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계속될수록 우크라이나는 서방 제국주의에 긴밀하게 얽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M777 곡사포를 군용기에 싣고 있는 미군 ⓒ출처 미 해군

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든 정치세력을 첨예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 남짓 지난 지금, 본지의 정치적 분석이 그 시험을 얼마나 잘 통과했는지 평가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면서도 나토의 확장·확전에 반대하는 우리의 최초 입장은 사태 전개에 의해 옳았음이 입증됐다.

러시아의 침공은 잔혹하고 반동적이고 모든 사회주의자가 반대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키예프(키이우)에서 가로막힌 러시아군은 이제 마리우폴과 세베로도네츠크 등의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 전쟁은 장기화될 것이고, 어느 쪽이든 빠르게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은 사라졌다. 침공 반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토 반대가 옳았다는 것도 사태 전개를 통해 입증됐다. 미국과 나토는 이 전쟁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수모를 만회하고, 유럽과 전 세계에서 세력을 다질 기회로 본다. 중요하게는, 러시아를 굴복시킨 뒤 중국과의 대결로 나아가려 한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의 대결을 가장 중요한 대결로 본다. 지금 대만을 둘러싼 설전도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제국주의적(제국주의간) 충돌이라는 분석도 옳음이 입증됐다. 대리전이라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그저 꼭두각시라거나, 러시아와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바로 미국과 나토의 대리자 구실을 하고 있다.

전쟁 초 미국은 136억 달러를 지원했다. 그후 바이든 정부는 330억 달러 지원을 제안했고, 미국 국회는 400억 달러로 그 규모를 키웠다. 미국은 장거리 대포와 미사일 등을 지원하고, 영국도 무기 지원의 최선두에 서 있다. 나토로부터는 앞으로도 더 많은 지원이 쏟아질 것이다. 단지 나토뿐 아니라 유럽연합 EU도 충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옌은 얼마전 키예프를 방문했고, EU는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EU에 신속히 편입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것이다.

이처럼, 서방의 개입과 확전 추세는 매우 뚜렷하다. 그럴수록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의존국이 되고, 서방 제국주의에 긴밀하게 얽힐 것이며, 이는 이 전쟁의 제국주의적(간) 성격을 보여 준다.

전쟁은 이제 (유혈낭자한) 소모전이 되고 있다. 이는 특히 동부지역 전투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바이다. 양측 모두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전력이 마모되고 있고, 미국의 무기가 전력을 대등하게 보충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전쟁 초 러시아의 키예프 점령 실패가 자아낸 희열은 이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는 확전 압력을 키울 것이므로 매우 위험하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사태의 휘발성은 커질 것이다. 전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대두되는 것도 그런 요인의 하나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반전 운동을 건설할 필요성이 급속하게 증폭될 것이다. 따라서 현 상황의 휘발성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은 열강의(강대국들간) 갈등뿐 아니라 제국주의 주변부의 갈등도 심화시키고 있다. 예컨대 그리스와 터키의 갈등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배경으로 현재 극도로 첨예해졌다.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지면 제국주의 열강의 하위 파트너들도 거기에서 뭔가 얻어 내려 하고 그래서 더 호전적이 된다. 지금의 터키와 그리스가 바로 그런 사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혈낭자한 소모전이 되고 있다 ⓒ출처 우크라이나 국방부

역사적 유추 문제

역사적 사례로부터의 유추는 신중해야 한다. 가령 지금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에 비견되기도 하지만(예컨대 질베르 아슈카르), 둘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베트남 전쟁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이끈) 수십 년 간의 민족 해방 투쟁의 연장이지만, 소련과 중국은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베트남 분단에 합의해 이 투쟁을 배반했다. 베트남 전쟁은 이 투쟁이 남베트남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봉기로 재개되면서 벌어진 것이다.

북베트남이 소련에게서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맥락이 중요하다. 당시 소련과 중국은 서로 소규모 전쟁을 벌일 정도로 관계가 악화돼 있었고 서로 경쟁 중이었다(중소분쟁). 북베트남은 자신을 지원하지만 서로 경쟁하는 두 국가 사이에서 많은 지원을 이끌어 내면서도 어느 정도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우크라이나 상황은 전혀 다르다. 2014년 이래 우크라이나에서는 강경 국수주의자(배타적 애국주의자)들이 정부를 주도했다. 우크라이나 내 다른 민족에 적대적인 이 강경 국수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독립 지역과의 전쟁에 몰두했고, 그러면서 이번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나토와 갈수록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처럼, 제국주의간 충돌과 민족 해방 전쟁에 관해 얘기할 때 우리는 세력관계를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

원칙에 입각한 입장이 중요하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언제나 복수형이다. 제국주의는 복수의 블록, 복수의 강대국 간의 경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반제국주의는 모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혁명적 국제주의 전통에 따라 우리 자신의 지배계급을 가장 분명하게 반대한다. 친서방 국가 하에서 사는 우리는 따라서 서방 비판을 빼놓고 전쟁에 관해 논할 수 없다.

