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6월 16일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와 발제자의 토론 요약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팀이 첨가한 것이다.


세계화는 세계 자본주의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 경제적 연결이 늘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신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개념과 종종 결부됩니다.

애초에 신자유주의는 시장이 최선의 자원 배분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등장했습니다.

또, 신자유주의는 이런 이데올로기로 뒷받침되는 일련의 정책들이기도 합니다. 규제 완화, 민영화, 노동조합 약화 시도 등이 대표적이죠.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로든 세계화라는 용어로든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상을 온전히 포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래로 세계경제의 상호 연결성이 증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 ‘세계화의 위기’ 담론은 자본주의의 실질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 레토릭과 현실

오늘날의 상황을 세계화 담론이 절정에 이르렀던 1990년대 초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소련·동구권 붕괴로 냉전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또, 1991년 미국은 35개국을 이끌고 이라크에서 군사 작전을 벌였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유명한 책 《역사의 종말》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후쿠야마는 20세기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쟁투는 이제 끝났고, 전 세계가 미국·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의 ─ 이에 더해 1995년에 창립된 세계무역기구(WTO)의 ─ 주도하에 단결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세계화로 자유 시장의 혜택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고, 부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부가 낙수 효과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돌아가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국가는 시장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구실만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991년 이라크 침공 같은 군사적 개입은 이런 신자유주의 질서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국가들을 단속하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망은 어느 때고 많은 부분이 환상에 불과했습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 시기 내내 국가는 경제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실제로 국가의 재정 지출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부는 낙수 효과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에게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불평등이 엄청나게 심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지지자들은 세계화가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금융시장·무역·생산망의 세계적 통합이 실제로 증대했다는 점에서는 말입니다.

1990년에는 국제 무역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8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2008년에는 그 수치가 61퍼센트였습니다.

중국 같은 자본 축적의 새로운 중심지들이 생겨나고, 그와 함께 전 세계 노동계급의 규모가 훨씬 커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스마트폰·컴퓨터 등 소비재 제품을 만드는 복잡한 세계적 생산망의 일부가 됐습니다.

이와 더불어, 물류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 같은 중요한 변화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화물연대 파업이 한국 자본가들에게 12억 달러나 되는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이 파업이 세계적 파장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세계적인 생산망은 더욱 복잡해졌고, 폭스콘 같은 기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출처 Nadkachna

둔화

이런 [자본의 국제적 통합이라는] 의미의 세계화는 2008년 경제 위기로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국제 무역은 2008년에 정점에 이른 후, 이후 조금 하락했습니다. 국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하는 경향도 2008년 이래로 늘었습니다.

이런 점은 2008년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도, 팬데믹 기간 국가의 경제 개입에서도,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그렇다고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정책이 단숨에 사라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가 1930년대~1950년대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본주의 기업·국가 간 새롭고 복잡한 관계가 나타나는 새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팬데믹 이전에도 복잡한 세계적 생산망이 서로 다른 나라들로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은 이 생산망이 교란됐을 때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보여 줬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생산을 미국으로 되돌리자고 했을 때, 미국 기업들의 커다란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복잡한 변화를 낳는 요인들

현재 진행 중인 복잡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변화를 일으키는 두 가지 요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요인은 제국주의적 긴장의 증대이고, 둘째 요인은 잇따른 경제 위기입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제국주의도 끝날 것이라는 예측은 완전히 어리석은 것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제국주의는 단지 강대국들의 약소국 지배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제국주의의 한 중요한 측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국주의는 특히,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서로 충돌하는 제국주의 간 경쟁 체제를 뜻합니다.

