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체제는 외부의 시선이 쉽사리 닿지 않는 곳에서 그 야만적인 얼굴을 특히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외국인보호소가 그런 곳이다. 외국인보호소는 미등록 이주민 등 강제 추방을 앞둔 이주민을 출국시키기 전까지 구금하는 시설이다. 박이랑 기자가 햇빛조차 들지 않는 보호소의 독방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현실에 대한 시리아 난민의 증언을 들었다.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

제 이름은 아메르 무함마드 파두입니다. 시리아 출신 난민이에요. 2012년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했고, 지금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구금 및 고문 피해 난민 아메르 파두 씨 ⓒ제공 아메르 파두 씨

시리아는 2012년에 내전이 격화되면서 살기에 아주 위험한 곳이 돼 버렸어요. 특히 저는 시리아의 독재자 아사드 정권에 협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 명단에 올랐어요. 시위에 나갔다가 총을 맞았는데, 아직까지도 제 머리 안에 실탄 파편이 박혀 있어요. 동생과 조카들은 정권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그래서 당시 친형이 살고 있던 한국으로 왔어요. 이전에도 몇 번 일 때문에 온 적이 있었거든요. 제 아내와 아이들은 이집트에 난민으로 있어요. 동생 중 3명은 스웨덴 국적을 취득했고, 다른 한 명은 노르웨이 국적을 받았어요. 다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난민 인정이 거부됐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2012년 한국에 입국해서 바로 난민 신청을 했어요. 일단 난민 신청 절차를 밟으면서 중고차 거래 일을 했어요. 한국 정부는 어떠한 정신적, 경제적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제가 알아서 해야 했어요.

그러다 2014년에 난민 신청이 최종 거절됐어요. 시리아가 [저에게] 안전하다는 것이 사유였어요. 시리아에 문제가 없다니요? 난민 심사를 담당하는 출입국·외국인청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뉴스도 안 보나요? 그래서 다시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던 2015년 어느 날, 당시 저를 맡던 변호사가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으로 오라고 해서 갔어요. 출입국·외국인청 건물 내부의 어느 사무실로 갔는데, 출입국·외국인청 측에서 몇 명이 저를 만나러 나와 있었어요. 저에게 난민 신청을 취소하지 않으면 시리아로 추방하겠다는 거예요.

대신, 취소하면 1년짜리 인도적 체류 허가를 내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죠. 그때부터 1년마다 인도적 체류 허가 비자를 연장하면서 한국에서 살아왔어요.

시리아로 추방 위협도 당했다고요?

2019년까지는 별 문제 없이 살았어요. 대구 칠곡에 월셋집도 있었고, 차도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일 때문에 임대를 하던 곳의 건물주와 다툼이 있었어요. 건물주는 제가 방화 협박을 했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한국인 건물주의 말만 듣고 저를 연행했어요. 그러고 나서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됐어요.

억울해서 항소했는데, 결과를 기다리다가 8개월이 흘렀어요. 대구 구치소에 있었는데 여기서 지낸 8개월 중 무려 5개월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어요. 저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누구를 해한 적도 없고 법을 어긴 적도 없어요.

그런데 구치소 측은 저에게 수갑과 사슬을 채워 추운 독방에 가뒀어요. 수갑이 쇠사슬로 고정돼 있어서 손을 옆이나 위아래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 심지어 잘 때조차도 묶여서 고정된 자세로 자야 했어요. 밥이 나올 때 딱 30분만 풀어 줍니다. 결국 손의 신경을 다쳐서 손가락이 잘 안 움직여요.

그렇게 8개월을 구치소에 갇혀 있었는데, 출입국·외국인청 측에서 강제퇴거명령서를 들고 저를 찾아왔어요. 시리아로 추방하겠다는 거예요. 시리아로 어떻게 돌아가라는 건가요? 저는 수배 명단에 올라 있기 때문에 시리아 인접국만 가도 체포될 위험이 있어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긴밀한 나라도 방문하기 위험해요.

‘보호’ 계구 구치소 측이 파두 씨에게 사용한 결박 장치 ⓒ출처 법무부
특별계호 통고서 파두 씨가 모아 놓은 독방 처분 통고 서류가 수십 장 쌓여 있다 ⓒ박이랑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2020년 7월부터 [강제퇴거 절차에 따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고, 그곳에서 2022년 4월까지 무려 22개월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화성보호소 측은 저를 22개월 중 6개월 동안 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독방에 가뒀어요. 새우꺾기 고문을 당한 모로코인 M 씨처럼 독방에서 뒤로 결박당해 있었습니다. 툭하면 이틀씩, 5일씩 독방에 가뒀는데, 일수를 세어 보니 총 6개월 정도나 됐어요.

고문과 폭행도 당했어요. 독방에서 최소 열 차례 이상 지팡이처럼 생긴 전기충격기로 고문도 당했는데, 마지막 전기 고문은 2021년 7월에 있었어요. 모로코인 M 씨를 고문한 영상이 폭로되자 보호소 측은 저에 대한 전기 고문을 멈추고 결박도 풀어 줬어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완전히 망가졌어요. 2020년 말부터는 소변을 참을 수가 없는 상태가 돼 버렸어요. 20분마다 화장실을 가야 했는데, 보호소 측 의사는 아무 소용도 없는 약만 계속 건네줬어요. 귀에서는 고름이 났어요. 이는 4개가 깨지거나 빠졌고 결박 때문에 손도 망가졌어요.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해달라는 제 요구는 계속 묵살당했어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알약과 타이레놀만 계속 줬어요. 사람이 계속 억압을 받다 보면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어요.

상처 외국인보호소에서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며 자해를 해서 파두 씨 머리에 상처가 남았다 ⓒ제공 아메르 파두 씨

다행히 외국인보호소에서 석방됐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변호사 단체에서 저를 도와 보호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어요. 저를 구금한 것이 잘못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어요. 이제 풀려났지만 제 건강은 망가졌고, 돈도 한 푼도 없어요.

구치소와 보호소에 갇혀 있느라, 집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했고 제 소유의 차량도 폐차됐어요. 장기 방치 차량은 소유주에게 고지하고 폐차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보호소 측에서는 이런 고지서를 하나도 저에게 전달해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폐차 비용 100만 원이 제 앞으로 청구됐어요.

4월 4일에 화성보호소에서 나왔는데, 정말 돈 한 푼 없고 잘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나흘 동안 수원역 앞 길거리에서 굶으면서 잤어요. 지나가던 한 여성 분이 모텔비도 내주고, 먹을 것도 구해 주셔서 며칠을 지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친구들이 지원해 줘서 대구에 다시 내려와 방을 구해 지내고 있습니다.

요구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생각해 봤어요. 화성보호소의 모로코인, 여수보호소의 이집트인, 그리고 저의 공통점이 무엇인 것 같아요? 바로 난민이라는 점이에요. 저희 난민들을 향한 인종차별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저를 이렇게 원치 않으니, 저도 이제 한국을 떠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저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제대로 조사해서 처벌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제가 겪은 정신적, 신체적, 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을 받나요? 저는 답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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