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층 저항 억압이 집시법의 본질 민주적 권리 개악 시도 맞서 경보를 울려야 한다 ⓒ조승진

집회·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 개악안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에만 6개가 나왔다.

2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안으로, 시위 금지 장소 조항에 대통령 집무실 주변을 포함하는 내용이다.

나머지 4개는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안이다. 우선, 정청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은 시위 금지 장소 조항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한다.

여·야 모두 자기 정당 소속의 전·현직 대통령을 보호하겠다며 집시법을 개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이 개악되면 단지 우파나 극성 문재인 지지자들만 제약하지 않는다. 지배자들에게 진정한 위협인 좌파·노동운동과 피억압 대중의 항의가 제약되는 것이 핵심이다.

가령 최근 화물연대 파업 국면에서 공공운수노조가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를 신고하자, 경찰은 법적 근거도 없이 금지 통고를 내렸다. 앞서 말한 개악안들은 이런 억압적 조처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다. 최근 경찰청 집회·시위자문위원회가 “사회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문제를 여·야 대결로만 보지 말고, 피억압·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 침해로 보며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혐오 표현

문제는 전·현직 대통령 주변 시위 금지만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안에는 혐오 표현 금지를 이유로 집회·시위 권리를 전반적으로 제약하는 개악들이 포함돼 있다. 이 중에는 집시법의 소음 규제나 최대 처벌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도 있다.

대표 발의자 법안 핵심 내용
윤영찬
  • 혐오 표현 정의 신설
  • 혐오 표현 사용하는 집회 금지
  • 그에 따른 처벌 강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박광온 성별, 종교, 장애,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반복적인 혐오와 증오 조장하는 집회 금지
한병도 악의적 표현을 사용하거나 인격권 침해, 소음 상해를 일으키는 집회 금지

모호한 규정을 내세우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그것을 판단하고 처벌할 국가의 통제를 강화한다. 그리고 그 통제의 칼날은 지배자들에 맞서 저항하는 좌파적 운동과 관련 세력들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

가령 윤영찬 안이 규정하는 혐오 표현은 “멸시, 모욕, 위협 등 부정적 편견에 기반한 선동적이고 적대적인 표현 행위”이다. ‘불편한 용기’ 시위에서 젊은 여성들이 외친 적나라하지만 정당한 정서의 구호, 세월호 유가족이나 해고 노동자가 연설하다가 울분에 차서 뱉은 욕설 등 수많은 사례들이 여기에 걸릴 수 있다.

민주당이 혐오 표현을 집시법 개악의 명분으로 앞세우는 이유는 이 문제가 정의당, 페미니즘 운동 등 좌파 다수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좌파 내에는 극우 세력, 혐오 표현과 차별적 언행을 국가의 처벌·규제 강화로 억제하자는 입장이 득세해 왔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2016~2017년 미국 트럼프의 집권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혐오 표현, 가짜뉴스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서방 각국 정부들은 그것을 이유로 집회·시위 권리를 제약하고 온라인 표현물이나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왔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갑자기 차별 문제나 민주주의에 진정으로 관심이 생겨서 그러는 게 아니다. 정치·경제적 다중의 위기 속에서 사회 불안정이 심화하자 이를 통제하기 위한 국가의 억압적 힘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필요는 한국 지배자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기본소득당 용혜인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은 주류 여야의 시위 장소 금지 시도에 맞서 장소 규제를 대폭 축소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내놨다. 옳은 일이다.

그런데 혐오 표현을 이유로 한 민주적 권리 제약 시도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좌파적 견지에서의 비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집시법 개악에 대해 근본에서 여·야 사이에 이견이 없기 때문에, 기층의 반발과 항의가 커지지 않으면 국회 통과 자체는 장애물이 없다.

민주적 권리 공격 시도에 맞서 경보를 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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