제국주의는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과 기업 간 자본주의적 경쟁을 서로 결합시킵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자본주의 경쟁 논리의 일부로서 국가와 기업 간 상호의존성이 높아집니다. 국가들은 세계 질서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더 높이려고 경제적·군사적 충돌을 벌이게 됩니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 관해 쓰던 시기에는 미국이 경제력·군사력 모두에서 적수가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조차 미국 지배계급 중 좀 더 똑똑한 자들은 자신들이 마주할 잠재적 경쟁자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핵 강대국이었습니다. 중국은 명백히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유럽연합의 통합을 지지했지만, 동시에 미국이 유럽연합에 대한 지도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정상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서방과 러시아의 제국주의 대리전은 2022년에도 제국주의가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보여 줬다 ⓒ출처 프랑스 대통령실(페이스북)

이런 상황에 대한 미국 지배계급의 대응 하나는 나토를 동유럽 쪽으로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의 지도력을 굳히려는 측면도 있었지만, 미국-유럽 동맹이 러시아와의 충돌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동유럽 지역에서 자기 영향력을 재확립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에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9·11 공격을 빌미 삼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이는 잠재적 경쟁자들에 맞서 미국의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예컨대 이라크 점령은 중국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중동산 석유에 접근하고 싶다면 미국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점령 모두 처참하게 실패해, 미국 제국주의는 오히려 약화됐습니다.

바로 이런 제국주의 간 경쟁 체제가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합니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발현이니까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나토에 더 통합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그저 우크라이나인들의 자기 방어 전쟁이라고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전쟁은 나토가 지원하는 대리전이기도 합니다.

이는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6월 16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10억 달러어치 군사 지원을 추가로 결정했습니다.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 지금 키예프(키이우)에 가 있기도 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지원은 540억 달러에 이릅니다. 러시아의 1년치 군비 지출의 80퍼센트에 이르는 금액이고, 전쟁 전 우크라이나 정부의 1년치 예산의 두 배입니다. 나토는 동부 전선에 병력 4만 5000명을 주둔시키기도 했습니다.

2022년에도 제국주의는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미국의 주된 경쟁자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러시아는 에너지 시장에서 중요한 국가로, 이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러시아·미국·사우디아라비아가 삼각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기껏해야 이탈리아 정도입니다.

미중 갈등

미국에게 훨씬 더 중요한 적수는 중국입니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달성하려 하는 바를 알아야 합니다. 바이든은 미국 제국주의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처참한 실패를 만회하고 다가올 중국과의 쟁투에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핵 강대국들 간 충돌이라는 면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전쟁에서 인류가 살아남는다 해도, 21세기를 규정할 갈등은 미중 갈등입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은 여느 제국주의 강대국이 할 만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국의 경제력을 이용해 군사력을 증강시키기 시작한 것이죠.

현재로서는 중국은 이 군사력을 대개 지역적 규모로 사용하고 있지, 미국을 상대로 전 세계적 충돌을 벌이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긴장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은 호주에 핵잠수함을 제공해 중국 인근 해역을 순찰할 수 있게 하는 [오커스(AUKUS)] 협약을 영국·호주와 체결했습니다.

또, 미국은 미국·일본·인도·호주를 묶는 쿼드도 부활시켰습니다. 이 동맹 역시 중국을 상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중 갈등에는 경제적 경쟁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떠오르는 자본주의 강대국이고 미국은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이 세계화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줍니다.

중국은 신흥 자본주의 강대국이 으레 그렇듯 세계적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반면 미국은 과거에는 자유무역을 지지했지만 이제는 전보다 훨씬 부정적입니다.

미국의 정책 전환에서 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체결해 중국을 포위하는 자유무역 영역권을 구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TPP를 내팽개치고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개시했습니다.

바이든의 정책은 여러 면에서 오바마보다는 트럼프에 가깝습니다. 예컨대 바이든은 트럼프가 제정한 관세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역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켜 중국을 배제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시도에 다시 나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IPEF는 자유무역 협정이 아닙니다. IPEF는 참가국들에게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하지 않는데, 그래야 바이든이 미국 내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IPEF 참가국 중 많은 국가들이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가입국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RCEP는 자유무역을 보장하죠.

이런 상황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많은 국가들은 두 자본주의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습니다.

영국 금융 언론계에서 도는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대미 교역량을 크게 늘리면서도 대중 교역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줄타기는 결코 안정적일 수가 없습니다. 첫째, 미국·중국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압력을 계속 받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본주의 하에서는 성장의 비율이 불균등하고 상황이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필리핀해에서 훈련 중인 미국·영국·일본 해군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통합된 관계이기 때문에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출처 미 해군

신냉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미중 간 ‘신냉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 모로 상황은 이전의 냉전기와 상당히 다릅니다.

