는다.

나치가 집권 코앞까지 가는 매우 우려스런 상황임에도 그 충격이 무뎌져 마치 정상적인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2002년에 마린 르펜의 아버지[이자 국민전선의 창립자] 장-마리 르펜이 결선 투표에 진출했을 때, 이는 엄청난 충격을 자아냈다. 보수 후보 자크 시라크는 장-마리 르펜과의 토론을 거부했다.

당시 1차 투표 후 결선 투표를 앞두고 2주 동안 장-마리 르펜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세게 투쟁했다. 대중 시위와 파업이 벌어졌고 학생들은 점거에 나섰다. 결선 투표에서 시라크는 82퍼센트 대 18퍼센트로 압승을 거뒀다.

점잖게

5년 전인 2017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이 결선 투표에 진출했을 때, 메이데이 행사의 일환으로 25만 명이 반(反)파시즘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당시 모든 대선 후보들은 르펜과 점잖게 토론했다. 그리고 마크롱은 마린 르펜을 상대로 66퍼센트 대 34퍼센트로 전보다는 덜 수월하게 당선했다.

이번에는 메이데이 집회가 탄력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들이 벌인 반(反)르펜 시위가 수만 명 규모에 그쳤다. 주류 좌파와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형식적 지지를 보내는 데 그쳤다.

애초에 프랑스 파시스트들의 지지 기반은 작았는데, 대부분은 알제리 식민 전쟁을 지지한 전직 군인들이었다.

파시스트들의 성장에는 전통적 지배계급이 평범한 사람들을 공격한 데 따른 환멸이 일부 작용했다. 그러나 결정적 요인은 “중도” 정치 세력들(과 좌파들 대부분)이 이슬람 혐오, 반(反)로마인[“집시”는 이들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반(反)이민 정책, 권위주의를 수용한 것이었다.

예컨대 1991년에 당시 전 총리였던 시라크는 자신이 “냄새나고 시끄러운” 이민자들에 진력이 난 프랑스 노동자들의 편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파 성향의 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이민자들의 “침공”을 경고하며, 프랑스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지지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사회당 소속의 당시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민에 대한 프랑스의 “관용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떠들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데에서 이들보다 10년이나 앞섰다. 1981년에 파리 인근의 도시 비트리시(市)에서 공산당 소속의 시장은 이민자들의 숙소를 불도저로 밀어 버렸다. 사람들이 비트리시의 탄압을 비판하자, 당시 공산당 지도자 조르주 마르셰는 이 탄압을 지지하는 1만 명 시위를 이끌었다.

당시 공산당의 역겨운 노선은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키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파시스트들의 성장

이러니 파시스트들이 성장한 것이 당연하다. 2004년에 프랑스 의회는 우파와 사회당의 지지 속에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도 우파, 중도 좌파, 심지어 극좌파 일부도 무슬림의 관습이 “공화국”과 세속주의, 여성의 권리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대선 1차 투표에서 주류 정당들은 위기 때문에 실업과 불확실성이 커진 체제를 옹호했다. 이들은 파시스트들의 정책을 법제화하는 동시에, 파시즘을 배양하는 절망과 환멸을 부추겼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비덤은 저서 《파시즘에 맞선 마르크스주의자들》에서, 의회 체제하에서 파시즘과 주류 우파 사이의 관계가 “연속성과 동시적 상호 작용”이라는 두 가지 형태를 띨 수 있다고 썼다.

“반동은 양보에 의해 잦아들기는커녕 힘을 얻는 경향이 있다.

“파시스트 운동의 존재로 인해 의회 체제에서 반동적 조처들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되면 독특한 종류의 상호작용 과정이 벌어진다.

“연속성과 상호작용 두 형태 모두 1929~1933년 독일에서 드러났다.” 그러면서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다.

파시스트들은 다른 방면에서도 전진하고 있다. 전통적인 파시스트 전략에는 ‘거리의 군대’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정규군과 구별되는 이 ‘거리의 군대’는 좌파를 분쇄하고 유대인·무슬림·이민자 같은 희생양을 괴롭히고 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르펜이 그런 집단을 거느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런 것이 성장할 잠재력이 힐끗 보인다.

극우 단체 ‘제네라시옹 Z’(구성원 대부분이 청년들인 제무르 지지 단체)는 좌파, 성소수자,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을 공격했다. 지난주에 극우 지지자들은 좌파 학생들의 점거 농성장을 침탈했다.

국가기구에도 파시스트 지지자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

2021년에 한 무리의 퇴역 장성들은 이른바 “조국을 해치는 붕괴 상태”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앞으로 5년 동안 마크롱은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늦추고, 복지를 공격하고, 무슬림을 표적으로 삼고, 노동계급 조직을 탄압하며 파시스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그 위험성은 매우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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