현재 이런 입장은 어느 정도 고립을 부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2003년과 다르고, 지금 전쟁은 이라크 전쟁과 다르다. 거리로 나오는 대중적 세력이 국제적으로 별로 없다.(반전 슬로건을 내놓은 시위와 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그리스나, 비교적 급진적인 노동조합들이 총파업을 소명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예외인 듯하지만 말이다.)

개혁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에 취약성을 보이는 것은 국제적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오카시오-코르테스로 대표되는 좌파 의원들인 ‘스쿼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놓고 거의 모두 바이든 정부를 지지했다. 이제 미국 국회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세력은 일부 공화당 우파뿐이다. 개혁주의적 좌파는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마치 핵심 권력층에 도전할 기회를 송두리째 극우에 넘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에서도 반전 슬로건으로 뭐라도 하려는 세력의 규모는 작다. 노동당 좌파도 당 지도부와 당 우파의 눈치를 보느라 반전 슬로건을 내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노동당 좌파 의원은 단 한 명도 국제공동 반전집회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독일에서 좌파당 지도부는 나토에 지나치게 연성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노동자연대의 독일 자매단체는 좌파당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나토를 분명하게 규탄하는 결의안을 다른 경향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고 한다. 1000억 유로를 독일군에 지출하는 법안이 얼마 전 통과됐는데, 여기에 항의하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법안 통과 며칠 전 우리 동지들 중심으로 200여 명 정도가 항의 시위를 벌였을 뿐이라고 한다.

질베르 아슈카르 등 급진 좌파 일부가 취하고 있는 입장은 “나토 비판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라는 정치인과 미디어 등 주류 사회의 분위기에 좌파적 외피를 씌워 주고 있다. 심지어 그들이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나라에서도 그러고 있다.

그러나 그런 류의 입장은 아무리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를 차용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한 전력을 들먹인다 할지라도, 현 상황에서 실제로는 자국 정부와 주류 사회를 추수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자신들은 AK 소총 한 정 지원하지 못하고 바이든은 400억 달러짜리 무기지원안을 통과시키고 있는 마당에, 어떤 무기는 지원하면 안 되고 어떤 무기는 지원해도 된다는 식의 입장은 어처구니없고 현학적이고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다. 서방 비판을 삼가면 그 의도가 어떻든 순식간에 잘못된 입장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고립을 감수하더라도 우리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평화운동의 태도는 실제 사태에 걸맞은 수준보다 훨씬 비관적이다. 오히려 우리는 원칙에 입각한 지금까지의 입장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5월 21일 서울 “전쟁을 멈춰라! 국제공동행동” ⓒ이미진

세계의 많은 곳들이 미국 편을 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은 당연히 그렇겠지만,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중동 국가 등 여러 정부들이 서방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서방이 남의 나라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면 이들 나라의 사람들은 퍼뜩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떠올린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위대한 항전” 운운하면 이들 나라 사람들은 예멘과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의 저항을 떠올린다.

서민 생활의 위기

역사적 사례로부터의 유추는 신중해야 하지만, 어떻게 제1차세계대전이 끝났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전쟁이 낳은 물질적 효과가 러시아와 독일에서 반란을 낳았고 나머지 유럽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만큼 대중 생계의 위기는 중요한 문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민 생활의 위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반전 운동 건설 노력을 대중 생계의 위기와 연결시켜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대중은 물가 상승과 생활수준 삭감, 심지어 (신흥국의 경우) 식량 부족과 기근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이는 스리랑카의 항쟁이나 이집트·수단의 첨예한 긴장 등을 부르고 있다. 생활수준 지키기 문제는 모든 나라에서 제기되고 있고, 우리는 노동계급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대가를 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미국 등 서방 지원은 노동계급의 생계에 대한 간접적 공격임을 지적해야 한다.

서방과 러시아 모두 군비 지출과 제재 때문에 노동계급에 더 많은 부담을 떠넘길 것이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반대는 늘어날 것이고, 현 시기에 벌어지는 노동계급 급진화의 일부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소수 입장이지만 사태가 전개될수록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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