옛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국가자본주의 체제였고, 더 넓은 세계경제와 비교적 분리돼 있었습니다.

반면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혼합돼 있고, 세계 체제에 긴밀히 통합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매우 중요한 몇 가지 결과가 나타납니다.

첫째, 여전히 많은 서방 기업들이 중국의 노동력과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원합니다. 미국으로서는 자국 경제와 중국 경제를 ‘디커플링’하기[분리시키기]가 훨씬 어려운 것이고, 미국과 예컨대 프랑스·독일 같은 국가들 사이에 중국에 얼마나 적대적이어야 하는지를 두고 상당한 긴장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미·중 양쪽의 경제 구조가 서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의 잔재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습니다. 예컨대 경제에서 금융 부문의 중요성을 늘리는 것 같은 방식으로 말이죠. 신용의 구실은 2008년 이래로 중국 경제의 성장을 지탱하는 데에 갈수록 더 중요해졌습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국가가 자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데에 훨씬 더 거리낌이 없어졌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일부 요소들과 결별하게 된 것입니다.

경제 위기와 국가 개입

서방 국가들이 신자유주의의 일부 요소들과 결별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자본주의가 직면했던 일련의 위기 때문입니다.

이 위기들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반감을 많이 사게 됐습니다. 또, 국가가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해 개입해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2008년에 대규모로 개입했던 것이고, 팬데믹 기간에는 그보다 훨씬 대규모로 개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위기, 즉 생계비 위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생계비 위기는 팬데믹 대응 조처들을 거둬들이면서 촉발됐습니다. 팬데믹 기간 누적된 수요가 공급망 교란, 구인난, 생산망 교란으로 인한 공급난과 충돌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위기를 더 첨예하게 만들었습니다. 러시아가 주요 행위자인 에너지 시장과, 우크라이나·러시아가 주요 수출국인 식량 시장이 교란된 것입니다.

이번 위기로 이미 1억 6100만 명이 기아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추가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물가 급등

뿐만 아니라, 영국 같은 선진국들에서도 물가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지배자들은 물가 인상이 임금 인상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에 관해 떠들어 댑니다. 이것은 완전히 헛소리입니다.

이번 주에 영국에서는, 실질임금이 기록적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임금 인상이 물가 인상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것은 기업들이 상품 가격을 올려 수익을 보전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에너지 대기업들이지만, 그들뿐 아니라 기업들 일반이 그렇게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익을 보전하려 가격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국가 개입의 한계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국가들은 이전 위기 때처럼 그저 금리를 낮추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6월 18일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그랬듯, 대개는 금리를 인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가를 잡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로 세계적 경기 침체가 도래해야만 물가가 잡힐 상황입니다.

그리고 경제의 세계적 통합도 국가의 인플레이션 대응 능력에 제약을 가합니다. 많은 경우 물가 인상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또, 금리가 오르면 국가의 재정 지출이 받는 압력도 커집니다. 국가는 지출을 하려면 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죠.

바로 그래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확대는 신자유주의적 공격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노동자 공격과 결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는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영역에서 지출을 줄이고, 그 지출을 자본주의 지원 노력에 돌리고 싶어 합니다.

물가 인상에 항의하며 임금 인상 파업에 나선 영국 철도 노동자들 자본주의·제국주의가 낳은 위기는 생계비 위기로 이어졌다 ⓒ출처 가이 스몰만

위기에 맞선 사회주의자들의 과제

마지막으로,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팬데믹 동안 있었던 일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노동자들을 구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꽤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앞서 주장했듯, 국가가 설령 그러기를 원한다 해도 실제 능력에는 한계가 큽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국가에 요구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국가에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국가에 개혁을 요구하며 투쟁해서 개혁을 따낼 때 힘과 자신감이 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생계비 위기에 대응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여러 부문의 노동자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식료품 가격 급등이 2011년 아랍 혁명을 촉발한 요인의 하나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식료품 가격 급등은 현재 스리랑카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노동자 투쟁을 촉발한 요인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계급투쟁 수위가 훨씬 낮은 영국에서도 다음 주에 전국적으로 대규모 철도 파업이 벌어질 예정입니다.

