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낙태 반대 세력들이 낙태죄를 유지하며 낙태를 크게 제한하는 법 제정에 시동을 걸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낙태 반대 단체들과 함께 낙태 규제 입법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낙태를 크게 제한하는 입법 토론회를 보수 단체들과 함께 열고 있다 ⓒ출처 바른인권여성연합 유튜브

국민의힘 의원들은 2020년 말 낙태를 크게 제한하는 낙태 관련법 개정안을 2개 발의해 놓았다.

조해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심장박동법’으로 불리는 미국 텍사스 주법과 유사한데,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게 골자다. 6주 이내는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시기이므로 사실상 낙태 전면 금지법과 다름없다.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는 10주 이내, 강간에 의한 임신이나 임신부 건강이 위험할 때도 20주 이내 낙태만 허용한다.

서정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에만 주수 제한 없이 낙태가 가능하다. 그 외 강간에 의한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는 10주만 넘어도 금지된다.

두 법안 모두 상담, 숙려기간, 의사 동의서는 필수다. 청소년은 학대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등 허용 요건이 매우 엄격하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런 법 개정을 통해 낙태 허용 범위를 최대한 좁히고, 낙태죄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 이런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여성들의 고통과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여성 건강을 위해 낙태를 제약해야 한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한다. 때때로 이들은 낙태가 여성의 건강을 해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점을 흐리기도 한다. 낙태가 자궁 손상, 난임, 합병증, 정신적 고통 등을 초래하므로 낙태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낙태가 여성의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숙련된 의료인이 위생적인 환경에서 진행한다면 낙태는 안전하고 합병증도 드물다.

보수적인 산부인과 의사들(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과 약사들은 여성의 건강을 위해 10주 이내 낙태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주 이후 태아가 커지기 때문에 낙태 시술이 여성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합리적 근거는 없다.

사실 안전한 낙태보다 출산이 더 위험하기도 하다. 출산 도중 여성이 사망할 수도 있고, 출산 이후에도 많은 합병증과 후유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아무도 출산 금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여성에게 특정 질병이 있거나 중‧후기 낙태인 경우에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숙련된 의료진과 효과적인 낙태 수술을 지원해야 할 문제이지 낙태 금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보수적인 의사들과 약사들은 낙태약 판매 방식, 의료 수가 책정 등 자신들의 이해득실에만 골몰할 뿐,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낙태권에는 관심이 없다.

여성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낙태 자체가 아니라 낙태 불법화다.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내몰리고 죄인 취급을 받는 등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낙태권 축소가 여성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하고 주장했다.

따라서 여성의 삶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낙태 규제가 아니라 제약 없는 낙태 전면 합법화가 필요하다. 낙태 비용 건강보험 적용, 유급휴가 등을 통해 낙태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민주당을 믿기 어렵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대체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낙태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향후 2년간 전국 단위 선거가 없기에 국민의힘은 앞으로 낙태 관련 법안을 처리하려 들 수 있다. 낙태 반대 세력들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미국 대법원에서 낙태권 보장 판결이 파기될 게 거의 분명한 상황에 매우 고무돼 있다.

윤석열은 집권 이후 낙태 정책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여느 지배계급과 마찬가지로 저출생 현상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윤 획득에 중요한 노동력 재생산을 통제하려고 낙태를 크게 제한하는 법안을 지지할 공산이 크다.

의회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낙태 반대 세력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그간 민주당은 낙태권을 보장하는 입법을 하라는 요구를 계속 무시해 왔다.

검찰 수사권 조정 법안을 밀어붙인 데서 보듯, 민주당은 의지만 있다면 낙태권을 보장하는 대체 입법을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여성들에게 중요한 문제에는 열의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가 낙태죄를 유지하며 낙태를 제한하는 법 개정안을 냈을 때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낙태죄 전면 폐지 법안과 제한 없는 낙태 허용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은 민주당 내에서 소수의 지지만 얻었을 뿐이다.

우파와 보수파의 낙태 반대 운동에 맞서 낙태권을 성취하려면, 민주당과의 입법 공조가 아니라 대중 운동 건설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 특히 낙태권 운동이 여성과 남성 노동계급이 함께하는 개방적이고 폭넓은 대중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