이런 투쟁들로 우리는 노동자들이 위기에 맞서 자신들의 해법을 관철시킬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의 원인이 그저 신자유주의나 세계화만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진정한 문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입니다. 그 자본주의·제국주의의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말입니다.

결국 이 체제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계속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발제자의 정리

여러 질문과 발언 감사합니다. 몇몇 질문에 최대한 답변을 해 보겠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세계화 간의 관계에 관한 질문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는 상품 생산 과정에서 중국 노동자들에 대한 극심한 착취가 최근 수십 년간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이 세계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을 대체할 나라가 없다면, 가격 인하에 기여하는 이 요인[중국 노동자 착취]이 힘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동으로 물가가 치솟으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최근의 세계화 시기를 돌아보면, 세계화가 덜 돼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인플레이션은 이해하기 상당히 복잡한 현상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여러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빚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인들로는 각국 은행들과 중앙은행들에 의한 화폐 공급, 자본 축적의 속도 등이 있습니다. 세계화는 그런 요인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퍼뜨리는 ‘인플레이션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관념을 거부해야 합니다.

몇 달 전,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이 아닌데, 왜 우리가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임금을 삭감할 것이 아니라, 가격을 인하하고 기업의 이익을 제한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에 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제가 최근에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쓴 글을 온라인에서 읽어 보십시오.(영문 링크)

인플레이션에 관해 한 가지 측면을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기적으로, 자본주의는 생태 문제에서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이 점이 장기적으로 물가 급등의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를 하루빨리 무너뜨려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입니다.

진영논리

진영논리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대응을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진영논리는 계급 투쟁을 지정학적 갈등에 종속시키는 논리입니다.

예컨대, 시리아의 지배자 아사드가 미국을 적대한다는 이유로 시리아 혁명을 반대한 좌파들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좌파들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서방을 적대하고 있으므로 [좌파의] 동맹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영미권 좌파들 사이에서 이런 주장은 전혀 대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곳의 좌파 대다수는 나토에 대해 지나치게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직 러시아 제국주의만 비판하는 것이죠.

영국 같은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한다면 철저하게 재앙적인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나토 회원국에 살면서 어떻게 자국 정부를 비판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다행히, 우리가 속한 정치 경향은 언제나 진영논리에 대해 매우 분명한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우리의 정치적 기원인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창시자 토니 클리프는 냉전이 한창일 때 이런 유명한 슬로건을 제시했습니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닌 국제사회주의.”

물론 오늘날은 냉전기와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그렇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이런 관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굉장히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중 갈등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바이든 시기 미중 관계입니다.

어떤 분이, 미국이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긴 할지 물으셨습니다.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매우 중요한 노력이 있다고 말씀하신 분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희토류입니다. 희토류는 여러 첨단기술 제품의 필수 원료입니다. 희토류 가공 산업을 지배하는 것은 중국입니다. 미국에서는 미국 국내에 희토류 가공 설비를 짓는 호주 기업을 미국 국방부가 지원하고 있죠.

또, 베트남 같은 나라가 중국을 대체할 저가 노동력 공급처로 떠오르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는 폭스콘 같은 기업이 세계경제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는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시장 규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서방 기업들이 여기에 큰 매력을 느낀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 면을 볼 때, 1990년대만 해도 중국이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어떻게든 편입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미국 지배계급 중 적어도 일부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중국의 WTO 가입에 미국이 동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제국주의 간 경쟁의 동역학이 다시 뚜렷해지고 있음은 미국 지배계급에게도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 질서 내에서의 그런 [부차적인] 지위를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컨대 ‘중국제조2025’ 같은 사업은 미국 지배계급에게 굉장히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강경해질수록 미국도 덩달아 강경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두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 경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렸듯, 이 경쟁은 어떤 면에서 냉전 시기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생태 위기와, 장기화된 경제 위기와 중첩되면서 세계를 갈수록 혼란과 위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위기와 혼란의 체제’라는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 간의 연대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저를 초청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동지들의 투쟁이 모두 승리하기를 기원하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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